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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핵잠수함을 가질 수 있을까 [취재파일]

오커스 3국은 왜 핵잠수함을 호주에 조기 배치하기로 결정했나

우리도 핵잠수함을 가질 수 있을까 [취재파일]
오커스 정상회담 (사진=연합뉴스)
 

"호주, 2030년대 초 핵잠수함 확보"

지난 13일, 미국과 영국, 호주 세 나라 정상이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당초 2040년으로 논의했던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확보 시점을 앞당기겠다고 밝혔습니다. 즉, 2030년대 초까지 미국은 호주에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을 최대 5척 판매하고, 이와 더불어 호주와 영국에서 신형 잠수함을 건조해 호주에 인도하겠다는 겁니다. 지난 2021년 이들 세 나라가 결성한 안보협의체, 오커스 (AUKUS)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앞서 세 나라는 2040년까지 호주가 핵잠수함 8척을 보유하도록 한다고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를 10년이나 앞당긴 것은 그만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위협이 높아졌다는 방증일 수 있습니다.

이달 초 한국여성기자협회의 '인도 태평양 안보 협력' 현장 취재 프로그램으로 호주를 방문했을 때, 가장 관심을 가졌던 주제가 바로 호주의 핵잠수함 확보였습니다. 호주가 1척 당 수조 원에 이르는 핵잠수함을 여러 척 보유하겠다고 나선 이유도, 영국 외에는 지난 65년 동안 그 누구와도 핵추진 기술을 공유하지 않았던 미국의 협조를 어떻게 이끌어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북한 미사일 위협이 일상이 된 요즘, 호주의 핵잠수함 FLEX가 부러웠습니다.

매트 시슬스웨이트 국방부 부장관

지난 6일 매트 시슬스웨이트 호주 국방부 부장관은 캔버라에서 기자단을 만나 호주의 핵잠수함 구매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커스 핵잠수함 구매 결정에는 미국과 영국이 오랜 동맹국이라는 점이 작용했습니다. 핵잠수함 관련 결정은 이전 모리슨 정부에서 이뤄졌지만 (지난해 5월 출범한) 새 정부도 적극 지지하고 있고, 국민 여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주는 섬나라이고 해안이 매우 길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개방된 해상 운송로가 중요한데, 이를 지키기 위한 최고의 국방력을 갖춰야 하는 겁니다."
이어 호주가 구매하는 핵추진 잠수함은 절대 핵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호주는 NPT (핵확산금지조약)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며, (핵잠수함 연료와 부품을) 핵무기로 전용할 위험은 절대 없습니다. 호주는 국제법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며, 이웃 국가들과 대화를 통해 역내 안정과 번영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 13일 오커스 첫 대면 정상회담에서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과 러시아는 NPT 취지에 위배된다며 곧바로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호주에 핵잠수함이 인도되고 배치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두 나라는 계속 반발할 것이고, 인도 태평양 지역의 긴장은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태는 중국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게 호주의 반박입니다.
 

중국, 세계 최대의 해군력 보유…태평양을 노린다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해군력을 3배 증강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규모 면에서는 지난 2020년 기준 핵잠수함 12척을 비롯해 전함 360척을 보유해 미국의 300척을 크게 앞섰습니다 (미 해군정보국 보고서). 특히 중국은 지난해 솔로몬 제도와 안보 협정을 맺으면서 호주 앞마당에 중국 군함과 병력을 파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솔로몬 제도뿐 아니라 다른 태평양 도서국에도 중국이 차관과 가짜뉴스를 이용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게 호주의 우려입니다. 따라서 호주의 핵잠수함 확보는 역내 안정을 저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군사적 역량의 균형점을 위한 노력이라고 호주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경희 핵잠수함 취재파일_그래픽3
팀 와츠 외교부 부장관

지난 7일 캔버라에서 만난 팀 와츠 호주 외교부 부장관도 호주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비판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자주의 틀 안에서 동맹국과 함께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군사적 역량을 키움으로써 호주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국익을 위해서 가용 도구를 모두 활용해야 합니다."
 

호주에 이어 한국도 핵잠수함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핵잠수함 확보에 나선다면 국제사회의 반응은 어떨까요.

