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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남극에서 보낸 6년…'남극 1년 살기' 어렵지 않아요

[극적인 사람들] 월동대만 6번 도전했던 월동대원의 이야기

지구상에서 가장 북쪽과 남쪽 끝 극단적인 곳에서 극한 체험하면서 연구하는 '극적인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가기도 힘든 남극과 북극을 수시로 오가며 연구 활동을 펼치는 극지연구소 사람들과 스프의 콜라보 프로젝트!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글: 김홍귀 극지연구소 미답지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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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처음 가본 남극은


저의 첫 남극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우연히 보았던 신문 한구석에 남극 월동대 모집 공고를 보고, 과연 그곳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일을 할까 하는 설렘과 호기심이 처음 남극을 지원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2000년도 밀레니엄 시대를 지구상의 청정지역에서 맞이하며 보낼 수 있어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중장비 운행과 관리는 저와 맞는 직종이었습니다. IMF 이후라 좋은 직장에서 이직하신 훌륭한 분들로 어느 해보다 지원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필요한 인원은 중장비 운행 및 관리자로 단 2명 선발. 쉽지 않은 지원이었지만 서류전형, 면접, 건강검진 등 시험 볼 때마다 최선을 다하며 남극이라는 곳을 지원한 자체만으로도 자신에게 칭찬을 하며 남극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습니다.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었죠. 

남극까지 가기 위해서는 3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첫 해외였고 엉덩이가 아플 정도의 비행도 처음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설렘을 안고 들어온 남극은 역시 추웠고, 주변의 새하얀 눈, 그리고 세종과학기지를 가기 위해 내려온 해안가에서 남극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펭귄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땅에는 하얀 눈... 이른 새벽 일어나 밖에 나가면 콧등은 시리지만 가슴 깊이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는 하루를 시작하는 데 있어서 신선한 영양제 같았습니다.
 

남극기지에서 보낸 365일

1년 동안 남극세종과학기지를 운영하기 위한 월동대는 15~18명으로 구성됩니다. 매년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계기간은 한국의 봄 날씨와 비슷하지만 월동기간에는 밤도 길고 기온도 평균 영하 20도 정도 되었습니다. 기온이 낮아도 한국처럼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청정지역이라 외부에서 감기바이러스가 유입되지 않는다면 감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 남극 생활 중 가족과 연락은 손 편지로 이어갔습니다. 칠레 기지의 우체국을 통해 기지로 전달되는 우편물은 기나긴 겨울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득 싣고 기지로 날아오는 칠레 헬리콥터를 저희는 '까치'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받은 편지와 선물들은 가슴에 품고 힘들고 지칠 때 언제든지 꺼내어 보는 비타민제였습니다. 

남극의 하계기간은 많은 연구원들이 일 년 농사의 성과를 얻기 위한 분주한 시기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들이 샘플 채취와 국내에서 할 수 없는 연구 활동을 수행하게 됩니다. 하계기간을 마치고 월동대만 남게 되면, 기지는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해집니다. 긴 어둠과 긴 추위, 어쩌면 본격적인 자신과의 싸움의 시작이죠. 바이오리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일정한 생활패턴이 중요합니다.

평상시에도 아침 6시 기상해 맡은 구역 정리와 청소로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저녁에 운동으로 마무리하는 패턴으로 긴 월동생활을 보냈습니다. 해가 보이고 바람이 잦은 날이면 눈 쌓인 뒷동산으로 올라가 스키로 체육활동을 하였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전 대원들이 함께하는 체육 시간을 마련하여 체력을 향상하고 웃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15~18명의 월동대는 전국 각지에서 지원하여, 성장한 환경도 성격도 모두 다른 분들이지만 남극에서 한뜻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발 앞서는 분 없이 서로 한 발 물러서서 이해하고 서로 격려하며 여러 해 동안 무난한 월동 생활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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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맞이하는 생일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극은 늘 춥고 겨울 날씨 같아 그런지 생일을 맞이하는 모든 분에게 일반적인 축하 노래가 아닌 ‘겨울아이’라는 노래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생일을 맞이하는 대원들 모두에게 케이크를 만들어 줬습니다. 한국에서는 제과점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인데 남극에서는 귀한 식품이 되었습니다.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라 만드는 방법과 기술을 스스로 습득해야 했습니다. 처음 시도한 케이크는 모양은 케이크 같아 보였지만 부드러워야 할 시트가 작은 초도 꽂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만들어져 먹기보다는 보는 케이크로 만족해야 했죠. 그래도 그 노고가 고마운지 생일을 맞이한 대원은 맛있다고 먹어주곤 했습니다. 저는 그 즐거움에 다음 생일자를 위해 또 케이크를 만들게 됩니다. 

기지에는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옵니다. 케이크를 만들어 보는 김에 월동기간 제빵을 시도해 보기로 하여 휴일 때마다 만들기 쉬운 레시피를 인쇄하여 관심 있는 대원과 같이 빵을 만들며 긴 월동의 시간을 나름 보람되게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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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엔 세종기지 앞바다 전체가 얼어 스노모빌을 타고 바다 건너 칠레, 우루과이, 러시아, 중국 기지까지 자유롭게 방문하였고, 8월에는 기지 주변의 여러 나라 대원들과 우정을 쌓는 ‘남극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농구, 탁구, 배구, 당구, 풋살.

그리고 각 나라의 대표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 올림픽’ 자리도 마련되었습니다. 저희는 남극의 얼음을 이용한 팥빙수와 불고기, 김밥 등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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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도 한국과 같은 명절을 보냅니다. 설, 추석 그리고 동짓날.. 월동대원들은 비록 몸은 가족과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고향에 있고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명절 전날 모두들 식당에 모여 주방장이 준비해 준 명절 음식재료를 지지고 볶고, 떡과 두부도 만들고 풍성한 명절을 준비합니다.

추석을 끝으로 서서히 여름이 시작되면 1년간 운행하였던 기지를 다시 돌아보며 인수인계 준비하면서 새로이 들어올 월동대원들을 기다리게 되죠. 365일 동안 다치지 않고 대원들과 트러블 없이 잘 보내온 시간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더 많았습니다. 그 아쉬움이 다시 남극을 찾게 되는 이유와 도전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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