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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블더] 슬리퍼로 때리고 하루 종일 줄서기까지…888일 만에 이별하는 것

마스크 구하려고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리고, 약국 이곳저곳을 돌다가 허탕을 쳤던 게 벌써 2년 정도 전입니다.

오늘(20일)을 기점으로 이 마스크 관련 정책이 2년 5개월 만에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888일 만입니다.

코로나19 공포가 전 세계를 덮치고 백신 개발 소식은 요원하던 시절 마스크는 유일한 보호수단이었습니다.

마스크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 환자 발생 직후 마스크는 한 장에 무려 5천 원까지 올랐습니다.

마스크 대란에 정부가 공적 마스크까지 공급했지만, 허탕 치기 일쑤였습니다.

[서울 강서구 주민 (지난 2020년) : 그렇게 많이 생산되는 마스크가 도대체 어디로 가 있습니까? 어느 곳에서도 마스크를 살 수가 없습니다. (정책) 발표하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줄 서서 마스크 좀 사봤으면 좋겠어요. 남 이 갖다주는 거 쓰지 말고.]

사재기도 판쳤습니다.

[마스크 제조 공장 관계자 (지난 2020년) : (하루에) 한 열 팀 이상은 300만 장 내가 오늘 사러 왔다. 그래서 나 현금 4억 5천 들고 왔으니깐 물량 내놔라. 저희 단가가 350원이라면 그 사람들은 890원, 1,100원 뭐 이런 식으로.]

자국 상황이 급한 중국이 원자재 수출을 막으면서 국내 마스크 공장들이 곳곳에서 멈추기도 했습니다.

[전연남 기자 (지난 2020년 SBS 8뉴스 중) : 원래라면 기계 가동 소리로 굉장히 시끄러워야 하는데 지금은 기계 가동이 전면 중단돼서 조용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생산 라인 전체에 비닐이 덮여 있는 상태입니다.]

[김재청/마스크 제조 업체 대표(지난 2020년) : 갑자기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까 저희처럼 신생 업체고 조그마한 영세업체는 배정 우선순위에 밀릴 수밖에 없지 않았나….]

공급 부족 사태가 이어지자, 대통령까지 사과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지난 2020년) :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치는 점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후 마스크 5부제도 시행됐는데, 수급이 차차 안정화되고 마스크 의무화 정책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더 예민해졌고, 마스크 착용 문제로 인한 갈등이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슬리퍼로 앉아 있는 승객의 얼굴을 난데없이 후려칩니다.

[마스크 난동 남성 (지난 2020년) : 네 할 일 하면 됐지. 무슨 상관이야. (위법행위가 맞잖아.) 너 왜 그러는 거야 XX야. XX 놈아.]

다른 승객이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요구하자 난동으로 대응한 이 남성은 징역 1년 8개월 형을 받았습니다.

버스에서 50대 남성은 다른 승객에게 시비를 걸다 마스크를 벗어 버립니다.

버스 기사가 마스크를 쓰라고 요구했는데, 계속 행패를 부리다 구속됐습니다.

마스크는 매출이 반의 반토막 난 자영업자들을 더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카페 주인이 손님에게 마스크를 써 달라고 요청하자,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카페 손님 (지난 2020년) : FM(원칙)대로 살아서 당신 공무원 할 거야? 공무원 해 차라리. 이런 장사하지 말고.]

일행이 말리자 그냥 가는가 싶더니 되돌아와 주인에게 커피를 집어 던집니다.

[카페 손님 (지난 2020년) : 여기서 마시고 싶겠어? 커피숍이 여기 하나겠어? (카페 주인: 예, 안 오셔도 돼요.)]

지난 2020년 10월부터는 공공장소에서는 어디든 마스크를 써야 했는데, 우리의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꿔놓기도 했습니다.

한 공기업의 필기시험 현장입니다.

과거 시험 치르듯이 축구 경기장에 5m 간격으로 책상들이 바둑돌처럼 깔렸습니다.

모이는 거 자체가 불경한 세상이 됐으니 마음 놓고 축하하고 위로할 수도 없었습니다.

신랑·신부 빼곤 모두 두발 짝 떨어진 채 마스크를 쓰고 단체 사진을 찍어야 했고, 식사는 언감생심이었죠.

야외 경기장에서조차 멀찌감치 떨어져 마스크를 쓰고 응원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지난해 5월부터 차츰 마스크 의무가 완화됐는데요.

이미 마스크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죠.

해방감을 느끼면서 마스크에게 이별을 고하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시민들도 다수였습니다.

[김익표/서울 강서구 (지난 1월) : 지하철 오니까 쓰고 있다가 내렸을 때 벗었어요. 제가 숨쉬기 불편한데, 비염도 있고 해서….]

외신들은 아시아 국가에선 이른 시일 내에 사람들이 마스크를 완전히 벗지 않을 거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마스크 착용의 장점이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화장을 하거나 표정 관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 때문이죠.

대중교통 내 마스크 의무화 해제 조치에 대해서도 시민 반응은 엇갈립니다.

[김수지/대중교통 이용 시민 : 아직은 조금 불안해서 그래도 쓰고 출퇴근할 거 같아요.]

[정승정/대중교통 이용 시민 : 그동안 답답했잖아요. 해방된 기분으로 벗었으면 해요.]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휴대전화를 두고 나가는 건 상상할 수가 없죠.

888일을 거치며 마스크도 마찬가지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정책적으론 마스크에서 해방됐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 마스크에서 해방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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