마이클 그린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

지난 3일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 마이클 그린 미국학센터 (USSC) 소장을 만나 이 질문은 던졌습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NSC) 아시아 담당 국장 출신으로 아시아 전문가로 꼽히는 마이클 그린 소장은 가장 먼저 가성비를 지적했습니다. "호주의 경우에는 지리적으로 여러 위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1-2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위협에 대응할 필요 때문에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북한과 중국의 바로 옆에 있습니다. 호주와 달리 핵잠수함에 거액을 들일 필요가 없어요.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집니다." 2060년까지 최대 13척의 핵잠수함을 보유하겠다는 호주의 야심 찬 계획에는 최대 321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커스 정상회담 잠수함

그런데, 똑같은 질문이 지난 16일 미 국무부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나왔습니다. 호주처럼 한국에도 핵 잠수함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앤서니 와이어 미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차관보는 "미 해군의 핵추진 기술을 추가로 공유할 생각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군사적 목적의 핵물질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서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하려면 미국의 승인은 필수입니다.

마이클 그린 소장은 최근 높아지고 있는 한국의 핵무장 여론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나토(NATO)식 핵공유가 꿈의 모델로 여겨지고 있는데, 저는 나토 모델이 한반도에 적절한 모델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한국이 일본, 호주와 함께 핵계획 그룹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전쟁 계획도 공유하지 않는 상황이라 실현 가능성이 없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확장 억제에 관한 논의를 전략적 차원에서 확대할 거라고 봅니다만, 한국을 핵전쟁 계획에 100% 포함시키진 않을 겁니다." 핵추진 잠수함도 나토(NATO)식 핵공유도 불가능할 거란 지적입니다.

알렉스 브리스토 박사(왼쪽)

그렇다면, 우리도 오커스 같은 협의체를 만들어 대북 억지력을 강화할 순 없을까요? 호주가 참여하고 있는 쿼드 (Quad, 미국·호주·일본·인도 등 4개국 안보회담)에 합류하여 군사적 협력을 강화할 순 없을까요?
호주 전략정책연구소(ASPI)의 알렉스 브리스토 박사(국장 대행)는 현재 쿼드가 비군사적 외교·안보협의체를 표방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군사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쿼드가 4개국을 넘어서는 범위로 확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습니다. "쿼드가 확대되진 않더라도 다양한 형태로 협력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코로나 백신과 신기술 관련 쿼드 워킹그룹이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도 협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 대사를 만나 한국의 쿼드 워킹그룹 참여 지지를 요청한 바 있는데요, 호주뿐 아니라 미국, 일본, 인도 등 참가국 모두의 지지가 필요한 일이죠. 최근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안 발표와 전격적인 한일정상회담 이후, 우리나라의 쿼드 워킹그룹 참여 가능성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호주 의사당에서 바라본 전쟁기념관
호주 캔버라 전쟁기념관과 양귀비꽃

호주 수도 캔버라에서 전쟁기념관은 의회 의사당과 마주 보고 있습니다. 의원들이 입법 활동을 할 때 언제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생각하라는 의미로 이렇게 배치했다고 합니다. 호주는 한 번도 자국 내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았지만, 지난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 세계의 전쟁·분쟁 지역에 파병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에도 1만 7천여 명이 참전해 34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곳 명예의 전당에는 전몰자 10만 3천여 명의 이름이 지역과 전투별로 청동 패널에 새겨져 있는데, 특히 오후 4시 45분에 열리는 "Last Post"라는 추도식에서 매일 한 명씩 그 사연을 소개하며 애도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던 나의 형제·자매·이웃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갔고, 끝내 마지막으로 하늘에 배치되는 "Last Post" 의식을 치른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호주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추구하며 다자주의, 소다자주의 등 각종 형태의 외교 협력체에 참여하고, 핵잠수함 확보 등 군사적 역량 강화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이들의 희생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요.

명예의 전당
한국전 명패와 양귀비꽃

전쟁기념관을 떠나기 전,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명패 옆에 가득 꽂힌 붉은 꽃들이 인사하듯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붉은 양귀비, red poppy의 꽃말은 '희생' 으로, 1차 대전 이후 호주와 영연방 국가들에서 호국보훈의 상징인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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