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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조금은 올드하게, "다녀오겠습니다."-스즈메의 문단속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66

[씨네멘터리] 조금은 올드하게, "다녀오겠습니다."-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 무척 까다로운 물의 이미지가 부단히 나오는지도요. 

인터뷰 시작 직전, 각 방송사 무선 마이크 넉 대를 하나로 묶은 걸 손에 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가슴께로 들었다가, 허리춤으로 내렸다가, 등 뒤로 놓았다가 의자 아래로 내려놓았다가, 어디에 놓아야 좋을지 계속 고민하는 눈치였습니다. (붐 마이크가 없는 경우, 대부분의 감독이나 배우들은 가슴과 허리 사이쯤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다가 점점 입 가까이로 가져가게 마련입니다)   

신카이 감독에게 마이크를 허리께로 내려 들고 있으면 어차피 영상에는 안 잡힌다고 해도 잘 안 믿는 눈치였습니다. 혹시라도 마이크가 화면에 나올까봐 걱정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이크가 화면에 나오면 보기 싫죠. 넉 대의 카메라가 어떤 사이즈로 자신을 잡고 있을지 모르니 신카이 감독은 아예 마이크가 보이지 않게 확실히 하고 싶었나 봅니다)

인터뷰 중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
   “너의 이름은(2017)”, “날씨의 아이(2019)”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을 들고 내한해 한국의 기자, 관객들과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신카이 감독의 이른바 ‘재해 삼부작’의 마지막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이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를 찍었습니다. 좌석점유율이 40%에 이르고, 예매율도 50%를 넘나들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기세를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배급하는 쇼박스의 조수빈 팀장이 개봉 당일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인터뷰 현장의 분위기와 “스즈메의 문단속”에 할당된 전국 극장 좌석수를 보고는 “이건 완전히 텐트폴 영화네요”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신카이 감독의 영화를 시작한 건 실은 그의 영화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까지만 썼으면 그저 그렇거나, “나쁘지 않군” 정도의 제목이 었겠지만 ‘은’이라는 조사 하나가 들어감으로써 어감은 여운을 남기며 아주 멋진 제목으로 바뀌었습니다. 김훈 작가가 “칼의 노래” 첫 문장을 ‘버려진 섬에도 꽃이 피었다”로 쓸지 “버려진 섬에도 꽃은 피었다”로 쓸지를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 이런 감각의 제목을 뽑을 수 있는 감독이라면, 영화라면, 꼭 봐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의 이름은.”은 한국에서도 380만 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 전까지 역대 일본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습니다.

“날씨의 아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제목만 듣고도 ‘아, 이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군’하고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날씨’도 평범한 단어이고 ‘아이’도 평범한 단어입니다. 실제로 ‘~의 아이(들)’이란 영화 제목도 흔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평범한 두 단어가 붙으니 정서적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날씨의 아이(天気の子)”. 날씨의, 아이. 

이 아이는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하는 궁금증이 맑은 하늘에 먹구름 몰려오듯 밀려옵니다. “날씨의 아이”는 호우가 그치지 않는 재난 상황의 도쿄에 햇빛을 비출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가진 ‘맑음 소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 스즈메의 문단속(すずめの戸締まり)". 스즈메의, 문단속.

‘문단속’이란 말은 요즘 시대에는 약간 문어체적 느낌을 줍니다. 아파트보다는 개별 주택이 많았던 과거에는 문고리가 대개 철물로 돼있었습니다. 손으로 잠그고 풀고 했었죠. 그래서 외출할 때나 집에 아이들만 있었을 때는 “문단속 잘 해”란 말을 참 많이 하고 많이 들었습니다. 일상적인, 구어적 표현이었죠. 

