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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검찰 수사와 극단 선택…쌓이는 '맘속 돌덩이'?

조선시대 고종 36년(1899년),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관원인 병정(兵丁) 김정준이 차삼신이라는 인물을 체포해 관가로 압송하고 있었습니다. 길이 멀어 압송 도중 주막에 하루 묵었는데, 이때 차삼신이 우물에 스스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습니다. 관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일종의 수사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현재의 부검 감정서, 진술조서 등에 해당하는 이 문건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병정 김정준은 차삼신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보호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아 오는 길에 익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이 목숨에 관계되어 있으니 완전히 용서하는 것은 어렵다. 잠시 해당 군의 옥에 가두고 법부의 지령을 기다린다"

- 평남 안주 차삼신 치사 사건에 대한 초검 보고서 (安州郡尼山面新川里致死人車三辰屍身初檢文案) 중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김정준이 차삼신에게 가혹 행위를 했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공무 집행 중에 발생한 돌발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은 책임자인 김정준이 차삼신의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했다며 구속합니다.
 

죄인의 극단적 선택…신속하고 엄정한 조선시대 대응


이듬해인 고종37년(1900년) 6월 15일, 인천에서는 구속되어 있던 이흥수가 주머니 칼로 스스로 목을 찔러 숨진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지역 재판소에서 중앙 법부로 보낸 보고서를 보면 피의자의 극단적 선택 탓에 법에 따라 죄를 묻지 못하게 됐다는 탄식이 드러납니다.
 
"(전략)…저지른 것을 살펴보건대 율문으로 무겁게 감단하여 그 죄를 명백하게 바로 잡는 것이 법에도 진실로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목을 찔러 사망하였으니 마땅히 죽을 자가 죽었으나 오히려 남은 죄가 있습니다."

"죄인의 간수가 얼마나 신중한 일인데 간수하고 살피기를 소홀히 하여 이러한 변고에 이르렀으니…(중략)…마땅히 형구인 칼, 차꼬를 채워야 하는데, 이를 채우지 않은 경우, 해당 범인이 죽었다면 장 80대이다"

- 사법품보(司法稟報) 5, 보고서 14호 '감옥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한 이흥수 사건에 대해 인천항 재판소에서 보고하다' 중

해당 보고서가 중앙 법부로 발송된 건 6월 30일입니다. 사건의 발생과 조사, 처분, 그리고 상급 부서에 보고되기까지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인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던 조선시대 사회에서조차 수사나 체포 과정에서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할 경우 신속하게 경위를 파악했고 공무원들에게 관리 책임을 묻는 등 엄중히 다뤘다는 걸 들여다볼 수 있는 사료들입니다.
 

검찰청사 내 극단적 선택…석 달 넘게 지났는데

서울중앙지검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2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119 구급대원들이 나타났습니다. 검찰 청사 내에서 30대 남성 이 모 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체포된 이 씨는 이날 법원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절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씨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 뒤, 화장실 칸막이 내에서 흉기로 자신의 오른쪽 목 부분을 그었습니다. 이 씨가 돌아오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긴 검찰 조사관이 이 씨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습니다. 이 씨는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이틀 만에 결국 숨졌습니다. 검찰은 사고 직후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감찰 등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법무부령인 인권보호 수사규칙을 보면 피의자가 자해를 하거나 휘두를 수 있는 흉기를 혹시 지니고 있지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권보호 수사규칙

제23조(체포ㆍ구속 시의 준수사항) 피의자를 체포ㆍ구속하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지켜야 한다.

3. 체포ㆍ구속되는 피의자가 자해하거나 다른 사람의 신체를 해칠 수 있는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SBS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이 씨가 사용한 흉기는 청사 내 사무실에서 사용되던 건 아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결국, 이 씨가 흉기를 미리 소지했을 수 있고, 그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다시 말해, 수사규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하지만, 석 달이 넘게 지난 시점까지 별다른 조치가 취해진 건 없습니다. 검찰은 부검 결과 등에 대한 송달이 늦어져 관련 내용 파악이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매일 상당한 수의 피의자, 참고인을 수사해야 하는 검찰 입장에서 두꺼운 외투에 흉기를 숨겼을 경우 현실적으로 이를 걸러내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체포된 피의자를 주로 데리고 들어오는 지하 출입구에도 일반적인 청사 출입구처럼 금속탐지기나 소지품 검사대를 설치하는 등 실질적 보완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그러나 정확한 경위 파악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 재발 방지 대책이 수립될 리는 만무합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 3월 16일, 이번에는 인천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던 20대 피의자가 목 부위를 사무실 내 사무용품으로 자해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마음속 돌덩이' 덜어낼 수 있을까

수사 과정에서 압박을 느낀 피의자나 관련 인물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가끔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알려집니다. 그 자체도 비극이지만 실체적 진실을 향한 접근 시도 자체가 꺾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 나아가, 수사 방향과 의도를 정치적으로 의심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검찰은 물론 대부분의 수사기관에서 안전한 피의자 신병 확보, 극단적 선택 방지는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이원석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10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경기지사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전 모 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습니다. 전 씨는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사흘 뒤인 3월 13일 오전, 대검찰청 부장회의를 소집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며 전 씨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보냈습니다. 이원석 총장은 그러면서, 다음과 같을 말을 했습니다.
 
"검사에게는 이러한 굴레가 계속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늘 마음 한 켠에 무거운 돌덩이를 매달고 사는 심정이다."

- 이원석 검찰총장 (2023. 3. 13 대검 부장회의)

이 총장이 말한 '무거운 돌덩이'는 아마 검사, 더 나아가 모든 수사기관 종사자가 지니는 부담감을 뜻하는 것일 겁니다. 엄격한 법의 잣대로 범죄로부터 이웃과 공동체를 지켜내는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지 않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는 그런 막중한 부담감 말입니다.

이 총장은 그러면서, 검찰 구성원들에게 "법률에 맞고, 세상의 이치에 맞고, 사람 사는 인정에 맞도록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돌덩이와 같은 부담감을 보다 세심하고 인권 친화적인 원칙들로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또 다른 비극을 막자는 의지로 읽힙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검찰청사 내에서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은커녕 관련 경위 파악이 완료됐다는 소식조차 여전히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이 다른 청사에서는 비슷한 사례가 또 발생했습니다. 조선시대에서조차 보름이면 내려지던 돌덩이가 석 달 넘게 그 무게를 더하며 매달려 있습니다.


■ 참고문헌
- 오승관, 2021 「19세기 말~20세기 초 '위핍자살(威逼自殺)'의 실태와 행위 양식 -규장각 소장 검안 자료를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120, 한국 역사연구회
- 『安州郡尼山面新川里致死人車三辰屍身初檢文案』 (奎21887)
- 『司法稟報』(甲)(한상권 외 번역, 2018 『사법품보, 봄날의 책)
- 『大明律直解』(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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