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피고인 이재명' 법원의 시간 시작…법정서 국어사전 동원된 이유는

[취재파일] '피고인 이재명' 법원의 시간 시작…법정서 국어사전 동원된 이유는
지난주 금요일(3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습니다. 지난 20대 대선 후보 시절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선거법 위반' 사건입니다. 한창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대장동, 성남FC 사건과는 성격이 좀 다른데 재판 결과에 따른 정치적 파장은 훨씬 더 클 수 있습니다. 선거법 위반의 경우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된다면 이 대표는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다음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도 대선 과정에서 사용된 선거 비용 431억 원과 기탁금 3억 원을 반환해야 하는데요. 한마디로 이 대표의 정치 생명과 직결된 재판이 될 수 있는 거죠.

법원에서 통상 첫 재판은 전초전격 성격을 갖습니다. 검찰의 공소사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에 대한 피고인 측 입장은 어떤지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요. 앞으로 재판에서 다뤄질 주요 쟁점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대표의 첫 재판, 첫날부터 검찰과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다음 주에 있을 이 대표의 두 번째 재판을 앞두고 지난 첫 재판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쟁점은 무엇이 될지 <취재파일>을 통해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다'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의식이나 감각으로 느끼거나 깨닫다는 뜻입니다. 경험에 의해 형성된 의식의 상태를 말하는 건데요. 어떤 사람을 몇 번 이상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나요? 어떤 기준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재명 피고인이 했던 말은 본인의 인지 상태를 얘기한 거지 개별 경험의 '존부'에 대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이재명 민주당 대표 측 변호인-

지난주 열린 첫 재판에서 이 대표 측은 20쪽 분량의 PPT를 준비해왔습니다. PPT 내용을 얼핏 보면 국어학개론 수업 자료 같기도 했는데요. '안다', '모른다'라는 표현의 사전적 정의와 의미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법정에서 국어사전까지 동원된 걸까요? 이 대표가 받는 혐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답이 나옵니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 후보였던 시절 방송 인터뷰 등에서 대장동 사업 실무 책임자였던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알지 못한다'며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를 받습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이 대표 측은 검찰의 논리를 깨기 위해 '알다', '모른다'의 사전적 정의를 들고 나왔습니다. '안다', '모른다'는 주관적인 인지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개념이고 몇 차례 만났더라도 '알지 못했다'는 표현은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이 대표 측은 "'사람을 안다'는 기준은 상대적이고 평가적인 요소가 있다"며 "한 번만 봤어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번을 만났어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안다는 말은 사적인 친분이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개인적으로 안다'는 말은 단순한 인지의 단계를 넘어서는 표현이고, '얼굴이 기억난다', '대화한 적이 있다'는 표현과 '개인적으로 안다'는 표현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고 김문기(왼쪽)와 이재명

나아가 이 대표 측은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만난 사실은 있지만 특별히 '기억할 만한' 접촉이 없었다는 지점을 강조했습니다. 성남시 공무원에 산하기관 임직원까지 더하면 4천 명에 달하고 김 전 처장과 같은 직급인 팀장만 600명인데 하급 직원을 기억할 수 있겠냐고 말입니다. 또 이 대표와 김 전 처장이 함께 출장을 다녀온 것과 관련해선 "이 대표가 성남시장일 때 해외 출장을 16차례 갔고 한 번에 10여 명이 함께 갔다"며 "이 중에서 한 출장에 같이 간 직원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식석상과 사적 자리에서 단독으로 만나 대면해 얘기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고, 김 전 처장과 사적으로 접촉한 적은 없다는 건데요. 결과적으로 김 전 처장을 만나 보고를 받거나 해외 출장에서 함께 골프를 쳤다해도 방송에서 김 전 처장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 건 당시 자신의 '인지' 상태를 말한 것일 뿐이라 허위의 '사실'이 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검찰도 첫 재판인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해왔습니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해 이 대표에 대한 공소사실을 낭독하고 이 대표의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또 다시 국어사전이 동원됐는데요. 우선 검찰은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몰랐다'에서 '기억이 없다'로 주장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진술서에 따르면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게 자신의 기억이란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검찰은 국어사전에도 '기억'은 생각해낸단 의미라며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본인 사이에 있던 과거의 행위나 경험을 재구성해낸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검찰은 이 대표 발언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유권자들의 입장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김 전 처장을 알지 못한다'는 발언을 유권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김 전 처장과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별한 행위나 경험이 없었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검찰은 "이 대표가 무엇을 숨기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김 전 처장과의 관계를 차단하면서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인허가권자로서 김 전 처장의 보고를 받았는지, 김 전 처장이 왜 사건 관련 수사를 받다 사망에 이르렀는지 등에 대한 후속 질문을 차단했다"고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이 대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던 당시 상황에서 실무 책임자였던 김 전 처장과의 연관성을 조기에 차단해 비난 여론이 확산되기 위한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있는' 발언이었다는 논리입니다.
 