그러나 아파트에 많이 살고 전자식 ‘도어락’이 일반화된 요즘에는 문단속이란 표현이 예전만큼 자주 쓰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일본 주택의 방범 사정은 잘 모릅니다만, 문단속이란 표현은 그래서 묘한 향수와 함께 도대체 무슨 영화길래 이런 표현이 등장해야 하는 거야?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영화 제목으로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단어가 오히려 신선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이런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궁금증을 약간의 질투와 부러움에 담아 신카이 마코토 감독에게 평소 영화 제목을 어떻게 뽑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제목을 지을 때는 항상 약간 올드한 느낌을 주는 제목으로 하고 싶습니다. ‘조금 촌스러운 것이 딱 좋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왜냐하면 저는 일본의 신화라든지 옛날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야기를 만들 때가 굉장히 많은데요, 그것들에는 아주 잘 만든 패턴만이 남고 남아서 지금에 이어져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 예스러운 느낌과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런 것을 연상시킬 수 있는 제목을 지으려고 합니다.”

신카이 감독이 직접 뽑는 것은 제목만이 아닙니다. 포스터에 쓰이는 헤드 카피도 신카이 감독이 직접 뽑아서 넘겨준다고 “스즈메의 문단속”의 홍보사 ‘영화인’의 신유경 대표가 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아주 좋죠. 감독이 헤드 카피까지 딱 뽑아서 주니까요.”하고 신 대표가 농반진반, 웃으며 말했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 메인 포스터 / 미디어캐슬
국문학을 전공한 신카이 마고토 감독이 뽑은 “스즈메의 문단속” 헤드 카피는 ‘다녀오겠습니다.’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카이 감독의 2013년 영화 “언어의 정원”의 여주인공인 유키노 유카리 선생님도 ‘고전’ 수업을 담당하는 국어 교사입니다)

‘다녀오겠습니다’는 문단속 만큼이나 올드하고 평범하지만 고귀한 문장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나서 새삼 그렇게 느꼈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는 한국에서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같은 의례적인 인사말이지만, 재해나 사고의 순간에 부닥치면 이 말만큼 듣고 싶은 말이 없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평소에는 아무 말 아니었던 그 말 한마디가 너무나 사무치게 그립고 반가웠던 적이 다들 한두 번씩은 없었던지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스즈메의 문단속”이 문을 모티브로 한 것은 문이 일상의 심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문을 열고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나가고 ‘다녀왔습니다’하고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 일상 생활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재해라는 것은 그런 일상을 단절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문을 열고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는 것이죠.”

   “스즈메의 문단속”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불러온 동일본대지진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영화인으로서, 예술가로서, 참 어렵고 용기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카이 감독은 12년 전 재해를 엔터테인먼트로 다뤄도 괜찮을지 스태프들과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일본인의 삼분의 일 정도가 이미 잊고 기억하지 못하는 동일본대지진에 대해서 더 늦게 영화로 만들게 된다면 아무도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그려내지 않는다면 지금의 일본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큰 거짓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작화의 아름다움이나 이야기의 완성도은 물론 신카이 감독의 이런 예술적 야심이 “스즈메의 문단속”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 이어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21년만에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시킨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  *

“피아노의 숲(ピアノの森 ⋅ 2007)”,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 ⋅ 2013)”, “목소리의 형태(聲の形 ⋅ 2016)”.

제가 제목에 홀린 듯이 극장으로 가서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제목입니다. (오리지널 영화도 있고, 원작 만화가 있는 영화도 있습니다) 특히 클리셰를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최근 한국 영화 제목들의(“헤어질 결심” 제외!) 감각으로 보면 조금은 엉뚱하고 색다른 감각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미야자키 옹의 영화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애니메이션 영화라서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측면이 있겠지만, 언어의 조탁이 우악스럽지 않고 섬세하고 신선합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행위나 대사도 그렇게 흘러갑니다. 그것이 어쩌면 일본 영화가 지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올 여름, “바람이 분다”이후 십 년 만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이자 진짜 은퇴작이 개봉 예정입니다. 제목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기대가 큽니다. 제목만으로도 안보고 못 배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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