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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선거제 개편, 이번엔 이뤄질까?

- '말잔치'로 끝난 국회 전원위원회…단일안 못 내 </br> - 김진표 국회의장 "늦어도 5월 중순까지 단일안 만들 것"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 가득 메운 미래의 유권자들 (사진=연합뉴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기 위한 전원위원회 마지막 날인 어제(13일) 반가운 손님들이 국회를 찾았습니다. 미래의 유권자인 경기 의왕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파견 연장 동의안'에 대한 토론 이후 20년 만에 열린 전원위를 견학하려고 여의도까지 온 겁니다. 중대선거구제니 권역별 비례대표제니 낯선 단어들로 본회의장 공기는 무거웠지만 아이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방청석에 앉아 전원위를 지켜봤습니다.

지난 3일부터 나흘간 전원위에 참석해 연단에 선 국회의원은 모두 100명입니다.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1입니다. 의원 한 명당 7분씩 발언했으니까 12시간 가까이 진행된 셈인데, 그만한 소득은 있었을까요? 전원위 회의록을 바탕으로 국회의원 100명의 발언을 분석해 봤습니다.
 

선거구제 vs 중대선거구제…쟁점마다 '팽팽'

선거제도 개편 전원위원회 선서구제 개편

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 유지에 찬성한 의원은 21명이었습니다. 선거구제를 개편하지 말고 현상 유지를 하자는 의견입니다. 일부 지역에라도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보자는 의원은 16명이었습니다. 이 중에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부터 해보자고 주장한 의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선거제도 개편 전원위원회 국회의원 수

국회의원 수에 대한 의원들의 생각도 살펴봤습니다. 의원정수를 줄이거나 유지하자고 한 의원은 14명이었고, 확대하거나 적어도 축소는 안 된다고 한 의원은 10명이었습니다. 최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의원 수를 최대 30명까지 줄일 수 있다고 언급했었죠. 김 대표의 발언 때문인지 의원 수 축소를 요구한 의원 중에는 여당 소속이 더 많았습니다.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도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정당과 관계없이 대체로 비례대표의 확대나 유지를 요구했습니다. 위성정당 문제를 일으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여야 할 것 없이 폐지하자는 의견이 훨씬 많았습니다. 지역구에서 아깝게 당선되지 못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할 수 있게 만드는 석패율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밖에 영호남 지역주의 구도를 완화하기 위해 동서 권역을 하나로 묶는 지역균형 비례제 아이디어도 여야에서 동시에 제기됐습니다.
 

100인 100색 말잔치…웅변대회장 같았던 전원위

이처럼 전원위에서는 선거구제, 의원정수, 비례대표제 등 주요 쟁점을 놓고 단 한 가지도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았습니다. 각종 소수 의견까지 감안하면 국회의원 100명이 100개의 선거제 개편안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번 전원위는 릴레이식 자유 발언 형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웅변대회처럼 의원들이 각자 주장을 펴는 걸로 끝나고 만 겁니다.

같은 당 의원들끼리라면 선거제 개혁에 대한 밑그림을 비슷하게 그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원위 결과 '동상이몽'이었음이 확인됐습니다. 지역구가 도시나 농촌이냐, 지역구 의원이냐 비례대표 의원이냐, 선수는 어떻게 되느냐. 의원 개개인의 처지에 따라 입장이 다양하게 나뉘었습니다.

애초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마련한 선거제도 개편 결의안은 아래와 같이 세 가지였습니다.
 
①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② 소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③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이 세 가지 안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의원도 있었지만, 안 그런 의원도 많았습니다. 모두가 선거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는 뜻을 같이했지만 경우의 수는 더 많아진 겁니다.

물론 이번 전원위가 반드시 합의를 보겠다며 소집된 건 아닙니다. 정개특위 결의안에 이견이 속출하자 의원 개개인에게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주겠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원위에 질문이나 토론, 논쟁은 없었습니다. 이견을 조율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겁니다.

급기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전원위는 실패했다고 선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용 의원은 "나흘간 자괴감만 들었다"며 "진지한 숙의 과정이 아니라 남는 것 없는 말 잔치로 끝났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모든 개혁은 반성으로부터…고개 숙인 의원들

전원위를 보면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을 떠올린 분들이 적지 않았을 겁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기 때문에 비판을 피해 가긴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일부 국회의원들의 진지한 반성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열망을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질의·토론 하는 이탄희 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 민주당 이탄희 의원

전원위 1번 주자로 발언에 나선 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거법 개혁은 노무현의 꿈이었습니다. 사람 바꿔서 해결 안 된다, 선거 구조 안 바꾸면 대한민국 정치는 계속 동네 싸움에 불과하다, 이미 20년 전에 답이 다 나온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해결을 못 한 이유는 딱 하나, 양당의 기득권 때문입니다. 탐욕의 위성정당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저부터 반성합니다."

질의·토론 하는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사진=연합뉴스)
▲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과연 우리 정치가 국민들의 욕구와 기대치에 부합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이를 개선 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반성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정치개혁과 선거개혁을 논의해 봤자 국민들 눈에는 또 다른 그들만의 리그, 당신들의 천국을 벌인다고 외면하실 것입니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
▲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은 민주당 오영환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언급하며 반성의 뜻을 밝혔습니다.
 
"꼴값만 떠는 국회는 해산하라. 국회의원 백 명은 없어도 된다. 전원위원회 기사의 댓글입니다. 정치를 바꾸려면서 전원위원회를 열었지만 국민들 눈에는 그마저도 위선으로 보일 뿐입니다. 불신이 해소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없습니다. 최근 오영환 의원의 불출마 선언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진영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 하기에 바쁜 정치현실 극단의 갈등 속 서로를 배척한 이들을 설득하고 조정할 자신이 없었다 선배 의원으로 반성합니다. 결국, 제도가 아닌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우리 정치는 국가의 미래가 아닌 당리당략을 또 국민이 아닌 지지층만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말 뿐인, 금방 잊힐 반성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개혁은 반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들의 반성이 선거제도 개편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향후 일정은?…김진표 "위성정당 없어지는 안 만들어질 것"

우선 정개특위는 오는 18일부터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해 3차례 공론조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1차 여론조사는 전국 만 18살 이상 성인 5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다음 달에는 권역별·성별·연령별 비례에 따라 시민 참여단 5백 명을 모아 2·3차 숙의 공론조사를 합니다. 또 정치학자와 법학자 등 선거제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진표
▲ 김진표 국회의장

김진표 국회의장은 오늘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위성정당은 반드시 없어지는 안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토론회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들을 잘 수렴해서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에 관한 단일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가능하면 4월 중에, 늦더라도 5월 중순까지는 단일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지만 공약수를 모아보면 2, 3개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게 김 의장의 생각입니다. 이 조합을 두고 여야 협상을 거쳐 단일안을 마련하고, 본회의 표결을 거쳐 이르면 다음 달까지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 짓는다는 구상입니다.

20년 만에 전원위를 열었다는 건 곧 국회가 개혁을 약속했다는 메시지입니다. 미래의 유권자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바람만 잡고 끝낸다면 21대 국회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국회로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여야가 강한 의지를 갖고 신속하게 추진하되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까지 반영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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