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무장 병원'의 운영 행위를 누군가 방해했다고 해서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의 구체적 진료는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폭행 혐의로 기소된 79살 A 씨의 상고심에서 업무방해 부분을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습니다.
A 씨는 2016년 12월∼2018년 2월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병원에서 "돈을 당장 내놓아라"고 소리치고 행패를 부린 혐의(업무방해·폭행)와 "줄기세포 시술을 받아봤더니 부작용만 있다. 다 사기다" 등의 언급을 한 혐의(명예훼손)를 받았습니다.
A 씨는 줄기세포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C 씨의 업체에 2015∼2017년 총 5억여 원을 빌려줬고, 줄기세포 연구 결과를 치료에 쓴 B 씨 병원에서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병원은 명의만 B 씨로 돼 있었지, 실제로는 C 씨가 설립한 곳이었습니다.
A 씨는 C 씨가 돈을 갚지 않자 병원을 찾아가 행패를 부린 겁니다.
1심은 A 씨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반면 2심은 명예훼손·폭행은 유죄가 맞지만, 업무방해죄는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려면 방해받은 업무가 '보호 대상인 업무'여야 하고 보호할 필요가 없는 업무면 방해받았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2심 재판부는 A 씨가 찾아간 병원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자격이 없는 C 씨가 만든 '사무장 병원'이므로 그곳에서 진료한 B 씨의 업무는 별도로 보호할 가치가 없는 업무라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2심이 성급하게 무죄 결론을 내렸다며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무자격자가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도 "무자격자에 의해 개설된 의료기관에 고용된 의료인이 환자를 진료한다고 해서 그 진료 행위 또한 당연히 반사회성을 띠는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사무장 병원의 개설·운영 행위와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의 진료 업무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은 사무장 병원 소속 의사의 진료 업무가 업무방해죄로 보호되는 업무인지를 가리려면 병원의 개설·운영 형태와 진료 내용·방식, 방해된 업무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은 "A 씨는 의사 B 씨의 환자 진료 행위를 방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원심은 A 씨가 병원의 일반적인 운영 외에 B 씨의 진료 행위를 방해한 것인지에 대해 더 심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