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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IMF 외환 위기의 신호탄 '한보 사태'…상흔만 남긴 한보 '정태수 회장' 조명

[스브스夜] '꼬꼬무' IMF 외환 위기의 신호탄 '한보 사태'…상흔만 남긴 한보 '정태수 회장' 조명
부자가 될 상 정태수, 모든 것은 천운이었을까?

3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흙과 철의 사나이- 정 회장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부제로 한보 정태수 회장을 조명했다.

마흔일곱의 정태수는 당대 최고의 역술인 백운학 선생을 찾았다. 김종필의 관상만 보고 5.16 쿠데타를 예견했던 백운학. 그는 정태수를 향해 "당신은 대한민국 첫째, 둘째 가는 부자가 될 상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토의 기운을 타고났다. 흙을 만지면 큰 부자가 될 것"이라며 당장 사업을 하라고 조언했다.

백운학의 조언에도 고민하던 정태수는 결국 52세 나이에 잘 다니고 있던 세무서에 사표를 던지고, 전재산으로 대출을 받고 지인들에게 투자금을 받아 구로동의 땅 1,200평을 구매했다. 그리고 미도 아파트를 짓고 분양해 순이익만 20억, 현재의 가치로 따지면 무려 180억 원의 이익을 얻었다.

이외에도 단 돈 2만 원에 산 폐광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이후 강남으로 눈을 돌린 그는 압구정의 현대 아파트, 대치동의 은마 아파트 등을 만들어 큰 수익을 얻었다.

은마 아파트의 경우 당시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하고, 강남 8 학군이 조성되며 불티나게 팔렸는데 이로 인한 수익은 1,350억(현재 가치 6,900억). 매일 2,30억 원의 현찰이 쏟아지며 재계 순위 100위권 밖이던 한보는 단숨에 43위에 랭크됐다.

하는 것마다 운이 따른 정태수 회장. 그리고 그가 역술 경영을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실제로 그는 백 선생 외에도 부산의 박 도사라고 불리는 박재현이라는 역술인을 따랐다.

사주 명리학의 대가인 박 도사를 그룹의 고문 자리에 앉힌 정태수 회장. 하지만 그는 얼마 후 그와 결별했다. 60세 전후로 운이 다 할 것이라며 무리하게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한 박 도사, 이에 정태수는 박 도사와의 결별을 택한 것이었다.

돈과 명예를 모두 얻으며 73세가 된 1996년에는 재계 14위까지 오른 한보 그룹. 그런데 그런 성공의 이면에는 정태수 회장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그는 서울 모 호텔 19층 객실을 장기로 빌려 로비 장소로 이용했는데 사과 상자를 검은돈의 상징으로 대중화했던 것이 바로 그였던 것.

그는 적게는 찻잔 상자부터 많게는 2억이 넘는 돈을 사과 상자에 담아 전달했고, 사과 상자를 받는 것은 실제 중 실세인 장관급 이상, 최고 권력자의 핵심 관계자, 은행장들이었다.

정태수는 운의 힘이 아닌 돈의 힘을 믿었던 것이다. 이에 정태수는 "기업의 경영이란 돈의 신이 돌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정태수는 철강 재벌을 꿈꾸며 세계적인 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착수한다. 뇌물로 여의도만 한 면적인 100만 평에 대한 간척 사업을 허락받고 꿈의 제철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995년 당진 제철소가 본격 가동되고 2년이 채 되지 않은 1997년 1월 23일 한보 철강의 부도 소식이 전해진다. 온통 빚으로 지어진 당진 제철소. 당시 한보의 자기 자본은 900억이었던 반면 대출금은 무려 5조 7천억 원에 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무리한 대출은 은행장들에게 한 로비의 대가였다. 은행의 무책임한 대출, 한보의 방만한 경영으로 부모에 이른 한보. 하지만 정태수는 그룹의 부도가 누구의 책임인지 모르겠다고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공금 횡령 및 뇌물 수수로 구속된 정태수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서 공분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후 진행된 구치소 청문회에서 혐의를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은행이 대출을 끊어서 부도가 났다는 적반하장의 태도와 함께 직원들을 머슴이라 부르며 "자금은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이 어떻게 아냐"라는 망언을 남겼다.

특히 그는 대출금 중 3조가 넘는 금액은 사적인 용도와 뇌물로 사용해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한보 그룹을 비롯한 계열사들의 부채 총합은 10조 원에 육박했는데 절대 갚을 수 없는 빚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보 사태는 IMF 외환위기의 신호탄이 되었다. 국가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는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IMF는 지원금을 주는 조건으로 부실기업과 부실금융의 구조 조정을 요구했다.

이에 한보 철강 등의 기업은 수천 명을 정리해고 했고, 이에 어린 자녀를 키우던 가장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또한 삼미그룹, 기아그룹, 한라그룹 등 굴지의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협력업체까지 연쇄 도산이 시작됐고 너나 할 것 없이 실업자가 되었다.

실업자가 된 이들은 일을 구하기 위해 인력 시장에 나가고, 하지만 일을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기업의 부도가 개인, 가족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는 직장을 잃은 가장들에게 닥친 가혹한 겨울이자 아이들에게는 길고 어두운 겨울밤이 되었다.

그리고 부실기업의 잘못으로 시작된 위기는 국민들이 스스로 헤쳐나갔다.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나라를 위해 국민들이 나섰고, 우리나라는 3년 8개월 만에 IMF 지원 자금을 모두 갚았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국민들이 책임을 진 것이었다.

그리고 15년 형을 받았던 정태수는 2002년 특별 사면됐다. 이후 그는 또다시 공금 횡령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덜미가 잡혔고, 이에 해외로 도주했다.

2019년 정태수의 막내아들이 체포됐고, 그는 정태수의 사망 신고서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태수는 12년간 도주 생활을 하다 에콰도르에서 2018년 12월 1일 사망했다. 그리고 그는 비교적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갔던 것으로 드러나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주호민은 "사람들이 영화든 만화든 권선징악 스토리를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현실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나"라며 끝까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정태수 회장에 대해 분노했다.

지난주 소개된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과 한보 그룹의 정태수 회장, 이들은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공과 과가 분명히 있는 정주영 회장, 하지만 그와 정태수는 어떤 태도로 돈을 벌었는지 기업을 이끄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등에서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주호민은 "한 회장님은 유산을 남기고 한 회장님은 상흔을 남긴 것 같다"라고 말해 공감을 자아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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