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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끊이지 않는 산불…자나 깨나 산불 조심

[취재파일] 끊이지 않는 산불…자나 깨나 산불 조심
지난 3일 오전 충남 홍성 산불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루 전날 오전 11시쯤 발생한 산불은 밤새 진화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이틀째 확산 중이다. 서부면으로 들어서자 희뿌연 연기가 산을 덮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진화대원과 소방차들이 바삐 움직였다. 헬기들은 쉴 새 없이 물을 퍼 날라 시뻘건 불길 속으로 쏟아부었다. 집 밖으로 뛰쳐나온 주민들은 꺼지지 않는 산불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오전이면 잠잠했던 바람이 이날은 초속 평균 5미터가량 불어 댔다. 초대형 헬기 2대를 포함해 산림청과 군부대, 소방청, 국립공원, 지자체에서 18대 헬기가 진화에 투입됐다. 공중 진화대를 포함 공무원 등 2천9백83명과 소방차 등 장비 1백53대가 온 힘으로 불길과 싸웠다.

충남 홍성 산불

거센 바람에 산불 급속히 확산


이런 노력으로 오전 11시 기준 진화율이 73%까지 올라갔다. 산불영향구역 9백84ha, 불길이 번져 나가는 화선 20km 가운데 14.7km는 진화했고 남은 화선은 5.3km였다. 주불 진화의 희망이 엿보였지만 곧 기대가 무너졌다. 바람 때문이다. 오후로 가면서 점점 강해져 최대 12미터가량 불어댔다. 더군다나 불이 난 곳은 대부분 소나무 숲이다. 줄기부터 솔잎까지 나무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소나무는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화염을 뿜어 올렸다. 바람 소리와 섞여 들리는 숲이 불타는 소리는 공포였다. 바람이 부는 대로 불이 급속히 번져 나갔다. 산불이 집과 축사로 바짝 다가오자 주민들은 수도관에 연결한 고무호스로 필사적으로 물을 뿌리며 맞섰다. 소방차와 헬기들도 더 바빠졌다. 하지만 강한 바람에 진화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오후 2시 기준 66%, 산불영향구역은 1천54ha로 늘었고, 화선도 23.8km로 더 길어졌다. 불을 꺼야 할 화선 길이가 8km로 늘었다.

충남 홍성 산불

초토화된 집, 몸만 겨우 대피


거센 불길이 휩쓸고 간 곳은 폐허로 변했다. 폭격을 맞은 듯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가재도구는 잿더미로 변해 성한 게 없었다. 주방과 거실, 방은 숯검정이 돼 구분조차 어려웠다. 집주인의 교통수단이 됐던 전동차는 뼈대만 앙상히 남았다. 무겁고, 허망한 침묵이 깊게 깔렸다. 올해 86세인 박영순 할머니는 가까스로 대피했지만 60여 년 살아온 삶의 둥지가 한순간에 불타버렸다. 임시대피소에서 만난 박 할머니는 생사를 가를 뻔한 긴박했던 당시 상황에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외지에 사는 아들이 전화로 빨리 집 밖으로 대피하라는 말에 할머니는 통장과 도장, 주민등록증만 챙겨 방문을 나왔다. 도움을 주러 온 마을 이장의 차를 타고 빠져나오는 순간 시뻘건 불길은 할머니 집을 덮쳤다. 할머니는 당장 입을 옷가지 하나 챙기지 못했고, 자식들이 준 용돈도 꼬박 모아 놓았지만 한 푼도 가져 나오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그래도 다치지 않고 무사한 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충남 홍성 산불

발생 53시간 만에 진화…산림 1천4백54ha, 건물 2백5동 잿더미


홍성산불은 불이 난 지 53시간 만인 4일 오후 4시쯤 주불이 진화됐다. 때마침 비까지 내려 잔불 정리에 도움을 줬다. 사흘째 이어진 불로 산림 1천4백54ha가 불탔다. 전체 화선도 만 하루가 지난 시점보다 두 배가 늘어 46.7km나 됐다. 서부면 산림을 빙 둘러 불태웠다. 축구장(0.714ha) 2천 개가 넘는 면적이다. 산림만 태운 게 아니다. 주택 74동, 농축산시설 98동, 기타 33동 등 2백5동이 잿더미가 됐다. 또 돼지, 소, 염소, 닭 등 가축 8만 1천1백53마리가 죽거나 다쳤다.

집을 잃은 이재민은 44세대 67명이다. 대부분 임시거주시설에 머물고 있다. 불을 끈 지 하루 뒤인 5일 홍성을 비롯 충남 금산, 충북, 전남, 경북 등 동시다발적 산불피해를 본 전국 10개 시군구에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됐다. 이재민은 생계비와 주거비, 구호비 등을 지원 받게 된다. 생계비는 4인 가구 기준 월1백62만 원이고, 주거비는 완전히 파손된 전파의 경우 1천6백만 원, 반파는 8백만 원이다.

충남 홍성 산불

산불 원인 중 70%는 부주의로 인한 실화


올 들어 4월10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4백32건이다. 지역별로는 경기 76, 충남 56, 경북 55, 경남 46, 강원 38건 순이다. 산불로 불에 탄 숲은 3천5백74ha에 이른다. 지난 2천12년부터 2천21년까지 10년간 발생 원인을 보면 입산자 실화가 34%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이 논밭두렁 소각, 쓰레기 소각으로 각각 14%, 13%에 이른다. 담뱃불과 성묘객들의 부주의로 인한 산불도 5%와 3%나 된다. 산불은 대부분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자연발화의 경우 아주 드물다는 게 산림당국의 설명이다. 산불을 미리 막아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15일 산림보호법시행령이 개정됐다. 산림으로부터 100m 안에서 불을 놓으면 안 된다. 전면 금지된 소각행위를 어길 경우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산불 원인의 27%가 논밭두렁이나 쓰레기 소각에서 발생한다는 통계에 비하면 처벌 규정이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많다. 처벌 규정을 더 엄하게 높이고, 소각행위를 차단할 감시와 관리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산불에 약한 소나무 조림 줄여


산림청은 불에 약한 소나무 조림을 줄이고 있다. 지난 2천20년 3천9백47ha에서 21년엔 2천7백15ha로 31% 줄였고, 다시 지난해엔 2천3백2ha로 1년전에 비해 소나무를 15%가량 덜 심었다. 또 2년 전인 지난 2천21년부터는 매년 3백50ha에 이르는 내화수림대도 조성하고 있다. 나무껍질이 두꺼워 불에 특히 강한 동백나무, 굴참나무, 황벽나무 등을 심고 있다.

충남 홍성 산불

남성현 산림청장은 "한해 2만ha를 심는데, 산불로 2만ha가 잿더미로 사라져 버린다"며 산불을 막아야 할 이유를 말했다. 산림녹화 노력이 한순간의 부주의로 인해 물거품이 된다는 거다. 산불조심 기간은 5월15일까지다. 남 청장은 아까시꽃이 아닌 밤꽃이 필 때까지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산불은 산림만 초토화 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집과 생명도 빼앗는다. 산불은 무섭고, 아주 위험한 재난이다. '자나 깨나 산불조심'이다. 표어로만 그쳐선 안 된다. 다 함께 마음을 모으고 조심하면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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