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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터랙티브! 재미를 향해 이토록 치열하게 - 『N』[북적북적]

종이책 인터랙티브! 재미를 향해 이토록 치열하게 - 『N』[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73 : 종이책 인터랙티브! 재미를 향해 이토록 치열하게 - 『N』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6개 장으로 구성되지만 읽는 순서는 따로 없습니다.
어느 장부터 시작할까.
다음은 어느 장으로 넘어갈까.
어느 장으로 마칠까.

이 페이지를 넘기면 각 장의 머리 부분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읽고 싶은 장을 선택해서 해당 페이지로 이동하십시오.
그 장을 다 읽으면 다시 앞으로 돌아와 머리 부분들 가운데 다음 장을 선택하십시오.
신중하게 택하든 아무렇게나 택하든 관계없습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이 책은 장과 장의 물리적 연결을 없애기 위해 장이 바뀔 때마다 위아래가 뒤집히도록 인쇄되어 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

[N]은 신선한 시도가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앞서 인용한 '이 책을 읽는 방법'이란 서문에서 작가가 설명하고 있는 그대로, 독자는 이 책에 실린 6개의 장 가운데 어느 장부터 먼저 골라 읽을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음 장도 그 다음 장도 마찬가지로 독자가 정합니다. 그래서 모두 720가지의 조합으로 각기 다른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726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개의 장 각각을 하나의 단편으로 봐도 무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목 [N]은 그야말로 N, 불특정의 무궁무진한 숫자를 의미합니다. 읽는 내가 완결 짓는, 가능성의 소설인 것입니다.

표지를 열고 펼쳐서 나오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차례로 읽어나간다는, 책이라는 물건의 물리적인 순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편집에도 재치를 발휘합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리 그래도 맨 앞부터 쭉 차례로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방법'과 6개 장들의 첫머리를 각각 한 페이지씩만 모아놓은 앞부분을 지나고 나면, 대뜸 그 6개 장 중 하나의 뒤집어진 맨 뒷장이 나옵니다. 그 장의 시작 페이지를 향해 책의 중간 부분으로 일단 가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몇 페이지로 가면 되는지, 6개 장들의 첫머리를 모아놓은 앞부분에 안내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뒤적뒤적 찾아 읽게 됩니다. 앞서 읽었던 각 장의 머리 부분 가운데 마음이 좀더 갔던 장부터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꼭 종이책으로 접할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종이책의 물리적인 실재감과 묵직한 무게를 느끼면서도 새로운 감각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것 자체가 이 책이 주는 재미의 일부분입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인터랙티브'입니다. 소설가의 이런 기획과 노력이 제게는 마음을 울리는 점이 있었습니다. '인터랙티브'는 사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주목된 개념입니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미디어 중 하나인 종이책,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미디어들과 경쟁하느라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짜내고 있는 종이책으로 이 같은 나름의 '인터랙티브'를 고안해 본 것입니다. 독자에게 색다른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 창작자가 거듭한 고민의 깊이가 문득 마음을 두드립니다.
 
"이름 없는 독과 꽃

매달 한 번 하는 통장정리를 위해 빗속을 걸었다.
아무도 없는 ATM 박스에 들어가 핸드백에서 통장을 꺼낸다. 이렇게 종이통장을 쓰는 사람은 나와 같은 삼십대 후반일 테고, 이미 소수파인지 모른다. 요즘은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는 사람이 당연히 더 많다.
헤진 통장 표지에 요시오카 리카라는 내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이름이란 과연 무엇일까. 각진 서체로 적혀 있는 네 글자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를 비롯하여 결혼하면서 성이 바뀐 사람은 많지만 퍼스트네임은 대개 평생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름은 본인이 미처 의견을 갖지 못한 시기에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다.
이름은 거기에 담긴 누군가의 '생각'이나 '바람'일 수 있지만, 그 자체의 본질은 아니다. 이름 자체가 중요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대체로 이름이 없다.
13년 전, 내가 마신 독에도 이름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금도 온몸을 흐르고 있다.
이 장을 읽으려면 84쪽으로"
 
이렇게 독자가 내키는 장부터 골라 읽는 방식으로 읽을 때, 720가지의 가능한 조합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관건일 것입니다. 서로서로 연결점들을 가진 이 여섯 개의 챕터들 중에서 어떤 단서, 어떤 인물들부터 먼저 만났느냐에 따라 얼마나 그럴듯하게 의미 있는 차이가 생겨날 것인가. 읽는 사람 스스로 책 안에서 자기의 길을 만들어 나간 보람을 느길 수 있을 만큼의 차이가 나타날 것인가.

이 책은 그 점에서 '꽤 성공한 시도'입니다. 6개 장에 걸쳐 등장하는 인물들과 단서들을 어떤 순서로 접했느냐에 따라,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뉘앙스가 사뭇 달라집니다. 책 속 사건의 상황에 대한 추리가 뒤집히는 경우도 생깁니다. 읽는 순서에 따라서 다른 뉘앙스를 느낄 수 있도록 책 곳곳에 고심해서 심어놓은 '트릭'들이 눈에 띕니다.

오늘 낭독에서는 책의 앞부분에 모여있는 6개의 리드 페이지들을 읽었습니다. 낭독을 듣고 이 신선한 기획 소설에 관심이 가신다면, 꼭 종이책으로 한 번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 6개의 장을 어떤 순서로 엮어서 '나만의 [N]'을 만들고 싶은지, SBS 뉴스 앱을 비롯해 네이버 오디오클립이나 팟빵처럼 [북적북적]이 서비스되는 플랫폼에서 댓글로 함께 나눠주시면 더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야구 재능을 타고난, 이름이 한 글자만 다른 쌍둥이가 등장하는 만화가 있다고 한다.
주인공 형제가 모두 야구선수라고 하면 어른들은 대개 그 제목을 대며 아는 척한다. 하지만 나와 형은 쌍둥이도 아니고 야구 재능에도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며, 이름도 한 글자만 다른 정도가 아니라 히데오와 신야인 데다, 그 만화에서는 동생이 이야기 중간에 죽어버리지만 나는 현재 살아 있다.
살아 있지만-.
"죽어 줄래?"
그날 아침 대뜸 그 말을 들었다.
어두운, 감정 없는 목소리로.
그로부터 닷새 동안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왜 그녀는 그런 말을 했을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무슨 짓을 하려고 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그저 야구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을 뿐인데 왜 죽어달라는 잔혹한 말을 던져야 했을까.
-이 장을 읽으려면 87쪽으로"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이번에 처음 접했습니다. 종이책과 소설을 쓰고 읽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담긴 기획력이 신선할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비치는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픔을 품은 약자,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순수한 측은지심이 살인, 폭력, 교통사고 같은 충격적인 소재의 행간 곳곳에서 묻어나서 그것도 호감이 갔습니다.

평범한 추리소설을 쓰려는 노력보다 몇 배의 노력이 들어갔을 텐데, 그 노력의 무게를 굳이 독자에게 알아달라고 하지 않는 책입니다. 그저 재미있게 읽어달라고, '당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달라'고 제안해 올 뿐입니다. 가장 오래된 매체로 체험해 보는 '종이책 인터랙티브', [북적북적]과 함께 즐겨주세요.

*'북스피어'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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