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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멸종위기 1급 '산양'이 그물에 걸려 죽어간다

강원에서만 산양 7마리 피해

[취재파일] 멸종위기 1급 '산양'이 그물에 걸려 죽어간다
강원 양구에는 산양증식복원센터가 있다. 산양이 천연기념물 217호이다 보니 문화재청 지원을 받아 양구군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다.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 직원들은 마음이 급해진다. 당장 출동해야 하는 산양 구조 요청 전화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양이 위험에 빠지는 경우는 대부분 폭설이 내릴 때다. 눈 속에 파묻혀 며칠씩 먹이 활동을 못하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산 아래 도로 근처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다. 그런데 2년 전부터 농사용 밭 그물이 산양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멧돼지나 고라니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쳐놓았는데 엉뚱하게 산양에게 불똥이 튄 거다. 암수 모두 머리에 두 개의 뿔이 있다 보니 산양에게 그물은 더 위험하다.
 

그물에 걸린 산양…구조 요청 신고 잇따라

7개월 전인 지난해 8월 2일 강원 정선에서 산양 구조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은 옥수수밭, 그물에 걸린 산양이 진흙밭에 처박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생후 8년 된 수컷인데 뿔과 얼굴이 그물에 감겼다. 빠져나오려고 얼마나 용을 썼는지 눈을 심하게 다쳤다. 몸부림을 칠수록 그물이 조여들어 상처가 깊어진 거다. 그물을 잘라내고 힘들게 구조했지만 산양은 상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5일 뒤 결국 폐사했다.

밭그물에 걸려 사고를 당한 멸종위기1급 산양

산양을 위협하는 그물은 밭 주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강에 쳐놓은 그물도 산양의 생명을 노리는 위험물이다. 일단 걸리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다. 구조 여부가 생사를 가르는데, 얼마나 빨리 발견돼 신고가 들어오느냐에 달렸다. 지난해 5월 24일 양구 소양강에서 그물에 걸린 산양 1마리가 발견됐다. 산양이 강 속으로 들어갔다 걸린 게 아니다. 물 먹으러 강으로 내려왔다가 물 밖으로 드러난 그물에 사고를 당했다. 수위가 낮아지면서 강 속에 있던 그물이 물 밖으로 나온 거다. 그물에 걸린 산양은 3살짜리 암컷이다. 사고를 당한 지 얼마 안 된 듯 날뛰는 힘이 넘쳤다. 구조대원들이 그물에서 꺼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다행히 다친 곳이 없고, 탈진도 아주 심한 상태가 아니어서 건강을 회복했다. 산양증식복원센터에서 보호하고 있는데, 올해 안에 자연으로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밭그물에 걸려 사고를 당한 멸종위기1급 산양

강원 5개 시군에서 산양 7마리 구조

2021년 5월 6일부터 지난해 8월 2일까지 1년 3개월 동안 그물망에 걸려 사고를 당한 산양은 7마리다. 양구를 비롯해 화천, 홍천, 정선, 춘천 등 강원 5개 시군에서 산양이 그물에 걸려 죽거나 다쳤다. 양구에서 3건, 나머지 4개 시군에선 각 1건씩 발생했다. 수컷이 6마리, 암컷 1마리다. 나이는 생후 9년 된 개체가 2마리, 8년 3마리, 7년, 1마리, 3년 1마리였다. 이 가운데 4마리는 현장에서 폐사한 채 발견됐다. 살아서 구조된 3마리 중에도 1마리가 폐사해 현재 2마리만 보호를 받고 있다.

밭그물에 걸려 사고를 당한 멸종위기1급 산양

산양을 위협하는 밭 그물은 머리와 목이 들어갈 만큼 그물코가 큰 김 양식용 그물이 대부분이다. 밤낮으로 구조 현장으로 달려가는 양구군청 안재용 주무관은 "산양처럼 뿔이 있는 동물은 제일 먼저 그물에 뿔이 걸리고 빠져나오려고 움직일수록 얼굴과 목까지 감긴다"며 "탈진되거나 호흡을 못 하고, 상처가 깊어져 폐사를 한다"고 말했다.

밭그물에 걸려 사고를 당한 멸종위기1급 산양

산양은 천연기념물인 데다 지난 2005년부터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됐다. 경사가 가파른 산악지역 중에서도 바위가 있어 다른 동물이 접근하기 힘든 험한 곳에 산다. 가을에 짝짓기를 하고 이듬해 5~6월에 새끼 1~2마리를 낳는다. 소과에 속하는 종으로 전 세계에 6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종은 중국 동부, 시베리아 남동부 지역에 살고 있는 산양과 같은 종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선 설악산을 비롯해 민통선과 울진, 삼천 지역이 대표적 서식지다. 풀이나 나뭇잎, 나무 열매, 이끼, 침엽수 가지 등 초본식물 258종을 먹이로 먹는다. 10월 말쯤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아고산대에서 서서히 산 아래로 내려와 해발 300~400m까지 이동한다. 산양증식복원센터장 조재운 박사는 "봄에 새순과 풀이 산 아래쪽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면 산양이 먹이를 따라 다시 산 위로 올라가 여름엔 주고 아고산대에서 산다"고 말했다.

밭그물에 걸려 사고를 당한 멸종위기1급 산양

산양 복원 2007년 시작…설악산에서 지리산까지 서식 목표

2007년 산양 복원 계획이 수립돼 월악산에서 시작됐다. 백두대간을 타고 설악산에서 지리산까지 산양 서식지를 복원하는 게 목표다.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진행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산양은 설악산에서 지리산으로 서서히 내려오면서 살게 하는 거다. 지난 2020년 기준 월악산의 산양 수는 103마리로 늘었다. 속리산에서도 지난 2016년에 산양이 발견됐는데 월악산에서 이동한 개체로 확인됐다. 산양이 서식지를 개척하면서 복원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지난해 전국 산양 서식지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5년 계획으로 연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어서 26년이나 돼야 조사 결과가 나온다. 다만 현재 산양 개체수는 1천500여 마리 가량된다고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추정했다.
 

산양 보호 대책 마련 서둘러야

산양의 밭 그물 사고를 줄이기 위해선 그물코가 작고 촘촘하며 늘어지지 않고 팽팽한 그물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조재운 센터장은 설명했다. 밭 그물 피해는 산양뿐 아니라 개체수가 훨씬 많은 노루, 고라니가 더 자주 사고를 당하고 있다. 하지만 밭 그물은 농민들이 농작물을 보호하려고 밭 주변에 쳐 놓은 것이어서 단속도 어려운 실정이다. 야생동물을 잡는 게 목적으로 산에 쳐놓는 밀렵 행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종 1급 산양이 밭 그물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설악산에서 속리산까지 확산된 산양 서식지 복원 노력이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더 많은 산양이 그물에 걸려 죽기 전에 채소밭 피해도 줄이고, 산양도 보호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개체수 증식에 앞서 산양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먼저다. 밭 그물 사고에 뒷짐을 지고 있는 건 산양에게 지뢰밭을 알아서 피해 다니라고 하는 것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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