이재명 "김만배 몰랐다는 윤석열 후보 발언은 불기소…검찰 "발언 성격 · 내용 전혀 달라"

이재명 검찰

또 다른 쟁점도 있었습니다. 바로 "김만배를 몰랐다는 윤석열 후보의 말에 대해선 조사도 없이 각하했고, 김문기를 몰랐다는 이재명의 말에 대해선 압수수색, 수십 명의 소환조사를 해서 기소했다"는 이 대표 발언입니다. 이 대표 측 변호인은 법정 안에서도 이 대목을 집중적으로 언급하며 검찰 수사의 형평성 문제를 따지고 들었습니다. 이 대표의 해당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이 재작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김만배 씨와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고 했다가 이후에 "김 씨가 회식 자리에 왔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가 고발당했던 사건을 말합니다. 이때도 시민단체 고발이 있었지만 검찰이 기소하지 않았다는 건데요. 그러면서 이 대표 측은 당시 검찰의 판단이 기존 판례에 부합하는 '적절한 판단'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친분 유무는 스스로의 평가나 의견에 불과하기 때문에 만약 검찰이 이 발언을 바탕으로 실제 김만배 씨와 윤 대통령의 접점을 수사했어도 부적절했을 거라는 겁니다. 다만, 이 대표 측은 "두 사건의 기준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건에 따라 검찰이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의문이 든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은 어떤 근거로 윤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았던 건지를 먼저 따져봐야겠죠.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윤 대통령 발언이 먼저 뭔지 살펴봐야 할텐데요. 바로 지난 2021년 9월 20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경선 토론회에서 "(김만배 씨와)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다. 몇 년 전에 어느 현직 검찰 간부 상갓집에서 저쪽 자리에 앉아서 눈인사를 한 것 같다"고 한 발언입니다. 검찰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발언은 발언 성격과 내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비교 선상에 둘 수 없단 입장입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윤 대통령 발언은 개인적 친분이 없다는 취지였지만 이 대표의 발언은 의견 표명의 차원이 아니다"라며 "출장 때 함께 골프를 친 것과 같은 구체적 행위, 구체적 사실에 대한 허위 발언이기 때문에 사안이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대표 발언은 김 전 처장과 함께 한 행위나 교류 사실이 없어 얼굴도 모르고, 호주 출장 당시 골프를 친 사실도 없다는 취지라 구체적 사실 표명에 가깝다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해서도 "유동규는 측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 같은 주관적 평가는 불기소한 바 있다는 사실을 반론의 주된 근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재판에선 1심 재판부가 '안다'라는 발언의 성격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핵심 쟁점이 될 걸로 보입니다. 당선을 위한 적극적인 고의가 있었다고 볼지도 중요하고요. 이 대표도 이를 의식해 향후 재판에서 자신의 발언 역시 윤 대통령 사례처럼 주관적 평가와 의견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계속 강화해나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편, 대담 형식의 방송 인터뷰에서 즉흥적으로 한 발언은 '사실의 공표'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 대표 측 주장이 받아들여질지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이 대표 측은 지난 2020년 7월 이 대표를 정치적 위기에서 구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주된 근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즉흥적으로 답변이 이뤄지는 TV 토론회의 성격을 고려해 과거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비슷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습니다. 토론회 같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발언까지도 엄격하게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하면 헌법상 선거운동의 자유 등이 지나치게 제한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반론도 존재합니다. 어느 정도 질문의 내용을 사전에 알려주는 인터뷰 특성상 토론회와 동일선상에 놓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논리가 대표적인데요. 검찰은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을 한 번이 아닌 수차례 했고, 토론이 아닌 예정된 인터뷰였다는 점을 파고들어 고의성을 부각할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의 시간' 시작…격주 금요일마다 재판, 유동규 첫 증인

유동규 (사진=연합뉴스)

앞으로 있을 재판, 검찰은 이 대표가 김 전 처장과 함께 골프를 쳤던 해외 출장이 과연 같이 간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격식 있는 공무상 출장'이었는지, 김 전 처장이 정말 단지 하위 직원에 불과했는지 등을 증거를 통해 하나하나 밝혀나가겠다고 예고한 상태입니다. 첫 재판에서 그 증거 중 일부로 2009년 김 전 처장의 휴대전화에 이 대표 연락처가 저장돼있었다는 포렌식 기록과 김 전 처장이 딸에게 해외 출장 당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골프를 쳤다고 자랑한 동영상 등을 제시했는데요. 이 대표에 대한 재판은 앞으로 격주 금요일마다 열립니다. 대장동 재판과 검찰 조사에 이어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폭로를 이어온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첫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입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이 대표와 대면하게 되는 겁니다. 당장 다음 재판은 다음 주 금요일(17일) 열립니다. 본격적인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는데, 앞으로의 재판도 <취재파일>을 통해 상세히 전하겠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