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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도청 부인 못하는 미국…진짜 뼈아픈 건?

[월드리포트] 도청 부인 못하는 미국…진짜 뼈아픈 건?
SNS에 유출된 기밀 추정 문건 파동으로 미국이 또 한 번 시끄럽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당사자인 미국보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시끄럽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스를 통해 의혹이 불거진 뒤 미 당국은 지난 주말 내내 '살펴보고 있다'거나 '조사를 공식 의뢰했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습니다. 도청 정황이 명백해 보이는 상황에서 백악관이나 국방부가 딱히 할 말도 없을 거란 분석이 많기도 하지만 사실 국가 간 정보전 무대에서 도청은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지적 또한 많은 게 사실입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 안보 위해 많은 활동"

전직 미국 정보요원 스노든 (사진=AP, 연합뉴스)

앞서 지난 2013년, 미국이 동맹국 정상까지 포함해 무차별 도청을 실시해왔다는 사실이 폭로됐습니다. 중앙정보국 CIA 출신으로 국가안보국에서 일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을 통해서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미국의 첫 반응은 '그게 뭐?'였습니다. 가디언지를 통해 기밀 자료가 세상에 알려지자, 당시 존 케리 국무장관은 보도 직후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내가 아는 한 (관련 의혹은) 특이한 일은 아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자국 안보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논란이 확산되자 이후 케리 국무장관도 일부 감시활동은 '도를 넘어선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도청을 포함한 첩보 활동을 미 고위 당국자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당시 문제가 컸던 건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뿐 아니라 동맹국, 특히 메르켈 독일 총리 같은 정상급 인사의 통화까지 도청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더 이상 외국 정상 통화는 감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그럼 이번 도청 파문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약속은 깨진 걸까요? 당시 개혁 방안의 핵심은 NSA, 즉 미 국가안보국의 정보 수집과 저장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무차별적인 개인 통화 기록을 수집을 금지하고 미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사생활 보호 대책도 강화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외국 정상 도청 논란과 관련 우방이냐 적이냐를 막론하고 외국 정상들의 대화를 엿듣는 활동은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발표와 관련해 간과해선 안 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명시적으로 도청 중단을 발표한 외국 정상을 제외하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언제든 도청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는 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핵심은 어느 나라 국민이냐를 막론하고 미국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을 감시하지 않겠다는 것"(The bottom line is that people around the world - regardless of their nationality - should know that the United States is not spying on ordinary people who don't threaten our national security)이라고 강조했는데, 바꿔 말하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계속 감시하겠다는 있다는 뜻이 됩니다.

또 '국가 안보' 들고 나올까…구멍 난 초강대국 기밀

미국 국기 성조기

사실 도∙감청이 크게 논란이 되는 건 정보나 수사기관이 해당 국가의 국내 정치인이나 유력 인사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사찰이 그랬고 수사기관의 지나친 감청 영장 신청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외국을 대상으로 하는 도청은 (사실 외국 정보기관이 통신을 엿듣는 활동이 해당 국가에서 합법일 리 없기 때문에 감청이라고 하는 건 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국의 안보 등 국가 이익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도청 폭로가 나올 때마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내세웠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따라서 도청을 포함한 이번 기밀 문건 파동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미국은 국가 안보 차원의 활동이었다고 강변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불가피한 만큼 물밑 소통을 통해 파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에 나설 걸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외교 무대이니만큼 이번 사태가 사실로 드러난다 해도 피해 당사국들이 미국을 상대로 양국 관계를 뒤흔들 정도로 문제 삼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없었던 일처럼 잘 넘어갈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첩보 활동에서 동맹국의 정보 공유는 중요합니다. 아무리 초강대국 미국이라지만 전 세계 정보를 혼자서 다 모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잊을 만하면 터지는 미국의 문건 유출 파동이 동맹국들에게 미더울 리 없습니다. 사실 도청을 통해 자국의 주요 인사들의 정보를 수집했다는 것도 마뜩치 않은 마당에 공유한 정보마저 줄줄 샌다면 적어도 전처럼 원활한 협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미 국방부가 의뢰했다고 밝힌 법무부 조사는 전세계 관심이 쏠린 도청 여부보다는 문건의 진위와 유출 경위를 밝히는 데 집중될 걸로 보입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그게 훨씬 중요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일각의 분석처럼 러시아의 소행으로 드러나든, 지난번 스노든 사건 때처럼 내부자 고발의 유출로 드러나든 미국 입장에서 답이 안 나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사태가 미국에게 뼈아픈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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