스브스프리미엄, 스프는 '아웃로오션 프로젝트'와 함께 준비한 [Dispatches from Outlaw Ocean]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웃로오션'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스프가 준비한 텍스트를 더해 스프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지식뉴스를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1편의 주제는 '해상 살인과 해적 이슈'입니다.
탕..탕..탕..탕.. 아무도 몰랐던 '4명 살해'
2012년 9월, 인도양의 공해상에서 남성 4명이 차례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40여 발의 총탄이 퍼부어졌고 시신은 바다에 버려졌습니다.
2년 뒤,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수도 수바에서 누군가 택시에 휴대폰을 흘리고 내렸습니다. 휴대폰 안에는 10분 분량의 동영상이 있었는데 이 영상은 바로 2012년 9월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총알이 남성의 뒤통수를 뚫고 나가는 장면부터 총격 이후 시신이 물에 떠 있는 장면, 기념사진이라도 남기듯 '단체 셀카'를 찍는 장면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익명으로 유튜브에 올라간 이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추적 끝에 타이완 어선의 선장이었던 중국인 43세 왕펭유(Wang Feng Yu)가 체포됐습니다. 그는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징역 13년형을 받았습니다.
사건 발생 이후 왕 씨가 체포되기까지 6년,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10년이 걸렸습니다. 피해자들의 죽음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기에 만약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다에서 벌어지는 범죄 상당수가 이렇습니다.
"해양 범죄의 99%는 신고되지 않는다"
비영리 저널리즘단체 '아웃로오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이안 얼비나(Ian Urbina)는 해양 범죄의 99%는 신고되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 그가 설명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선주에게는 해양 범죄를 신고하도록 할 유인이 없고,(굳이 신고할 이유가 없다) 둘째, 공해상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경우 이를 관할할 해상경비대나 해군이 부재한 상황이며(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셋째, 설사 이에 관심을 보이는 나라가 있어도 그럴 만한 재정적 여유는 없다는 겁니다.(여기에 투입할 예산이 없다)
2012년 살인 사건은 우연한 계기로 드러나게 됐지만 대다수의 사건은 아무도 주목하지 못한 채 묻혔을 가능성이 큽니다. 범행에 사용됐고 살해 현장이기도 했던 타이완 어선 'The Ping Shin 101'은 해당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 화제가 되기 두 달 전인 2014년 7월 바닷속에 수장됐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은폐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었습니다.
살해된 이들은 '해적 행위'의 피해자였다
선장 왕 씨 등은 공해상의 다른 배를 전복시킨 뒤 배에 타고 있던 피해자들에게 불법적인 폭력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왕 씨는 피해자들이 해적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왕 씨 측의 행위는 유엔해양법협약 제101조에서 정의하고 있는 '해적 행위'에 해당합니다.
'해적 행위'는 사실 해묵은 문제입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로 부상했습니다. 전 세계 기준으로 볼 때, 2010년에 445건으로 정점을 찍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연 100건 이상 보고되고 있습니다.
해적으로부터 스스로 지키자.. '민간해상보안업체 PMSC' 등장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해적들이 선박 납치와 화물 강탈, 선원 몸값 요구 등으로 수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그만큼 선사와 선주들은 피해를 보게 된 거죠. 그래서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한 민간 보안업체가 등장하게 됩니다.(공해상에서 벌어지는 해적 행위를 나서서 막을 만한 세계의 해경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들을 'PMC, Private Military Company 민간군사보안업체'라고 하는데, 특히 해상 보안에 특화된 업체를 국제해사기구(IMO)에서는 'PMSC, Private Maritime Security Company 민간해상보안업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해적에게 피랍된 인질 구출에 무력 사용을 가급적 자제해 왔습니다. 하지만 해적 피해가 매년 급증하면서 2011년 5월 국제해사기구는 해사안전위원회(MSC) 권고문을 통해 사설 무장보안요원 및 업체 관련 지침을 제시하며 사실상 사설 용병, 민간보안업체의 존재를 용인했습니다.
PMSC는 선상 무기창고를 두기도 하고, 화물 보호와 더불어 해적 공격을 막기 위한 경비원을 배치하는 등 점차 산업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One Earth Future Foundation'의 '2011년 소말리아 해적의 경제적 비용'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선사들이 사설 무장요원 고용과 선박 보안을 위해 지출한 비용은 10~11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 관련 링크1 ▶ 관련 링크2
해적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PMSC를 고용했는데 여기 드는 비용도 큰 부담이 됩니다. 해적 피해를 당했다고 보고하는 것 또한 선사와 선주들에게 2차 피해로 작동합니다. 해적 피해를 보고하고 조사를 받게 되면 조사 기간 배가 항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만큼 화물 운송 기간이 길어지면서 손실이 된다네요. 그 피해가 하루 평균 2만 5천 달러라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보험료 인상, 화물 수주 영향, 운항 손실 등을 우려해 아예 보고를 안 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식 통계로 작성된 '해적 행위'가 감소세인 데는 이런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