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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멈추지 않을 것"…황기환 지사 외신 인터뷰 등 발굴

황기환 선생과 프랑스 언론에 실린 부고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연합뉴스)
▲ 황기환 선생과 프랑스 언론에 실린 부고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은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며,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위한 것입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의 모델이 된 독립운동가 황기환 선생은 1919년 8월 25일 자 미국 매체 '뉴욕 헤럴드' 인터뷰에서 일본의 주장에 반박하며 이같이 역설했습니다.

당시 '한국에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일본의 주장이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된 데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황 선생은 "일본의 주장은 문명화된 세계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고, 그 계획은 분명히 실패할 것이며 한국인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일본이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고집하는 한 극동에서의 평화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뉴욕 헤럴드 인터뷰 등 황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을 보여주는 해외 언론 보도 등 미공개 자료 11점을 발굴해 오늘(3일) 공개했습니다.

보훈처는 황 선생 유해 봉환을 추진하며 후손을 찾는 과정에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자료에서 이들 자료를 찾아냈습니다.

특히 1904년 하와이 호놀룰루 입항자 명부와 입항자 등록 카드, 세계대전 미군 참전자 등록 카드와 제1차 세계대전 미군 소집자 명단 등을 통해 황 선생의 출생일과 하와이 입항 연도 기록이 처음 발굴됐습니다.

이에 따르면 황 선생은 1886년 4월 4일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19세가 되던 1904년 증기선(GAELIC호)을 타고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로 입항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918년 5월 18일 미군에 자원입대해 참전했습니다.

종전 후 유럽에 남은 황 선생은 1919년 6월 파리로 이동해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개최되는 평화회의에 참석하고자 파리에 온 김규식을 도와 대표단 사무를 협조하고 임시정부의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임명돼 독립 선전활동을 벌였습니다.

보훈처는 "이번에 발굴된 미국과 프랑스 언론 기사는 황 지사의 독립운동을 뒷받침하는 첫 해외 언론 기사"라고 설명했습니다.

1921년 미국에서 워싱턴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한 뒤 전 세계에 식민지 현실을 알리고자 미국으로 장소를 옮겨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황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위원으로 조국의 독립과 해외 거주 한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을 이어오다 1923년 4월 17일 미국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순국했습니다.

이번에 발굴된 프랑스 매체 '레 카이에 데 드루아 드 롬'(1923년 10월 10일 자) 부고는 "그는 자신의 작은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노력에 그의 모든 정력을 쏟아 인간의 자유와 국제적 정의라는 대의에 영웅처럼 봉사하였다"고 황 선생의 삶을 기술했습니다.

이어 "극동의 믿음대로 그의 정신이 계속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애정 어린 존경과 조의를 표한다"고 추모했습니다.

보훈처는 "이번에 발굴된 자료를 통해 황 지사의 행적과 독립운동 활동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황 지사에 대한 연구가 더 폭넓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보훈처는 이달 중 황 선생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할 예정입니다.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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