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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하고 마을 쓸었다…"증오도 없어, 사실 인정하라"

<앵커>

베트남에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냈던 피해자가 사는 마을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시설이 마련돼 있습니다.

김상민 기자가 베트남 현지에 가서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자>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 성의 한 작은 마을 '빈호아'.

마을 입구 잡초가 무성한 공터에 세워진 낡은 비석이 보입니다.

[응우옌 떤 득/빈호아 마을 주민 : '빈호아 학살'입니다. 어릴 때부터 여기 살아서 알고 있습니다.]

증오비라는 제목 아래 지난 1966년 12월 사흘에 걸쳐 한국 해병 청룡부대가 주민 430명을 학살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늘에 닿을 죄악을 만대가 기억하리라'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 마을을 싹 쓸어 버렸다 등 한국군에 대한 원망이 묻어 있습니다.

[도안 년/빈호아 학살 사건 생존자 : 죽이지 말라고 빌었는데도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너무 불쌍했습니다.]

퐁니 마을과 차로 20분 거리인 하미 마을에도 커다란 위령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퐁니 사건 열흘 뒤인 1968년 2월 22일, 역시 청룡부대에 의해 주민 135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당시 이 일대에서 희생됐던 135명의 이름을 한 데 모아놓은 위령비의 뒷면에는 잔인한 한국군 때문에 마을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는 긴 비문도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아볼 수 없게 뒷면 전체가 연꽃 그림으로 덮여 있습니다.

지난 2001년 말 한국인에 대한 증오심을 키운다며 우리 정부가 수정을 요구하고 베트남 외교부까지 설득에 나서자, 아예 비석을 덮는 쪽으로 결정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하미 마을 유가족 연락반의 대표였던 응우옌 꼬이 씨는, 이제는 비문을 일부 고치더라도 연꽃을 걷어내 진상을 드러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응우옌 꼬이/하미 학살 사건 유가족 대표 : (베트남은) 우리를 침략한 미국과도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강제로 끌려온 한국은 말할 것도 없죠. 이제는 증오고 뭐고 없습니다. 단지 사실만큼은 인정해달라는 겁니다.]

생존자 응우옌 티 홍 씨는 불이 난 할아버지 집에서 숨진 가족들을 뒤로한 채 탈출했습니다.

[응우옌 티 홍/하미 학살 사건 생존자 : 탈출하려면 죽은 가족을 밟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몸은 완전히 피로 덮여 있었습니다.]

학살이 벌어지기 전 자신의 오빠를 방공호 안에 밀어 넣고 구해준 한국 군인이 있었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응우옌 티 홍/하미 학살 사건 생존자 : (학살이 벌어진) 그날 아침에 이미 알고 있었던 거예요.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던 거죠. 눈물을 흘리고 총을 쏘는 군인도 있었을 겁니다.]

1심에서 승소한 퐁니와 달리 다른 피해 마을 대부분에는 당시 사진이나 문서 같은 증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미 마을 피해자들도 한국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지만 아직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응우옌 티 탄/하미 학살 사건 생존자 : 피해자들한테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되는 게 하나도 없어서 지치네요.]

(영상취재 : 최대웅, 영상편집 : 황지영, CG : 최하늘·임찬혁, 사진제공 : 한베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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