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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SVB가 망했다. 우리는 누구 책임인지 잘 알고 있다

By 엘리자베스 워런 (뉴욕타임스 칼럼)

스프 뉴욕타임스
*엘리자베스 워런은 매사추세츠주의 연방 상원의원이다.

지난 며칠 사이 미국 은행 제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의 원인을 우리 모두 똑바로 이해해야 한다. 이번 은행의 파산은 워싱턴 정치권과 규제 당국이 금융 관련 규제를 느슨하게 푼 결과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의회는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을 만들었다. 법의 취지는 분명했다. 소비자를 보호하고, 대형 은행들이 다시는 무책임하게 돈을 굴리다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수많은 사람의 삶을 망쳐버리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최고 경영인들과 법무법인, 로비 회사들은 도드프랭크법을 혐오했다.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어 법을 좌초시키려던 이들은 끝내 법이 제정되자, 이번엔 법의 효력을 제약하고, 여러 규정을 무력화하기 위해 또다시 수백만 달러를 풀었다.

실리콘밸리은행(Silicon Valley Bank, SVB)의 최고경영자 그렉 베커(Greg Becker)는 의회에 도드프랭크법을 약화해 달라고 적극적으로 로비를 벌인 이름 있는 금융가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은행들은 2018년 마침내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도드프랭크법의 핵심적인 부분을 무력화하는 새 법에 서명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당론으로 이 법에 찬성했다. 규제당국은 금융 기관이 계속해서 위험을 떠안는 상황을 방치하며 문제를 키웠다.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정부가 은행 문을 닫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실리콘밸리은행은 자산 규모로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은행은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 황당한 주장을 폈다. 자기들은 사실상 대형 은행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정부가 (대형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짜놓은 엄격한 규제를 면제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주장 자체도 터무니없지만, 그 주장이 받아들여진 건 더욱 당혹스럽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은행은 규제당국이 정한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됐다.
 
나는 의회에서 은행들의 규제 완화 요구가 관철되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싸웠다. 2018년 규제 완화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기 전날,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지금 워싱턴 규제 당국은 은행들에게 위험천만한 거래를 별 제지도 받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하고 있다. 이는 우리 유권자인 미국 국민을 위험에 노출하는 일이며, 가족의 경제적 기반을 흔드는 일이다. 이렇게 은행에 쌓이는 돈은 경영진들이 더 호화로운 최신형 전세기를 사고, 본사 건물을 더 으리으리하게 짓는 데 쓰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다. 그러나 지난 10일, 실리콘밸리은행 경영진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가 서둘러 은행의 파산 관리를 떠맡기 몇 시간 전까지도 임직원들에게  상여금을 퍼주고 있었다. 그 사이 은행에 돈을 맡겨둔 수많은 스타트업과 비영리단체들은 하루아침에 돈줄이 막혀 직원들 급여도 못 주고, 대금도 치르기 어려워졌다.

위험한 결정을 잇달아 내린 경영진과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당국의 무책임이 결국 이번 사태를 낳았다. 우선 실리콘밸리은행은 예금 액수가 많은 테크 기업 등 대형 고객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해 주는 액수 이상의 예금 비중이 너무 높았다. 이는 곧 특정 부문의 경기가 침체하면 은행 전체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는 구조적인 약점으로 이어졌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이런 구조적인 약점을 보완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 대신 많은 예금으로 미국 국채 등 만기가 긴 장기 채권을 사들였다. 만기가 길다는 건 곧 고객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려 하면 내줄 돈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실리콘밸리은행은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은행의 사업모델은 단기적으로 보면 만점짜리였다. 실제로 지난 3년간 영업 이윤이 40%나 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위험한 사업모델에 숨겨진 비용의 실체를 확인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자, 곧바로 은행들이 줄도산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고, 규제당국이 곧바로 개입했다. 정부는 시그니처 은행(Signatrue Bank)의 문도 닫기로 했다. 뉴욕에 본사를 둔 지방은행 시그니처 은행은 그동안 예금보험공사의 예금보험에 가입된 상품이라는 점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고객을 모았는데, 위험성이 큰 가상자산 기업들이 은행의 주요 고객 목록에 있었다.
 
