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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낯선 도시의 낯익은 이야기 - 올리비에 어워즈 '베스트 뉴 뮤지컬' <하늘 끝에 서다> (글 : 황정원 작가)

지난주 런던에서는 올리비에 시상식이 열렸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런던 무대에 오른 공연끼리 우열을 가리는 이 시상식에서 '최고의 새 뮤지컬' 부분에 <하늘 끝에 서다 Standing at the sky’s edge>가 선정되었다. 

<하늘 끝에 서다>의 중심에는 영국 중부의 중공업 도시 셰필드가 있다. 극작가 크리스 부쉬와 싱어송라이터 리처드 홀리 모두 셰필드 출신이며, 애초에 제작을 의뢰한 주최도 셰필드 극장이다. 뮤지컬의 배경 또한 셰필드의 악명 높은 공공임대주택, 파크 힐이다. 이를테면 대전 예술의 전당이 대전 출신의 극작가와 음악가에게 대전 빈민촌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을 의뢰한 셈이다. 

당연히 뮤지컬 전체에 셰필드의 사투리, 지역주민들의 자부심, 정치적 성향 등 지역색이 짙게 배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뮤지컬은 셰필드란 도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조차 순식간에 잡아당기는 흡인력과 보편성을 지녔다. 결국 작품은 입소문을 타고 올해 런던 국립극장으로 옮겨졌고, 열광적인 반응과 찬사를 얻었다. 여기에 올리비에 수상이 더해지더니 웨스트엔드에서 재공연 또한 확정되었다. 이는 작품성뿐 아니라 상업성 또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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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힐, 한 공공임대주택의 흥망성쇠

파크 힐은 영국 최초의 도시 재생사업을 통해 셰필드 빈민촌에 건축된 공공임대주택이다. <하늘 끝에 서다>는 서로 다른 시기에 파크 힐의 한 집을 거쳐간 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로즈와 남편 해리는 1960년대 초, 파크 힐의 완공과 더불어 입주한 지역 토박이들이다. 셰필드의 많은 주민들처럼 해리 역시 인근 철강공장에서 근무하며, 최연소 현장감독이 되겠다는 야망에 부풀어 있다. 이들 부부는 새 집과 더불어 펼쳐질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에 가득 차 있다.

조이네 가족은 라이베리아 난민으로 1989년 파크 힐에 정착한다. 전쟁을 피해 고국을 떠났지만 이 낯선 곳도 그다지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 이즈음 파크 힐은 이미 재개발 이전보다 더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칼부림, 마약, 살인 등 이웃에 만연한 강력 범죄 탓에 집 밖으로 한 발자국 떼기가 무섭고,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포피는 중산층의 30대 싱글 여성이다. 2005년, 도망치듯 런던을 떠나 파크 힐의 집 한 채를 구매해 새 출발을 꿈꾼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파크 힐은 그간 민간 자본의 투자로 고급 주거지역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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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족의 삶, 즉 세 개의 타임라인이 무대 위에서 동시에 흐를 때 극의 마법이 펼쳐진다. 무대는 파크 힐의 집 내부로, 지역 명물인 “I love you, will you marry me?” 그래피티도 무대 한편에 보인다. 세 가족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며 그들의 궤적은 계속 교차하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들은 심지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기도 한다. 다른 가족들은 존재하지 않는 듯, 대화는 가족 내에서만 오가지만 대화 주제는 하나, 셰필드의 지역 특산품인 양념 소스다. 전혀 다른 백그라운드를 지닌 그들은 양념병 하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각자의 평가를 내린다. “이거 하나면 끝이지!”라는 토박이 해리와 “뭔지는 모르겠는데 여기 사람들한테 되게 중요한 건가 봐.”라는 라이베리아 난민들, “들어는 봤는데… 그냥 우스터소스 아냐?”하고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런더너 포피. 

같은 공간, 그러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세 세대의 공존을 지켜보며 관객은 무관한 듯 보이던 캐릭터 간의 관계를 천천히 깨닫게 된다. 무대 위에서 동시에 보인 미래와 과거의 인과 또한 서서히 드러나지만 개입할 수 없는 관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비극적인 전개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Photo by Benjamin Elliott on Unsplash

개인의 삶에 드리워진 정치와 역사

뮤지컬은 개인들의 지극히 사적인 희망과 사랑, 꿈과 좌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관객은 그 과정에서 그들 모두가 묶여 있는 사회 시스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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