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휴가도 다 못 써", "과로 이어질 것" 지적 쏟아지는데도
직장인들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이미 있는 휴가도 못 쓰는 판국에 업무량을 이유로 회사에 머무는 시간만 늘어날 거란 지적이 줄을 이었습니다. 결국 사용자의 '시간 주권' 편의가 커지게 될 거란 우려들이었습니다. 이미 주 52시간제 하에서도 작은 사업장을 중심으로 8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이 이어지다 과로하는 사업장(중대재해법 1호 두성산업) 이 노동부 감독으로 적발되기도 했는데도, 노동부 차관은 이번 개편안으로 주 80.5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일부 언론의 해석을 '극단의 논리'라고 반박했습니다.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근로시간 개편안이 '과로의 길'을 열어준다는 지적이 쏟아지지만 이런 우려의 목소리를 고용노동부는 별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근로시간 유연화가 글로벌 스탠더드? 장시간 노동 현실부터 살펴야
정부는 이번 개편안을 설명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이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국제 기준이어서 이를 적극 반영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애써 외면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도 있습니다. 우선 발 딛고 서있는 노동 현실이 다릅니다. 2021년 한국의 연 평균 노동 시간은 1천928시간. 유럽 국가들의 1천300~1천400시간에 비교하면 우리는 한 해 최소 500시간을 더 일합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걸 장려하기 전에 근로시간 총량 감축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옵니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어떨까요. 프랑스의 법정 노동시간은 주 35시간, 특정 주의 최장 노동시간은 48시간까지 가능합니다. 영국의 주 최장 노동시간도 48시간입니다. 주 52시간이었던 상한이 노동부 개편안 대로라면 64시간 혹은 69시간까지 늘어나는 한국과 대조적입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OECD 국가들 중에 월이나 분기 단위로 근무 시간을 책정하는 프랑스와 독일 등의 경우 '1주 48시간'을 장시간 노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 64시간에서 69시간까지 근로 시간이 늘어나면 과로와 산재의 위험성을 현저히 높일 수 있는데도 이런 우려를 정부는 근시안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소장은 정말로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연차 휴가 자체를 확대하는 방안이나 노동자들의 최소 휴가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가 필요한데 '휴식권'과 관련해 이 같은 강제력을 가진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습니다.
주 단위 노동시간 규제 중요한 이유, "인간은 기계가 아니어서"
휴가 몰아서 쓰라? 과로 사회 정말로 개선하려면
한국은 이미 과로 사회입니다. OECD 평균보다 한 해 약 39일 더 일합니다. 전 세계 나라 중 멕시코, 칠레, 코스타리카 다음으로 과로합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 중 5.9점에 불과합니다. OECD 38개국 가운데 36위입니다. 추락하는 출생률을 덧붙이지 않아도, 우리네 삶이 하루하루 버티는 일상의 연속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정부도 '실근로시간 단축'과 '휴식권 보장'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인데, 정작 실효성이 있어야 할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등에 대한 제도적 해법은 '대국민 캠페인 장려'처럼 모호합니다. 노동부가 이번 근로시간 개편을 '역사의 진일보' 정도로 평가하려면 적어도 이런 우려를 불식하려는 노력은 최대한으로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