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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길복순', 끝내주는 전도연…"클래스는 영원하다"


"전도연은 전도연이다"

배우 설경구의 이 한 마디가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전도연의 위치를 확인시켜 준다. 그의 말대로 전도연은 대체될 수 없는 배우, 존재 자체로도 상징성을 띠는 배우다.

전도연이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배우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에 어울리고, 모든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한 배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몇몇 영화에서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색한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배우가 뿜어내는 연기력의 수준과 품격은 여느 배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꼭 맞아떨어진다.

킬복순

전도연은 영화 '길복순'(Kill Boksoon)으로 폼도 회복하고, 클래스도 증명했다.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 이후 약 20년 만에 도전한 누아르 영화이며, 사실상 첫 번째 액션 영화라 할 수 있다. 도전이 일상이었던 전도연의 인생에서 무엇이 더 새로울 수 있을까 싶지만, 선택받은 직업이라는 배우의 속성 탓에 영화에서 액션을 보여줄 일은 극히 적었다.

킬러들의 세계를 다룬 '길복순'에서 전도연은 업계 최고의 킬러 복순으로 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킬 빌'을 레퍼런스 하는 영화다. 또한 영화의 콘셉트를 생각하면 '존 윅'의 여성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과 '킹메이커'로 팬덤을 형성한 변성현 감독의 장점은 새롭지 않은 이야기로도 쌔끈한 장르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감각적이고 화려하게 설계된 촬영, 편집, 미술 등의 요소는 이야기를 특별하게 보이도록 하는 훌륭한 보완재다.

길복순

앞선 영화들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자기화하는 능력도 재주라면 재주다. '길복순' 역시 '존 윅', '킬 빌', '킹스맨', '셜록 홈즈' 등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를 레퍼런스 삼고, 몇몇 장면의 아이디어는 차용하기도 한다. 익숙한 설정 안에서 흡입력 넘치는 이야기와 매력적인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그러나 변성현 감독이 줄곧 해온 것이기도 하고,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하다.

'길복순'은 자식을 보살피는 엄마인 여성이 집 밖에선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하는 해야 하는 딜레마를 그려낸다. 10대 딸을 둔 싱글맘이라는 현실적인 설정과 여성 일급 킬러의 비현실적인 활약상은 영화 내내 교차하며 아슬아슬한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의 전반전인 톤 앤 매너는 블랙 코미디다. 변성현 감독은 킬러들의 세계를 배우의 세계에 대입했다. 킬러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작품'이라 칭하고, 살인 설계는 '시나리오', 업무의 규모와 난이도를 A, B, C의 등급으로 나눈다. 여느 회사처럼 서열도 있고, 직급도 있으며, 고용 형태에 따라 정규직도 있고 인턴도 있다.

길복순

작위적인 이 설정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이 세계에 뛰어드느냐 관망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재미와 만족도는 다를 것이다. 비현실적인 설정이 극대화된 작품답게 몇몇 대사는 유치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변성현 감독의 특출 난 장기는 자신이 애정하는 배우를 누구보다 멋지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배우의 매력과 역량을 극대화한 캐릭터를 설계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기와 룩까지 세련되게 뽑아내 새로운 얼굴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이 영화에는 '끝내주는 전도연'이 있다. 감독이 배우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 고민하던 전도연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구상했기에 '길복순'은 시작도 끝도 전도연이다.

킬복순

액션 배우 전도연의 모습은 낯설고도 흥미롭다. 50대의 몸놀림이 20대의 그것과 같은 순 없다. 몇몇 장면은 일급 킬러라기엔 몸짓이 지나치게 느리고 무거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액션 연기는 몸놀림이 다가 아니다.

액션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사건과 감정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구축되었는 가다. 전도연은 엄마이자 킬러인 '길복순'의 삶과 일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내며 액션 영화에서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냈다. 그리고 전도연과 최고의 순간을 함께 했던 두 배우 황정민, 설경구와의 재회도 이 영화의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배우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오히려 선택의 폭과 기회가 좁아졌던 전도연은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누누이 말해왔다. 변성현은 불씨를 지폈고, 전도연은 활활 타올랐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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