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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생각과 말을 통제하라"… 북한이 마주한 두 가지 전선

[N코리아정식] 북한에는 어떤 전선이 더 어려울까

북한의 핵위협 공세가 거셉니다.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수중무인공격정에 모의 핵탄두를 탑재해 폭발실험을 했다고 밝힌 데 이어, 전술핵탄두로 보이는 물체까지 대거 공개했습니다. 북한의 주장을 100% 믿을 수는 없지만, 북한의 핵위협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은 분명합니다.

북한이 전술핵탄두로 보이는 물체들을 공개했다
한국과 미국도 힘으로 맞대응하고 있습니다. 역대 최장기간의 한미연합연습이 진행된 것은 물론, 대규모 상륙작전인 쌍룡훈련 등 실기동 훈련이 대거 부활했습니다. B-1B, B-52, 항공모함, 핵 잠수함 등 미국의 전략자산은 상시배치 수준으로 한반도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정권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이제 일상적인 언급이 돼가고 있습니다.

부산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 니미츠호
다행히 실질적인 충돌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북한과 한미 모두 엄혹한 대치전선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이러한 대치전선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두 번째 전선

그런데, 북한이 마주하고 있는 전선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북한 내부에서도 지금 전국적으로 치열한 전쟁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이어 올해 1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했는데, 모두 외부 문화 침투에 강력한 처벌을 가하는 내용입니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가 최근 두 가지 법령의 전문을 입수해 공개했는데, 최근 제정된 '평양문화어보호법' 위주로 주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입니다.

이 법은 2021년 2월 국정원의 국회 정보위 보고와 대북매체들의 보도를 통해 주요 내용이 알려졌습니다. 남한 영상물을 유입하거나 유포할 경우 최대 사형, 시청할 경우 최대 15년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는 어마어마한 법입니다.

'데일리NK'는 2022년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일부 내용을 수정한 법령을 입수했는데, 사형과 처벌규정에 일부 변동이 있긴 하지만 외부 영상물 유입에 대한 강력한 처벌의지는 여전합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서 특히 주시해 볼 부분은 북한이 외부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제2조 (정의)
반동사상문화는 인민대중의 혁명적인 사상의식,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사회를 변질 타락시키는 괴뢰 출판물을 비롯한 적대 세력들의 썩어 빠진 사상문화와 우리 식이 아닌 온갖 불건전하고 이색적인 사상문화이다.

제3조 (반동사상문화배격의 기본원칙)
반동사상문화를 배격하는 것은 우리 제도를 붕괴시키려는 적들의 사상문화적 침투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고수하고 사회주의 제도를 굳건히 수호하기 위한 필수적 요구이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중에서]

북한은 외부 문화를 배격하는 것을 체제 수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외부 문화가 들어올 경우 사상의식,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북한 체제가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평양문화어보호법'에서도 북한의 이런 인식은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북한은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했다
'평양문화어보호법'은 제정 당시부터 남한 말투 등을 배격하고 북한말을 쓰도록 강요하는 법으로 추정됐습니다. 북한말을 보호하겠다는 법의 명칭에서부터 단속의 분위기가 풍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데일리NK'가 입수한 법령을 보면 생각보다 처벌 수위가 매우 셉니다. 북한은 이 법에서 남한 말투 등을 사용하거나 유포한 사람은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제58조 (괴뢰말투 사용죄)
괴뢰말투로 말하거나 글을 쓰거나 괴뢰말투로 된 통보문, 전자우편을 주고받거나 괴뢰말 또는 괴뢰서체로 표기된 인쇄물, 록화물, 편집물, 그림, 사진, 족자 같은 것을 만든 자는 6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무기로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

제59조 (괴뢰말투 류포죄)
괴뢰말투를 다른 사람에게 배워주었거나 괴뢰말 또는 괴뢰서체로 표기된 인쇄물, 록화물, 편집물, 그림, 사진, 족자 같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류포한 자는 10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무기로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

['평양문화어보호법' 중에서]

이 법이 규정한 '괴뢰말'은 "어휘, 문법, 억양 등이 서양화, 일본화, 한자화되어 조선어의 근본을 완전히 상실한 잡탕말로써 세상에 없는 너절하고 역스러운 쓰레기말"(제2조)이라고 돼 있는데, 한류 침투로 북한에 유입된 남한말을 상당 부분 겨냥한 것이라는 점을 다음의 조항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제19조 (괴뢰식 부름말을 본따는 행위 금지)
공민은 혈육관계가 아닌 청춘남녀들 사이에 《오빠》라고 부르거나 직무 뒤에 《님》을 붙여 부르는 것과 같이 괴뢰식 부름말을 본따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소년단 시절까지는 《오빠》라는 부름말을 쓸 수 있으나 청년동맹원이 된 다음부터는 《동지》, 《동무》라는 부름말만을 써야 한다.

제22조 (괴뢰식 억양을 본따는 행위 금지)
공민은 비굴하고 간드러지며 역스럽게 말꼬리를 길게 끌어서 올리는 괴뢰식 억양을 본따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평양문화어보호법' 중에서]

말투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규제하고 처벌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북한에게 있어 남한 말투의 규제는 체제 수호를 위한 중요한 투쟁의 일환입니다.
제3조 (평양문화어 보호의 기본원칙)
평양문화어를 보호하고 적극 살려나가는 것은 우리 사상, 우리 제도, 우리 문화를 고수하고 빛내이기 위한 중차대한 사업이다.

제5조 (괴뢰말 찌꺼기를 쓸어버리기 위한 전사회적인 투쟁원칙)
괴뢰말 찌꺼기를 쓸어버리기 위한 투쟁은 사회주의 제도의 운명, 우리 인민과 후대들의 사활이 걸린 심각한 정치투쟁, 계급투쟁이다.

['평양문화어보호법' 중에서]

외부의 말과 문화가 들어오는 것은 김일성 일가의 나라인 북한에서 체제 유지를 위태롭게 만드는 만큼, 강력한 법 규제를 통해서라도 말과 생각을 통제하겠다는 것이 북한 당국의 의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규제의 정도가 훈계나 벌금 차원을 넘어 징역형과 사형까지 이르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체제 수호를 위한 또 하나의 전쟁이라고 할 법합니다. 북한에게는 미국과의 대치만큼이나 외부 문화의 북한 내 확산이 위협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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