의회가 도드프랭크법의 엄격한 관리·감독 규정을 철폐하지 않았다면, 또 시중은행의 상위 기관인 중앙은행(연준)이 관리·감독을 더 철저히 했다면 달랐을 거다. 그랬다면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 은행은 금융위기 등 재정 압박을 받는 상황이 올 때 이를 잘 견딜 수 있도록 더 높은 유동성을 확보하고 많은 자금을 보유했어야 한다. 또한, 주기적으로 이른바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아 구조적인 문제나 취약점이 발견되면 영업상 제약을 받거나 과징금을 내는 등 제재를 받았을 거다. 그런데 사실상 자기 손으로 직접 그런 규제를 모조리 철폐하고 난 뒤 이른바 옛날식 뱅크런(bankrun, 예금 대량 인출)이 일어나자 실리콘밸리은행은 곧바로 무너졌다. 시그니처 은행도 얼마 가지 못해 뒤를 이었다.

지난 일요일 밤, 정부는 재빨리 진화에 나섰다. 파산한 두 은행에 맡겨둔 예금은 전부 되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중소기업, 비영리단체와 같은 고객들이 맡겨둔 돈을 잃어버리지 않게 된 건 다행이지만,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기업이나 위험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돈을 굴렸던 가상자산 투자자, 뱅크런을 일으키는 데 불을 붙인 벤처캐피털 회사들까지도 예금은 모두 보전하게 됐다. 정부로서는 은행의 줄도산을 막는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긴 하다.

그러면서 정부는 한 가지 분명히 선을 그었다. 세금으로 두 은행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즉, 고객의 예금을 정부가 우선 지급해 주는 데 드는 비용을 궁극적으로는 문제를 일으킨 은행들이 모두 내야 한다는 말이다. 정말로 그렇게 될지 똑똑히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학자금 대출을 탕감하거나 구제해 주는 데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더니, 수십억 달러 가상자산 회사의 예금은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고 돌려받을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태다.

은행이 줄줄이 도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일은 처음부터 막을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비슷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행동에 나서야 한다.

먼저 의회와 백악관, 금융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잔뜩 완화해 준 금융 규제를 즉시 되살려야 한다. 의회는 결자해지의 자세로 2018년 제정한 법을 통해 실리콘밸리은행과 같은 지방은행이 따라야 하는 규제를 대폭 완화했던 것부터 되돌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규제 완화 장단에 맞춰 은행이 자꾸 위험한 일을 벌여도 그냥 두고 본 탓에 미국 경제 전체가 곤경에 빠졌다는 걸 인정하고, 당장 필요한 규제를 집행해야 한다.

금융 당국은 이번 기회에 우리 금융 제도 전반에 도사린 또 다른 위험은 없는지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포함해 수많은 선출직 정치인이 실리콘밸리은행이 급작스레 문을 닫기 며칠 전까지도 파월 의장에게 은행들을 규제로 옥죄지 말라고 연일 압력을 넣었다. 진정으로 유권자를 원한다면 금융 당국에 요구해야 하는 건 규제 완화가 아니라 더 강력한 규제와 관리, 감독이다.

둘째, 규제 당국은 예금보험 규정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 즉 노동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거나 상품 대금을 결제하는 등 회사의 일상적인 금융업무에 쓰이는 자금은 어떤 상황이 와도 보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통상적인 보호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까지 보호하는 데 드는 비용은 실제로 위험을 무릅쓰는 결정을 한 해당 금융기관이 직접 지도록 명시해야 한다. 대기업들이 예금 보호 규정에도 없는 막대한 돈을 은행에 맡겨놓고 무슨 일이 생기면 정부가 뒤를 봐주겠지 기대하거나, 실제로 그 기대대로 정부가 보증을 서주는 일은 절대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이런 위험한 일 자체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지기는커녕 막대한 보상을 챙겨가는 지금의 비뚤어진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정부 발표를 보면,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 은행의 주주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 위험한 결정을 내린 은행의 경영진에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은행의 최고경영자 베커는 지난해 총 990만 달러(우리 돈 130억 원)를 벌었다. 여기에는 은행의 훌륭한 실적을 이끈 데 대한 상여금 150만 달러가 포함돼 있다. 물론 규제를 요리조리 피해 간 자금 운용으로 위험을 초래했지만, 그 점은 상여금에 반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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