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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미국 기밀문건에 왜 우리나라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살상 무기 지원'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지난해 4월로 먼저 가보겠습니다. 지난해 4월 11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나라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습니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리 국회 화상 연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목숨을 살릴 군사 장비가 대한민국에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우리나라에 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헬멧을 비롯해 군수물품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살상 무기는 지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무기 지원 요청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올해 2월 26일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산 무기가 지원된다면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도 우크라이나와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155mm 포탄을 비롯해 우리 돈으로 4천630억 원 규모의 무기 추가 지원 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동맹국들의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콕 짚어 지원을 요청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결국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미국도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해 주길 바라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결정을 하면 이는 우리 관계를 파괴할 것입니다. 우리(러시아)가 그 분야(군사 분야)에서 북한과 협력을 재개하면 한국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좋아할 것인가. 이 점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지난해 10월 말, 대놓고 우리나라를 위협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말라는 우리에게 던진 도발적 경고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살상 무기는 지원하지 않습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견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맹인 미국의 요구를 아예 무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외교적으로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11월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 미국 통해 우크라이나군에 155mm 포탄 10만발 제공

지난해 11월, 우리나라가 만든 155mm 포탄을 미국이 사가서, 우크라이나에 보낸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당시 우리 국방부는 "미국이 최종 사용자여야 한다는 전제 하에 논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수출한 포탄의 최종 사용자가 미국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되면, 우리나라가 포탄이라는 살상 무기를 사실상 지원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동안 우리 정부가 공언해 왔던 살상 무기 지원은 없다는 입장과 배치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과 관련된 큰 줄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 정부가 살상 무기 지원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궁금할 것이고, 그러니 관련된 내용은 정보로서 가치가 분명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에 유출된 미국 기밀 문건,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와 관련된 문건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미국 기밀 문건에 담긴 내용은 살상 무기 지원과 관련한 지금까지 맥락과 이어집니다. 살상 무기 지원과 관련해 우리가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고민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기밀문서는 이문희 전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이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 전 비서관은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우리나라가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우려했습니다. 이 전 비서관이 말하는 '난처한 상황은' 우리나라가 미국이 요구한 대로 포탄을 미국에 제공할 경우, 우리나라는 포탄의 '최종 사용자'가 미국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우리 국방부가 밝혔던 '최종 사용자'라는 표현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산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면 사실상 우리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지원되는 것이니 난처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사진=연합뉴스)
▲ 이문희 전 대통령실 외교비서관

이 문제에 대해 이 전 외교비서관은 당시의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 문제를 압박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할 것을 걱정했습니다. 왜냐면 당시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방침이 서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3월 1일은 한미 정상회담을 약 2달 정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우리나라를 압박하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할 지를 우리 외교 안보 당국자들이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 자연스럽습니다. 미국이 강하게 압박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으로 합리적으로 추측이 됩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문건에서는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의 우려가 이어집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과 살상 무기 제공 관련 입장 변경을 비슷한 시기에 발표하면 여론이 두 개 사안에 대해 거래가 이뤄진 걸로 여길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은 3월 7일 발표됐습니다. 기밀문서에 적혀 있는 날짜는 3월 1일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이 우려되면,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게 상식입니다. 기밀 문건은 이런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대안을 제시합니다. 폴란드에 155mm 포탄 33만 발을 판매하는 방안이었습니다. 그리고 김 전 실장의 제안에 이 전 비서관이 동의했다(agree)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미국 기밀 문건에는 김 전 실장이 다른 문건에서 언급한 우리나라에서 만든 155mm 포탄의 수송 계획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표로 자세히 작성돼 있었습니다.

관련 내용은 8뉴스에 자세히 보도됐습니다.
 

그리고 우리 돈으로 1천600억 원이 넘는 155mm 포탄 수십만 발이 폴란드에 수출되는 것으로도 저희 취재 결과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저희 보도 다음날,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도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와 포탄 지원을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한국과 협상 없이는 무기류를 인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기밀 문건에 등장했던, 폴란드를 통해 살상 무기(155mm 포탄)를 우회 지원한다는 설이 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이번 기밀 문건 유출 파문은 크게 3가지 부분으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밀 문건의 진위 여부입니다. 미국 국방부와 법무부가 조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보기관에서도 관련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는 조작됐다는 발표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 군 전사자 숫자 등이 조작된 걸로 보인다는 정도 외에 어디까지 조작이고, 어디까지 진짜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조사가 끝나봐야겠지만, 미국 현지 언론에서는 유출 규모와 경위를 파악하는 데에만 최소 수 개 월이 걸릴 거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기밀문건

다만, 지금까지(4.13 기준)까지 나온 우리나라 대통령실의 입장을 보면, 우리나라는 관련 내용이 '거짓'이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합니다. 대통령실은 대변인실을 통해 "양국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건의 '상당수'가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미국 기밀문서 전부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을 조정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 관련 내용도 사실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합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우리나라와 관련된 미국 기밀 문건으로 추정되는 문건에 담긴 내용은 '거짓'이라는 데 방점이 찍히고 있습니다. 진위 여부는 일단 시간이 적잖이 걸리겠지만, 조사 결과부터 지켜봐야겠습니다.

두 번째는 만약 문건 중 일부라도 진짜라는 전제 하에, 문건이 작성된 경위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문건에는 'SI-G'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는 흔히 통신정보, 신호정보를 통해 수집된 특별한 정보를 의미합니다. 결국 도·감청으로 획득한 정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우리나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을 도·감청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현재는 진위 여부를 떠나 도·감청 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이 몰려 있기도 합니다. 아주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힘든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하더라도, 비공식적으로는 우리가 미국에 따질 건 제대로 따지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미국에게서 최대한 받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이번 기밀 문건 파문으로 불거진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관련해 이제는 우리 정부가 좀 더 명확히 입장을 정할 시점이 됐다는 것입니다. 기밀 문건 파문으로 폴란드 우회 지원 정황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오히려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제는 명확한 입장을 확고히 정해서 주변국들 뿐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도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 됐습니다. 지금 우리 정부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눈치만 보면서 어떻게 든 꼼수를 부리는 듯한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면 실컷 지원해도 좋은 소리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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