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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전기차를 둘러싼 미국-유럽 분쟁의 실체

By 로빈슨 메이어 (뉴욕타임스 칼럼)

뉴욕타임스
*로빈슨 메이어는 히트맵 뉴스(Heatmap News)의 편집장이자 주로 기후, 에너지에 관련한 글을 쓰는 언론인이다.

바이든 정부의 상징적인 기후 법안에 유럽 국가들이 보인 격한 반응에는 신랄할 정도로 역설적인 구석이 있다. 지난 6~7년간 유럽 정부 관계자들은 기후 친화적 경제가 미래라는 말을 꾸준히 해왔다.

"화석연료와 오염 없이는 굴러가지 않던 기존의 성장 모델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확신합니다."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이 2019년에 한 말이다. '새로운 성장 전략'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으며, 그 전략은 곧 "탄소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혁신을 촉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의 취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런데 지난해 8월 바이든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자, 유럽의 지도자들은 해당 법안이 기후변화 부문의 글로벌 협력에 반하는 "매우 공격적인" 보호주의 조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는 수소, 태양열 패널, 탄소배출 제로 항공 연료 등 새로운 산업 분야에 3,7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기자동차를 살 때 주는 최대 7,500달러의 세제 혜택은 법안에 담긴 주요 보조금 정책 가운데 하나인데, 미국 또는 미국의 자유무역 파트너 국가에서 생산된 광물을 이용해 주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배터리로 북미 대륙에서 조립된 전기자동차에만 적용된다.

이러한 보호주의는 역사적으로 전문가들이 그려온 기후변화와의 싸움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 사실 기후변화와의 '싸움'이라는 표현 자체가 언젠가는 인류가 똘똘 뭉쳐 화석연료를 끝장내는 최후의 결전을 치를 거라는 전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특정한 종류의 경쟁(협력이 아니라)이 필요하다고 볼 이유가 생겼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기후변화와의 싸움은 오히려 더 많은 보호주의, 더 많은 경제적 대립, 더 많은 무역 전쟁으로 이어지리라 예측할 수 있다.

학계는 지난 반세기에 걸쳐 안정적이고 거주 가능한 기후가 하나의 공유재(public commons)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아마도 인류가 관리하는 공유재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무섭고, 가장 중요한 공공재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학자들은 화석연료 소비와 그에 따른 탄소 배출이 경제 발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기후 협상에 임하는 세계 각국은 끔찍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협력'을 선택해 이웃 국가들과 함께 탄소 배출량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거나, 이웃 국가들의 배출 감축에 슬쩍 묻어가면서 경제 성장을 추진하는 기회주의의 길을 가거나.

다시 말해, 개별 국가는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 세계의 이익에 반하며 자국의 이익만을 선택할 인센티브가 있다. 죄수의 딜레마인 셈이다. 노벨상을 받은 예일대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를 비롯한 여러 학자는 이런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수많은 시간을 쏟았다. 국제 협약을 제외한 해결책은 좀처럼 찾기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약 10년 전부터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선진국들이 경제 성장과 탄소 배출량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쫓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 오염 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중국은 친환경 기술 산업의 붐으로 엄청난 경제적, 전략적 이득을 누렸다. 기후 행동이 실제로는 트레이드오프가 아님을, 즉 배출량을 줄인다고 경제 성장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전 세계가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배터리와 신재생 에너지 같은 저탄소 기술은 미래의 번영을 약속하는 기회 그 자체였다. 값싼 에너지를 만들어내면서 화석연료나 연소 기관보다 낮은 가격에 인간 사회의 번영을 뒷받침하는 동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정치학자 마이클 아클린과 마토 밀덴버거는 역사적으로 국가들이 이웃 국가가 기후 공약을 철회했다고 똑같이 기후 공약을 철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 국가의 기후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 내부의 정치적 경쟁, 즉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둘러싼 국내 세력 간의 다툼이었다. 기후 정책으로 인해 '새로운 경제적 승자와 패자'가 발생하고, '승자'가 국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때 더 많은 기후 정책이 통과된다는 것이 아클린과 밀덴버거 연구의 결론이었다.

미국과 유럽이 서로의 기후 정책을 두고 벌이는 다툼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이익과 미래의 성장이 제조업, 화석연료 기업, 노동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갈등도 마찬가지다. 한편 기업 경영진과 활동가, 로비스트와 공무원도 경제를 어떻게 굴려야 하는지에 대해 각자 생각이 있고, 이 또한 결과물에 영향을 미친다.

2022년,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의 조나스 남은 독일 같은 수출 및 제조업 중심의 국가가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보다 먼저 국가적인 기후 정책을 도입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제조업과 제조업의 정치적 동맹 세력이 친환경 기술에서 기회를 알아봤고, 이를 포착하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넣었다고 조나스 남은 해석한다.

이런 역학관계는 수출 중심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미국 내 제조업 촉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기업들도 똑같은 기회를 노리고 있고, 정치인들 역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대중적 지지 기반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국가가 새로운 산업에 뛰어들어 이익을 보려고 한다면 무역 분쟁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청정에너지는 성장 중인 전략 산업이고, 그런 분야에서는 언제나 무역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출신이자 비영리 단체 실버라도 정책 엑셀러레이터(Silverado Policy Accelerator)를 창립한 모린 힌먼 대표의 주장이다. 민간 항공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보잉과 에어버스를 둘러싸고 수년간 대립해 왔다. 미국과 유럽연합 모두 전 세계 항공 시장에서 더 많은 몫을 차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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