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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점점 북쪽으로 내몰리는 2050년의 인류

[예언자들] 그해 여름 : 폭염과 태풍과 메타어스(Meta-Earth)


<예언자들>은 각 분야에서 연구 중인 KAIST 교수들이 특정 시점을 전제로 미래를 예측해 쓰는 가상의 에세이입니다. 그저 공상 수준이 아니라 현재 연구 성과와 미래의 실현 가능성을 정교하게 조율하기에, <예언자들>은 스프 구독자들에게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이상 과학이 내다보는 미래를 미리 살펴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글 : 김형준 KAIST 교수)

예언자들
2050년 6월 7일 07:00 화요일

"삐비비빅- 삐비비빅-"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베개로 귀를 틀어막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간신히 실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니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알람이 고장났나? 7시면 창밖이 환해야 하는데…

나는 손을 길게 뻗어 알람을 껐다. 그러자 희미하게 빗소리가 들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생각했다. 비가 오네. 비가 와. 뭐? 비가 온다고? 믿을 수 없었다. 어제 분명 오전에는 맑다가 오후 늦게나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한쪽 발을 들어 이불을 개키고 허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줄리아! 오늘 날씨 좀 알려줘."

"오늘 대전은 현재 비가 오고 있어요. 이른 아침부터 차츰 갤 것으로 보이고 최고 기온은 40도, 최저 기온은 27도가 예상됩니다. 현재 기온은 29도이고, 미세먼지는 보통이에요."


나는 줄리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문을 열어보았다. 빗물이 창가에 부딪히며 내 얼굴로 튀었다.

"오전 내내 비가 오니 우산 꼭 챙기세요."

줄리아의 목소리가 어찌나 해맑던지,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줄리아, 어제랑 말이 다르네? 오늘 오전에는 비 안 온다며?"

"유리 님, 제가 그랬나요? 죄송해요. 우산 꼭 챙기세요."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줄리아, 너 실망이다. 비 오는 날, 출근길이 얼마나 막히는지 알아? 네가 오전엔 비 안 온다고 해서 드론 예약 딱 맞춰서 했단 말이야."

2030년대 중반,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 대응의 하나로 각 나라는 공유 모빌리티 법을 발효하였다. 주거 가능한 구역별로 에너지 사용량이 제한되었으며,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누구도 개인 이동 수단을 소유할 수 없다. 이동 수단은 무조건 대중교통과 각 구역에 배치된 완전 자율주행 드론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해마다 구역별 허용 에너지 사용량이 줄어들어 드론 이용에 제한이 많아졌다. 경쟁도 치열해 매시간 매분 매초, 예약 전쟁이 벌어지는 게 일상이다.

"아~ 유리 님, 모빌리티 앱을 확인해보세요."

모빌리티 앱을 열자 내가 어제 예약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드론이 배차되어 있었다. 그리고 곧 도착을 알리는 메시지가 울렸다. 순간 모든 짜증과 화가 풀어졌다.

"줄리아, 네가 한 거야?"

"네, 유리 님. 새벽에 강수 확률이 높아져서 미리 변경해드렸어요."

"줄리아, 진짜 너밖에 없다. 고마워~!!"


공유 모빌리티 예약은 전쟁 그 자체다. 하마터면 지각할 뻔했는데, 줄리아 덕분에 편하게 출근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2050년 6월 7일 13:10 화요일

옆 팀에 새로 온 신입사원이 직접 커피콩을 키웠다며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고소한 향이 사무실에 가득 퍼졌다. 기후가 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극소량만 재배되어 일반인들은 구경조차 하기 어려워진 커피다. 내가 빤히 보자 신입사원이 내게도 한 잔 내밀며 말했다.

"드셔보세요."

이 커피콩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썼을지, 내가 이런 사치를 부려도 되는 건지 부담감을 안고 한 모금 마셔보았다. 쓰고 끝맛이 텁텁한 게, 마치 미세먼지 맛 같았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나는 한 모금 더 마시고 조금 전부터 다급하게 깜빡이고 있는 노란색 버튼을 눌렀다. 메타어스(Meta-Earth)에 연결되자 귀여운 카이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나 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유리 님! 카이예요. 새로운 재해 변수가 포착됐어요. 바로 브리핑해드릴까요?"

"나 바빠. 꼭 알아야 할 이슈면 얘기해 봐."


우리나라는 2020년대 중반부터 기후 변화 적응 전략 개선을 위해 기후 기술 개발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왔다. 카이스트(KAIST)를 중심으로 꾸준히 개발해온 메타어스 기술은 이상 기상 현상이 발생했을 때, 피해가 일어날 지역과 피해 규모 등을 가상현실을 통해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대비를 하지 못한 나라들은 기상이변에 타격받아 도시 붕괴 등 사회 전체가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네, 국가 안보 위협 등급의 재해입니다. 8월 하순 무렵, 강도 카테고리 6급의 거대 태풍이, 목포로 상륙해 우리나라 한가운데를 쓸고 지나갈 것으로 보여요."

"카테고리 6?!"


과거에는 태풍을 강도에 따라 1부터 5등급까지 나누었으나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면서 태풍의 발생 빈도는 줄어든 반면, 강도가 급격히 세져 2040년 초반에 세계기상기구(WMO)는 6등급을 추가했다.

"목포 쪽이면 그쪽에는 CCS 플랜트가 있지 않아?"

"맞아요. 지금 상황에서는 직격이 예상됩니다."

"확률은 어느 정도지?"

"발생 확률 52.3%, 발생 시 영향권에 들 확률 74.1%입니다."

"말도 안 돼. 잘못하면 큰일 나겠는데…."


나는 황급히 거래 창을 띄워 'Loss and Damage' 펀드에 300억 달러 선물 구매 주문을 넣었다. 이 정도 확률이면 무조건 사야 했다. 바로 계약이 체결됐다.

'Loss and Damage'는 2020년대 후반에 설립된 국제 연합 펀드로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하는 재해에 대한 피해 보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규모가 물경 10여조 달러에 이른다.

팀장이 그걸 왜 사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펀드의 선물 가격이 급등하자 표정이 달라졌다. 다른 나라 기관들도 이 거대 태풍의 움직임을 포착한 게 틀림없다. 신입사원이 나를 향해 엄지를 들어주었다. 나는 비가 그친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남아있는 커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커피 맛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2050년 6월 7일 19:40 화요일

예언자들
"아우, 덥고 피곤해!"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누웠다. 역시 집이 제일 좋다.

"줄리아. 커튼 열어줘."

"네, 유리 님. 커튼을 모두 열어드릴게요."


커튼이 열리자 창밖으로 해가 지며 초고층 입체 도시를 황혼으로 물들이는 광경이 보였다.

"줄리아. 60년 전 지금 시간에 대한민국 대전 식장산 환경으로 바꿔줘!"

나는 줄리아에게 메타 홈(Meta-Home) 환경 변경을 부탁했다. 고민이 있을 때 종종 올랐던 해질녘 식장산 정상의 상쾌한 바람과 야경으로 바뀌어 가는 대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잊을 수 없다던 아빠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곧 주위에 산이 펼쳐지고, 눈앞으로 멀리 1990년대의 대전의 모습이 들어왔다. 에어컨에서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공기는 맑았고 쾌적했다. 메타 홈은 최적의 에너지 효율로 우리가 원하는 시공간의 기후 환경을 체험하게 해주는 신환경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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