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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긴 머리' 그녀, 체포 땐 '단발'…조각상 폭탄은 누가 줬나?


지난 일요일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 카페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수류탄 2개 위력과 맞먹는 TNT 200g 이상이 폭발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카페 유리창은 모두 깨졌고, 외벽도 무너졌습니다. 이 폭발로 1명이 숨지고 3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사망자는 블라들랜 타타르스키, 56만 명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군사 블로거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지지해온 러시아군의 나팔수였습니다. 그를 노린 표적 테러라는 점이 분명해지면서 이번 사건을 둘러싼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폭탄 가져온 건 26세 여성 트레포바, 그녀는 왜?

숨진 타타르스키가 폭탄이 숨겨진 조각상을 살펴보는 장면

폭탄은 조각상, 정확히는 타타르스키를 본뜬 흉상 안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석고로 만든 작품인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문제의 조각상을 선물받고 밝은 표정을 짓던 타타르스키는 몇 분 후 그 조각상이 터지면서 사망했습니다. 조각상을 카페로 가져온 건 26살 여성 다리야 트레포바였습니다. 긴 금발머리를 하고 카페로 조각상이 든 상자를 가져오는 트레포바의 모습이 CCTV에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트레포바는 폭발 직전 조각상을 살펴보던 타타르스키를 3m쯤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폭발 전후 달라진 헤어스타일…이유는?

사건이 발생한 바로 다음 날 트레포바는 러시아 수사당국에 체포됩니다. 그때 트레포바는 단발이었습니다. 긴 머리를 자른 것인지, 가발을 썼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폭발 전후 헤어스타일이 달라졌다는 건 분명합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 했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트레포바는 폭탄 테러범이 맞는 것일까요? 러시아 수사당국이 공개한 1차 심문 영상 내용은 보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뉘앙스로 해석됩니다.

폭탄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단발' 다리야 트레포바

한숨만 푹푹 쉬는 트레포바…한숨의 의미는?

영상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트레포바가 땅이 꺼질 듯 연신 한숨을 쉰다는 겁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황당한 듯 보이기도 하고 이미 검거된 상황에 대한 자포자기인 듯 하기도 합니다만 대화 내용은 이렇습니다.
 
수사관 : 구금된 이유를 알고 있나?
트레포바 : 그렇다. 타타르스키가 살해된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수사관 : 어떤 일을 했나?
트레포바 : 휴~ 폭발한 조각상을 거기로 가져갔다.
수사관 :누가 조각상을 줬나?
트레포바 : 휴~~ 나중에 말하면 안 될까.
 
트레포바는 폭발 현장에 조각상을 가져간 건 인정하고 있지만, 조각상이 폭탄인 줄 알고 가져갔는지 모른 채 심부름만 한 것인지는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폭탄으로 타타르스키를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각상을 가져갔고 그 현장에 있었다는 언급만 반복한 것입니다. 결정적 질문, 그렇다면 누가 조각상을 줬냐는 물음에는 즉답을 피했습니다. 폭탄을 준 사람이 이번 테러의 배후, 또는 배후로 연결되는 고리가 될 겁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투옥 중인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 세력과 함께 이번 테러를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트레포바가 나발니 지지자였다는 점,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에 참여한 전력 등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물론 우크라이나나 나발니 측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러시아 용병그룹 와그너와 러시아군 지휘부와의 갈등을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내부 암투가 진짜 원인이라는 겁니다.

트레포바가 어떤 진술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트레포바가 '한 언론 매체에서 일자리 제안을 받았고 인턴 프로그램 일환으로 조각상을 가져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폭탄이 들었는지는 몰랐다는 주장입니다. 마치 북한 김정남을 암살하는 데 가담했던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들처럼 테러인 줄 모르고 단순 가담했다는 얘기가 될 겁니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만 진짜 배후를 놓고 당분간 논란은 이어지게 됐습니다. 일단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숨진 타타르스키에게 용맹 훈장까지 수여하며 이번 사건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폭탄 테러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는 물론 정부 비판 세력, 반체제 세력을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래서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매파 정치인과 논평가들은 벌써부터 트레포바를 총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고, 스탈린 시절의 시베리아 수용소를 부활하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트레포바는 모스크바로 이송됐습니다. 구속적부심사가 진행됐는데 일단 두 달 구금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구금 기간 동안 어떤 새로운 증거들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트레포바가 폭탄 테러에 깊숙이 관여한 진범일지 단순히 조각상 폭탄을 배달한 또 다른 피해자일지 궁금합니다. 또 이번 폭탄 테러의 배후는 누구일지 러시아가 어디까지 밝혀내고 공개할지도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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