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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친미도, 친중도 아닌 우리 길을 간다'는 마크롱의 '줄타기 외교'

[스프칼럼] 국내 지지율 추락 만회하려는 승부수일까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출처: AP=연합뉴스)
5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중국이 깔아놓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묵직한 선물보따리까지 들고 최근 귀국했습니다.

프랑스 에어버스 항공기 160대와 헬리콥터 50대를 파는 수십조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고, 프랑스 전력공사는 중국과 해외 풍력발전 프로젝트를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알스톰사의 각종 산업 장비도 중국이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프랑스도 중국 텐진의 에어버스사 조립 공장을 두 배로 늘리는 투자를 결정했고, 단일 수주규모로는 최고인 4조 원대의 컨테이너선 16척을 중국 선박 그룹에 발주했습니다.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나란히 걷는 시진핑과 마크롱 (출처: 베이징 AP=연합뉴스) 시진핑-마크롱 광저우 회동 (출처: AP=연합뉴스)
의전도 대단했습니다. 시진핑 주석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정상회담과 만찬을 한 데 이어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광둥성까지 이동해 다시 시 주석과 만찬을 했습니다. 시 주석이 베이징이 아닌 다른 곳까지 가서 정상과 만찬을 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대접이라고 합니다.

중국 대학서 환영받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출처 : 마크롱 트위터 캡처)
강연을 위해 방문했던 광저우 쑨원대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 대학생들로부터 '아이돌급'으로 환대를 받았습니다. 자국인 프랑스에서 연금 개혁 시위로 비난만 받던 마크롱이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극진한 대접에, 묵직한 선물 보따리까지 챙긴 뒤 '구름을 밟는' 기분으로 중국이 깔아준 레드 카펫을 밟으며 귀국길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기분이 '업(up)'된 때문인지, 아니면 선물값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인지 귀국길 기내 인터뷰는 거침없었습니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타이완 문제에 대해서 "유럽이 '신하'가 돼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또 "두 초강대국(미중) 사이에 긴장이 고조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구축할 시간이나 재원을 갖추지 못한 채 미국에 종속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마크롱의 발언은 훨씬 덜 정제됐지만, 프랑스 대통령실 요청에 따라 해당 발언들은 보도되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속 시원하게 '질렀을 지' 짐작할 만합니다.

이 발언들이 보도되자 유럽과 미국에서 일제히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먼저 영국의 한 의원은 "마크롱은 프랑스를 대변하는 것이지 유럽을 대변하는 게 아니다"면서 "지금 와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게 놀랍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유럽이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우크라이나전을 유럽에 맡겨 두고 손을 떼야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루비오 미국 연방 상원의원은 "우리는 중국이 제기하는 위협과 대만 문제에 집중하고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당신들이 알아서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스프칼럼 마크롱
트럼프 전 대통령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는 폭스 뉴스와 인터뷰에서 "마크롱이 중국에 비굴하게 아첨했다"(트럼프는 속어를 썼죠. kiss ass(엉덩이에 키스하다))면서 "그는 미국의 친구지만 중국에 비굴하게 아첨하면서 중국과 같이 가고 있다. 이것은 국제 사회에서 바이든의 리더십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바이든을 겨냥했습니다.

이른바 성관계 입막음 의혹으로 기소됐지만, 2024년 대선에 완주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회는 이때다'하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펀치를 날린 것이죠.

마크롱 대통령에게 십자포화가 쏟아지자 중국은 마크롱을 적극 엄호하며 '애프터서비스'에 나섰습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의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마크롱 방중과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발언은 드골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고 추켜세웠습니다.

신문은 사설에서 "드골은 미국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고, 유럽에서 큰 논쟁을 불렀지만, 프랑스의 자주적인 정치 전통을 수립했고 프랑스는 주요 강대국의 지위를 얻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드골 대통령이 미국 지휘 아래 있던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에서 프랑스를 탈퇴시키고, 프랑스를 핵무장하면서 '위대한 프랑스'를 기치로 유럽 민족주의를 부흥시켰던 일들을 마크롱 대통령의 최근 행보와 비교해 추켜세운 겁니다.

샤를르 드 골 (출처: 위키피디아)
드골은 나폴레옹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이죠.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드골에 비교된 마크롱은 최대의 찬사를 받은 셈입니다.

따지고 보면, 미중 대결과 같은 세계 패권 다툼 속에서 유럽이 종속되지 않으려면 '전략적 자율성' 이 중요하다는 마크롱의 발언은 그동안의 지론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는 그동안 계속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며 유럽 대국의 지위를 지키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대통령실이 보도 자제를 요청했을 정도로) 미국에는 선을 긋고 중국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인 이유는 따로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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