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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내용 없다"…참전 군인 "왜 일본 닮아가나?" (풀영상)

<앵커>

오늘(9일)은 지난 역사에서 우리나라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지목된 사건에 대한 소식으로 뉴스 시작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지난달 우리 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는데, 오늘 국방부가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했습니다. 민간인 학살인지 전쟁 과정에서 어쩔 수 없었던 일인지, 저희 취재진은 베트남 현지 생존자들과 참전 군인을 만나 그날의 진상과 함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그럼 먼저, 정부가 항소한 이유부터 전해드립니다.

강민우 기자입니다.

<강민우 기자>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2월 12일.

응우옌 티탄 씨는 퐁니 마을로 들이닥친 한국 해병대의 총격에 가족 5명을 잃고 자신도 총상을 입었다며, 지난 2020년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지난달 7일 1심 재판부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우리 정부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오늘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항소심 판결이 내려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민간인 학살'이라는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종섭/국방부장관 (지난달 17일, 국회) : 우리 장병들에 의해서 학살된 그런 것은 전혀 없습니다.]

국방부는 베트남전 당시 자료를 모두 확인해 봤는데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응우옌 씨 측은 위안부나 강제동원 문제에 책임지지 않는 일본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임재성/변호사 (응우옌 씨 측 소송 대리인) : 사실관계가 사법부에서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전쟁 책임에 눈 감고 있는 일본과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할 일은 항소가 아니라 학살의 진상 규명과 책임지는 자세라고 주장했습니다.

(영상취재 : 이용한·최대웅, 영상편집 : 원형희, CG : 이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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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사람을 저희 취재진이 베트남에 가서 직접 만났습니다. 전쟁 당시 8살로, 가족을 잃고 자신도 다쳤었다는 피해자는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말고, 제발 한 번 자신의 마을을 찾아달라는 말을 한국 국방부에 꼭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내용, 김상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김상민 기자>

55년 전 한국 해병대에 의해 주민 74명이 숨진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

당시 8살이었던 응우옌 티 탄 씨가 살던 집터엔 새집이 들어섰습니다.

반가운 얼굴로 취재팀을 맞은 응우옌 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응우옌 티 탄/퐁니 사건 생존자 : 이모는 10개월 된 아이를 안고 한국군인들 손을 잡으며 집에 불을 붙이지 말아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칼로 우리 이모를 몇 번이나 찔렀고 이모가 바로 쓰러졌습니다.]

1968년 2월 12일, 복부에 총상을 입은 8살 소녀는 죽거나 다친 가족을 보고도 손쓸 도리가 없었습니다.

[응우옌 티 탄/퐁니 사건 생존자 : 부엌에 가보니 언니가 거실과 부엌에 걸쳐 숨진 채 누워 있었습니다. 물탱크 쪽에 누워 있던 5살 동생도 입이 찢어져 피가 나고 숨을 헐떡거렸습니다. 동생을 지켜보면서 저는 울기만 했습니다.]

당시 약 300m 떨어진 하수구에서 학살 현장을 지켜봤다는 작은 아버지도 학살 주체가 '한국군'이었음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응우옌 득 쩌이/퐁니 사건 목격자 : 확실히 (가해자는) 한국 군인입니다. 저는 (남베트남) 농촌개발단 꽝남성 지부 회의로 한국군이 있던 '라이 응이' 지역에 자주 가서 마주쳤기 때문에 한국군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숨진 주민의 이름이 적힌 퐁니 사건 위령비에서는 여성에게 붙는 'THI'라는 글자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맨 마지막에는 그해 태어난 이름 모를 신생아도 있습니다.

지난달 1심 승소 소식을 듣자마자 비로소 희생된 영혼이 안식할 수 있겠다고 했던 응우옌 씨.

정부의 항소가 확실시된다는 얘기를 듣자, 한국의 3심제를 몰랐다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응우옌 티 탄/퐁니 사건 생존자 : 정말로 이 재판이 제 마지막 재판인 줄 알았어요. 학살 이야기는 어디에도 못 가는, 나처럼 농사일로 고달프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 지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서 우리 국방부에 이 말을 꼭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응우옌 티 탄/퐁니 사건 생존자 : (한국) 국방부는 학살을 부인하면 안 됩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 마을에 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한국에 가서 아무 말이나 하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상취재 : 최대웅, 영상편집 : 이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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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희 취재팀은 베트남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던 날 작전에 참여했던 당시 해병대원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전쟁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면서도 우리 정부가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참전 군인은 말했습니다.

강청완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강청완 기자>

1968년 해병 청룡부대 소속으로 퐁니마을 작전에 투입된 국가유공자 류진성 씨.

55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류진성/당시 참전 군인 : 집에 이제 불을 지르니까 노인이 하나 막 울면서 뛰어나오더라고요. 선임 병사가 하나 와서 사살이 됐죠. ]

류 씨 소대가 주민을 한 곳으로 모은 뒤 이튿날 그곳은 참혹한 현장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류진성/당시 참전 군인 : 옆을 보니까 도로 가에 막 거적대기 쫙 깔아놓고 시체를 죽 뉘여 놓은 거에요. 난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지 몰랐습니다. ]

희생자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고 류 씨는 기억합니다.

[류진성/당시 참전 군인 : 병장비를 들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어린이라든지 부녀자들…. ]

당시 청룡부대에 연락병으로 파견됐던 미군도 "학살 이후 시신이 널린 현장을 목격했다"고 증언합니다.

[하딩/당시 청룡부대 파견 미군 (다큐멘터리 '사도-성직자 그리고 살인자') : 한국 해병들이 있었고, 연못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저기 시신이 보이기 시작했고, 물 속에 아기의 시신도 있었습니다. ]

류 씨는 당시 민간인 학살은 전쟁 중 불가피하게 일어난 '사고'라 생각한다면서도, 양심에 늘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작년 11월, 용기를 내 법정에서 학살 정황을 증언했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는 게 자신이 바라는 대한민국이라는 류 씨.

[류진성/당시 참전 군인 : 잘못은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걸 깨끗하게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도 군인의 용기입니다. ]

학살 사실을 부인하는 정부가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류진성/당시 참전 군인 : 왜 그렇게 일본을 닮아가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잘못됐다는 진솔한 사과 한 마디를 원하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요구하면서 우리는 왜 베트남한테 그걸 못 합니까. ]

(영상취재 : 최대웅, 영상편집 : 박정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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