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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남극에 보급선이 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그 위기, 어떻게 극복했나

지구상에서 가장 북쪽과 남쪽 끝 극단적인 곳에서 극한 체험하면서 연구하는 '극적인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가기도 힘든 남극과 북극을 수시로 오가며 연구 활동을 펼치는 극지연구소 사람들과 스프의 콜라보 프로젝트!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글: 박하동 극지연구소 미답지연구단 기술원)

스프 극적인사람들
2017년 12월 3일. 남극세종과학기지. 그토록 기다리던 보급선은 오지 않았다.

체류 인원 100명. 역대 최대 인원이 세종기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보급선은 칠레 푼타아레나스 항구에 그대로 정박하고 있었다. 선박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이 고장 났기 때문이었다. 수리 후, 세관의 안전성 검사가 끝날 때까지는 항구를 떠날 수 없다는 소식을 접했다. 보급선에는 세종기지의 1년살이 살림이 가득했다. 많은 물품과 함께 신선한 식품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때, 세종기지에서는 지난해 보급하고 남은 식량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주식과 부식이 부족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년 전 보급한 묵은쌀이 적지 않게 남아있었다. 기지 체류자들에게 밥은 충분히 제공할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다소 풀렸다. 국과 반찬은 냉동창고에 남아있는 모든 재료들을 끌어모으면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간식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간식은 과자, 사탕, 음료, 우유 등이다.

세종기지에서는 간식 소비율에 대한 속칭 '초코파이 이론'이 전해져 온다. 적어도 30년이 넘게 전해져 오는 속설이다. 간식용 진열장에 초코파이를 한 통만 두면 소비율이 높아지고, 상자째 가득 채워두면 소비율이 낮아진다는 경험치이다. 무언가 부족할 때는 미리 챙겨두는 인간의 심리를 역 이용한 간식 제공 방법이었다.

보급 지연으로 간식 제공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기지생활에 다년간 경험이 많은 동료들이 초코파이 이론을 제안하였다. 간식의 재고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더욱 초코파이 이론을 적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간식이 가득 채워진 진열장과 냉장고
일주일만 간식용 진열장을 가득 채워보기로 하였다. 과자, 주스, 우유, 라면 등 종류별로 가득 채웠다. 그러나 다음 날 진열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이렇게 1일 차 시도는 실패하였다. 첫날은 그럴 수 있다고 인정했다. 2일 차, 3일 차... 그렇게 일주일을 시도해 보았으나 여전히 진열장은 텅 비어 있었다. 초코파이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일주일 동안의 간식 배급 전술은 완벽하게 실패하였다.

실패의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이미 모든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모든 이가 알고 있었다. "보급선이 도착한 이후에 적용했다면 실패가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이가 재고의 상황이 여유 있다고 알고 있을 때 시도했어야 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부족한 식량! 더욱 부족해지는 간식!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밥만으로는 살 수 없다. 간식을 먹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깊은 고뇌가 여러 번 반복되었다. 모두에게 골고루 간식을 나누고 싶었다. 모두가 즐거울 수 있도록. 하지만 인간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과자봉투를, 음료수병을, 우유병을, 누군가 먼저 차지해 버리면 그만이다. 또다시 진열장은 곧바로 동이 날 것이다.

"지금까지 남은 과자는 총 120봉. 1인당 과자 한 봉지씩 나누어주면, 하루 만에 재고가 소진될 것이다. 이렇게 나누어주고 끝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책임하게 관리할 수는 없었다. 보급선이 올 때까지는 끊임없이 간식을 제공하고 싶었다.

"아아!! 괴롭다." 30년 동안 잘 적용되었던 '초코파이 이론' 대신, 현재 상황을 대처할 새로운 간식 제공 전술이 필요했다. 지혜를 원했다. 테스 형!(소크라테스), 레스 형!(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붓다! 등 친근한 동서고금 현인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떠올랐다! '오병이어(五餠二漁)' -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오천 명이 나누었던 기적의 전술!

새로운 방법으로 간식을 준비하였다. 대형 광주리와 깨끗한 삼베 천, 그리고 보온병 2개를 찾아 준비하였다. 광주리에는 깨끗한 삼베 천을 살포시 얹었다. 그 위에 과자 다섯 봉지를 개봉하여 보기 좋게 쏟아부었다. 보온병에는 음료수와 우유를 각각 1병씩 개봉하여 넣어 두었다. 광주리와 보온병의 과자와 음료가 떨어지면 같은 방식으로 각각 채워 놓기로 하였다.

간식 제공은 점심식사에 맞춰 하루에 한 번만 하였다.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 과자 광주리와 음료 보온병을 식당 한쪽에 잘 보이도록 놓아두었다. 이렇게 하자, 모두가 공평하게 과자와 음료를 즐길 수 있었다. 세종기지에 신선식품을 가득 실은 보급선이 올 때까지 다행히 '오병이어 전술'은 잘 적용되었다.

세종기지에 연안에 도착한 보급선(Antarctic Warrior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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