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 신청 같은 코트 예약…매크로는 공공연한 비밀
공공 테니스 코트 예약이 얼마나 어려운지 기자가 직접 서울 양천구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목동테니스장 예약에 도전해봤다. 하드 코트만 24면에 달하고 주차장이 넓어 테니스 동호인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매일 오전 9시(구민 대상)와 9시 30분(전체 대상) 두 차례에 걸쳐 온라인 선착순으로 일주일 뒤 코트 사용 예약을 받는다. 양천구민 동료와 오전 9시 정각에 예약 사이트에 접속했다. '18~19시'만 빼고 이미 예약이 다 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마 조금 전 본 18시 코트조차 새로 고침을 누른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학부 때 인기 강의 수강 신청에 도전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코트 예약이 어렵다 보니 매크로 사용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인터넷 광고를 보고 연락한 한 매크로 제작 업자는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은 보안이 세 35만 원을 받지만 만드는 게 어려운 건 아니며, 실제 지금 사용하는 분이 있는데 잘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비용을 더 준다면 이틀 만에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제작자도 있었다. 예약 사이트 개방 시간에 맞춰 매일 아침 졸린 눈 비비며 손가락을 풀던 사람들만 억울할 법하다.
1초 만에 예약 수두룩…매크로 실체 확인
서울 양천구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도저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에 예약하는 사용자가 많아 부정하게 매크로를 이용한 예약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자동입력 방지 문자 같은 대비책을 도입해도 그때뿐"이라고 말했다. 매크로 사용을 단속하라는 시민 불만도 많았고, 실제 부정 예약이 많은 것도 알지만 대응을 못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석 달간 약 100회 예약…매크로 넘어 꼼수까지
기자에게 털어놓은 김 씨의 예약 방식은 'URL 직접 접속'이다. 예약 사이트 첫 화면에서부터 여러 차례 클릭을 거쳐야 넘어가는 최종 예약 페이지가, 단지 날짜만 바꾼 URL 주소만 입력해도 바로 들어가진다는 것이다. 구청에서 관리하는 공공 사이트가 이토록 허술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인데, "이런 방식을 코트 관리사무소에 얘기하고 시연도 해줬지만 '문제없다'고 들었다"는 게 김 씨 설명이다. 김 씨는 이렇게 독차지한 황금시간에 참가비를 받고 회원을 모집해 테니스 클럽까지 운영 중이다.
처벌도 쉽지 않아…'복불복' 추첨제가 답?
테니스 동호인들은 매크로 논란을 잠재우려면 운에 맡기는 추첨제가 답이라고 말한다. 출발선이 다른 건 못 받아들이겠으니 운에 맡겨버리자는 자조 섞인 목소리다. 고른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중 예약자나 일정 횟수 이상 누적 사용한 이는 예약에서 배제해야 한다고까지 말하는 동호인도 있다.
최근 국회는 매크로를 통한 티켓 구매 후 재판매한 사람을 최대 1천만 원의 과태료로 처벌할 수 있는 공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공연 예술에 국한돼 테니스 코트 같은 시설 예약과 재판매엔 해당되지 않는다. 이에 앞서 경찰은 지난 2019년 매크로를 이용한 티켓 판매 행위를 현행 법체계 안에서 처벌할 수 있다며 단속을 공언한 바 있다. 법조계에선 시설 예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조용의 변호사는 "공공시설은 주민 복리 증진 등에 이바지하려는 목적에서 설치된 것인 만큼 공공시설 관리 업무의 공정성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적극적인 단속과 처벌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