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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도 · 감청 단서가 없어서"…단서 찾을 조사는 했나

[월드리포트] "도 · 감청 단서가 없어서"…단서 찾을 조사는 했나
미국의 기밀 유출 사건 용의자가 체포됐습니다. 황당한 건 워싱턴포스트가 관련 내용을 보도한 뒤 한나절이나 지난 후에나 미 연방수사국의 검거 작전이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CNN 등을 통해 용의자 검거 장면이 생중계 됐는데 당시에는 이미 언론에 용의자 가족이나 지인들의 반응 기사까지 나온 뒤였습니다. 용의자가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도망갈 시간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관련 기사 중에는 용의자 모친의 지인이 "현재 상황대로라면 (용의자는) 변호사가 필요하다. 연방 수사관들이 조만간 들이닥칠 것 같다"고 인터뷰한 내용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단순 기밀 유출에 무게'…한미 당국 위조설 해명은?

미국 기밀문건 유출 용의자 체포
▲ 체포되는 기밀 문건 유출 피의자

유출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기밀 문건 유출 사건은 전환점을 맞게 됐습니다. 하지만 용의자의 등장으로 바빠진 건 수사 기관만이 아닙니다. 한미 당국도 당장 추가 해명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그간 국민에게 설명해왔던 것과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듯 보이는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문건 '위조' 여부입니다. 앞서 백악관은 문건 내용 일부가 변경된 걸 확인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우리 대통령실도 "'미 정부의 도·감청 의혹'에 대해 양국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설명을 바탕으로 현지 언론에서는 러시아가 공공연하게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는데, 21살 미국 주 방위군 병사가 과시욕에서 벌인 단순 기밀 유출로 상황이 전개되면서 그간 한미 당국이 제기해온 위조설은 추가 설명이 필요해졌습니다. 사병 수준에서 이뤄진 단순 유출 사건이라면 기밀 문건 조작은 누가 봐도 결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련 내용에 정통한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는 현 상황이 조작설과는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사건과 관련된) 많은 부분은 시간이 걸리는 일로 미국이 알아내야 하는 과정'이라며 미국의 몫으로 돌렸습니다. 대신, 문건에 언급된 한미 관계 부분은 "사실 관계와 다른 부분이 많고 시간상으로도 꽤 흘러서 지금 현재 한미 관계와는 관계가 없는 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단순 유출인지, 조작이 있었는지는 미국 정부가 시간을 들여 알아내야 할 일로 우리가 답할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실 도청 의혹이 제기된 한국 관련 문건 내용은 사실 관계가 다른 부분이 많고 또 이미 시의성이 떨어진 주제여서 현재로서는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문건 내용의 진실만큼이나 국민적 관심이 큰 부분은 동맹국인 미국이 한국의 안보사령탑인 대통령실을 도청했는지 여부입니다. 그저 사실관계가 틀린 구문이라는 식의 이런 설명으로 국민들이 납득하고 넘어갈지 의문입니다.
 

"미, 악의적 행동 단서 없다는 것"…도청 없었다 단정 안 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논란을 빚었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언에 대한 해명도 나왔습니다. 지난 11일 미국 입국 당시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도청)했다는 정황은 지금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는데, 고위 당국자는 당시 본말이 전도돼 (발언의 진의가) 왜곡됐다면서 김 차장의 말 뜻은 "(미국이) 악의적으로 해석될 행동을 안 한 것 같다"는 취지였다고 말했습니다.

악의적이지 않았다는 근거로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판단한 바에 따르면 미국이 우리에게 도∙감청을 했다라고 확정할 만한 단서가 없다는 이야기"라며 "간단히 얘기하면 우리가 지금도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는 아무것도 확정해서 미국 행동이라고 드러난 게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우리 정부 조사 결과로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도청 등 악의적인 행동을 한 정황이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이 고위 당국자는 계속된 미국의 도청 의혹 질문에 "한국 정부도 (미국의 도청이 없었다고) 확정하지 않았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상대방이 우리에 대해서 정보활동을 할 수 있는 개연성은 어느 나라나 있다"고 말해 우리가 확인하지 못했을 뿐 미국이 대통령실을 상대로 정보 수집 활동을 벌였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한발 나아가 "우리나라도 그런 활동을 안 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작은 보안 사고에도 휴대전화 수거하더니

대통령실, 기밀문건

이 당국자의 말처럼 단서나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미국이 도청을 했다고 의심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정부가 미국의 도청 정황을 철저히 조사했는지 여부입니다. 대통령실은 문건에 등장한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논의 내용이 사실 관계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을 뿐 그 외 어떤 조사가 이뤄졌는지 공개한 바 없습니다.

대통령실 쪽에서는 김 전 실장과 이 전 비서관을 상대로 구두 조사를 진행했다는 정도의 전언만 흘러나올 뿐 실제 이들 사이에 문건에 나온 내용에 대한 논의가 오갔는지 통신기록이나 이메일 기록 등을 조사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로 두 차례 일하면서, 비서실 관계자들이 언론에 난 기사 때문에 유출자 색출 차원에서 보안 담당자에게 휴대전화를 제출하는 일을 종종 목격했던 저로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일 뿐 실제 조사가 있었나 싶어 고위 당국자에게 물었지만 자신은 정책을 다루고 있어 잘 모르겠다며 그건 다른 팀에서 할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해당 사건에 책임 있는 고위 당국자가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안 이뤄졌는지 확인도 안 한 상황에서 미국을 의심할 단서나 근거가 없다는 말부터 한 셈입니다.

또 하나, 이 당국자를 포함해 우리 정부는 미국이 대통령실을 도∙감청 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미국이 조사를 결과 끝내 결과가 나오면 설명이 있을 거란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미국 측 조사 결과, 유출된 문건이 도청 정보를 토대로 작성된 걸로 드러난다 해도 과연 미국이 우리에게 스스로 도청한 사실까지 말해줄까요?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말처럼 어느 나라나 하는 일이니 '쿨'하게 했다고 이야기해 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상식선에서는 회의적입니다. 이 당국자에게도 미국이 조사 결과 도청을 했다 해도 이걸 우리에게 말해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당국자는 이에 대한 답 대신 "현재 (미국 정부에서) 하는 이야기는 하루하루 조사하고 있다는 거다. 자신들이 알아내는 걸 알려주겠다는 게 미국의 이야기이다"라고만 답했습니다.
 

도·감청? 외국 정보기관이 '합법적 감청'을 할 수 있나

미국은 지난 1978년 국가 안전 보장 사건에 대한 해외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전자감시 및 물리적 압수수색이 가능하도록 하는 해외정보감시법(ForeignIntelligence Surveillance Act)을 제정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 정보기관은 이 법에 따라 해외에 있는 외국인의 이메일이나 통신기록 등을 영장 없이 수집할 수 있습니다. 미 정보기관이 첩보활동을 벌인 게 사실이라면 우리 입장에서는 불법 도청이지만 미 정보기관 입장에서는 적법한 감청인 겁니다.

우리 정부 당국이 이번 사건을 언급하면서 '도·감청'이란 용어를 쓰고 있는데 도청으로 정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미국은 자국법에 따른 '합법적 감청'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불법 도청'입니다. 우리 정부가 감청이라고 하는 건 스스로 주권을 부정하는 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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