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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북한이 태평양으로 ICBM을 쏜다면…미국은 요격할까?

[N코리아정식] 임박한 시나리오, 북미의 고민들

2017년 9월 21일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던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북한의 향후 조치와 관련해 "아마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태평양에서 하는 것으로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말폭탄을 주고받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를 언급한 데 대한 의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태평양에서의 수소탄 시험이란 ICBM에 수소탄 탄두를 달아 태평양에서 터뜨리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이는 북한이 ICBM을 정상 각도로 태평양까지 발사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2017년 7월 고각 발사 형태로 두 차례 발사한 적이 있는 ICBM급 미사일 '화성-14형'을 정상 각도로 실제 사거리만큼 날려 태평양에 떨어뜨릴 가능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2017년 9월 미국을 방문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리용호 외무상의 말이 실현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태평양으로 ICBM을 쏜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직접타격을 암시하는 매우 도발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만큼, 북한이 이를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리 외무상의 발언은 북한의 전형적인 엄포로 치부됐습니다.
 

다시 주목받는 '북한 ICBM의 태평양 발사' 가능성

그로부터 5년 여가 지난 지금 북한 ICBM의 태평양 발사 가능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북한의 언급이 잦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20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ICBM의 태평양 발사 가능성을 다시 언급했습니다. 북한의 정찰위성 시험에 대해 남한 내에서 위성사진 수준이 조악하다는 혹평이 나오자 막말로 비난하는 와중에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 것입니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대해) 고각발사만으로는 입증할 수 없고 실제 각도로 쏴 보아야 알 수 있을 것 뭐 또 이따위 논거로 우리 전략무기 능력을 폄훼해 보자고 접어들 것이 뻔할 것 같아 보인다. 해서 하는 말인데 그에 대한 답변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해 주겠다. 곧 해보면 될 일이고 곧 보면 알게 될 일이 아니겠는가."
- 김여정 담화, 2022년 12월 20일
 
북한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ICBM급 미사일인 화성-14형, 15형, 17형을 발사했지만, 모두 비정상적으로 고도를 높여 비행거리를 줄이는 고각발사 방식으로 발사했습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발사한 화성-14형, 15형, 17형 모두 고도는 최대 6,200km 이상까지 올라갔지만 비행거리는 1,000km 안팎으로 동해상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김여정이 ICBM을 고각발사가 아닌 실제 각도, 즉 정상 각도로 발사해 10,000km 안팎의 실제 사거리를 구현해 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올해 들어 지난달 20일에 있었던 김여정 담화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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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우리의 사격장으로 활용하는 빈도수는 미군의 행동 성격에 달려있다."
- 김여정 담화, 2023년 2월 20일
 
그리고, 지난 7일 김여정은 다시 한번 북한이 ICBM의 태평양 발사를 저울질하고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사령관이 "북한이 태평양 지역으로 ICBM을 쏘면 즉각 격추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조선일보 보도를 토대로 '선전포고'를 운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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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은 미국이나 일본의 영유권에 속하지 않는다. (중략)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지 않는 공해와 공역에서 주변국들의 안전에 전혀 위해가 없이 진행되는 우리(북한)의 전략무기 시험에 요격과 같은 군사적 대응이 따르는 경우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로 간주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의 우리(북한)의 군사적 행동규범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 김여정 담화, 2023년 3월 7일
 
김여정의 지난 7일 담화에서는 두 가지가 드러납니다. 첫째, 북한이 ICBM의 태평양 발사를 실제로 진지하게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기사는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이 주호놀룰루 한국 총영사와의 면담 자리에서 말했다는 전언 형식으로 공식 입장발표와 같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김여정 명의의 담화까지 내면서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북한이 ICBM의 태평양 발사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 전언 형식의 기사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 북한은 ICBM을 태평양으로 발사할 경우 미국이 요격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미국의 요격 시 선전포고'를 운운한 것은 북한이 태평양으로 ICBM을 발사하더라도 요격하지 말라는 요구입니다. 김여정이 "그러한 상황에서의 군사적 행동규범이 설정돼 있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이 태평양에서 북한 ICBM을 요격하더라도 북한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습니다. 북한이 엄포를 놓은 대로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미국 공격에 나설 수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기껏해야 한반도 주변에서 미사일 발사와 같은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 고작일 것입니다. 북한으로서는 태평양으로의 실거리 발사를 통해 ICBM의 능력을 과시하고 이를 통해 대외적인 협상력을 제고시켜야 하는데, 미국이 요격해 버리면 체면을 구기는 것은 물론 향후 대미 군사적 압박을 어떻게 높여나가야 할지 곤혹스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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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 고민' 북한, '요격 고민' 미국

북한이 ICBM의 태평양 실거리 발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지금까지 고각발사를 통해 ICBM의 추진력을 입증했다고는 하나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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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17형' 미사일 
대기권 재진입이란 ICBM이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대기권으로 진입할 때 대기권에서 생기는 엄청난 열과 압력을 이기는 기술인데, 이 열과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면 미사일 머리 부분에 있는 탄두가 다 타버리기 때문에 폭탄으로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재진입은 대기권에서의 높은 열과 압력도 이겨야 하지만, 탄두가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대기권 층에서 튕겨나가지 않게 하는 기술도 중요합니다. ICBM 탄두는 포물선 궤적으로 대기권 층에 비스듬하게 재진입하게 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대기권 층에서 탄두가 튕겨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각발사를 하면 미사일이 엄청나게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져 재진입시 생기는 열과 압력을 이겨내는 검증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위에서 내리꽂는 방식으로 탄두가 떨어지기 때문에 탄두가 대기권에서 튕겨나갈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ICBM을 정상각도로 발사해 탄두가 대기권에 비스듬히 재진입하는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고각발사와 정상각도 발사 가운데 어느 쪽 재진입이 어려운가"라는 질문에 "상황이 다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ICBM의 재진입 기술은 정상각도로 발사하지 않는 한 검증되지 않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수 차례의 고각발사를 통해 ICBM의 추진력 자체는 어느 정도 보여준 만큼, 정상각도 발사를 통해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미국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ICBM 면모를 과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이 ICBM을 태평양으로 정상각도로 발사한다고 해도 난제는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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