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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극단으로 치닫는 미중 갈등…'왕좌의 게임' 최종 승자는?

14억 인구 중국의 부상을 막으려는 미국, 미국의 견제를 뚫고 굴기를 관철하려는 중국. '세계 제일 강국'이라는 제국의 왕좌를 놓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치외교적인 갈등과 무역, 기술, 자본 전쟁에 이어 타이완 문제를 둘러싸고 군사적 충돌도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신흥국이 부상할 경우, 기존 강국이 이를 두려워해 전쟁이 일어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미국과 중국의 세계 제일 왕좌를 둘러싼 갈등은 다른 국가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에 대한 미국의 대중국 봉쇄가 본격화하면서 대한민국의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는 벌써부터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중국은 대한민국의 최대 수출시장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레드라인' 넘지 말라"…중국 양회에서 불거진 미중 갈등


최고지도자가 10년에 걸쳐 두 번 연임해 온 전통을 깨고,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공식적으로 확정할 중국의 연례행사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간의 '금기'를 깨고 미국을 직접 거명하며 비난하고 나섰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7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회의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국가들이 우리에 대해 전면적인 봉쇄·포위·탄압을 시행해 우리 경제에 전례 없이 심각한 도전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임명된 중국의 친 강 신임 외교부장은 "미국이 이성적인 경로를 벗어나고 있다"면서 "속도 조절을 하지 않으면 충돌할 것"이라고 경고 수위를 높였다. 미국의 전방위 중국 견제 정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외교부장으로 발탁된 뒤 처음으로 기자회견에 나선 친 강 외교부장은 "타이완 문제는 중국의 핵심 관심사이자 미중 관계의 초석으로 미중 관계에 있어 넘지 말아야 할 '첫 레드라인(first red line)'이다. 미국은 타이완 문제를 일으킨 책임이 있다. 미국은 중국의 내정에 끼어들지 마라. 피와 살을 나눈 동지로서 중국 국민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타이완을 본토와 통합하도록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다. 누구도 영토를 지키려는 중국 정부와 국민의 강한 결의와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타이완이 독립하려 할 경우 군사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후진타오, 시진핑,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중국은 미국의 정책에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친 부장은 "중국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어느 쪽에도 무기를 제공한 적이 없다. 중국에 책임을 돌리고 제재나 탄압, 나아가 위협을 논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평화와 대화를 설득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과소평가 되고 있다. 누군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연장하고 고조시켜 지정학적인 이익을 얻으려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하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도 강하게 비판했다. 친 부장은 "미국은 인도 태평양 전략이 지역 안보와 번영을 촉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지역의 통합을 막고 분열시키며, 대립을 조장하는 아시아-태평양판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이다. 미국은 중국과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미국이 경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는 죽고 나는 살자'는 식의 중국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제로섬 게임이다. 미국은 중국을 주 경쟁자이자 가장 심각한 지정학적인 도전이라고 보고 있다. 잘못된 길을 달려 내려가고 있는 미국이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어떤 가드레일도 탈선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대립과 갈등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밀착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도 경고를 잊지 않았다. 친 강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은 일본을 항상 선량한 친구나 이웃처럼 선의로 대했다. 하지만 일본이 중국을 통제하려는 새로운 냉전에 가담해 이웃을 고립시키려 한다면 양국의 관계는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또 새로운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럽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손짓을 보냈다. 친 강 외교부장은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라면서 유럽의 통합을 지지하며, 자율과 평화, 안정을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을 강경 비난하면서 일본에는 경고, 유럽에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쓰는 등 갈라 치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중국은 주 경쟁자"…전방위 제재에 타이완 지원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는 2012년 말 중국 공산당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승계한 시진핑 주석이 세계 최고를 향한 '중국몽', '대국 굴기'를 천명하면서 시작됐다. 중국 건국 100주년인 2050년에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강국이 된다는 꿈을 공식화하자 미국이 대응에 나선 것이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덩샤오핑 시대의 외교 방침 도광양회, '할 수 있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장쩌민 주석의 유소작위,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일어선다'는 후진타오 주석의 화평굴기로 이어졌다. 시진핑 주석은 이런 방어적인 대외정책을 '대국의 꿈'이라는 굴기로 전환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도용과 지식재산권 침해, 불공정한 무역관행, 자국 기업에 대한 특혜 지원 등을 문제 삼으며 중국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2016년 당선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산 제품에 대해 대규모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 통신장비회사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2020년 당선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극복해야 할 경쟁자로 규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는 물론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제품에 대한 중국으로의 수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나섰다.

타이완 의회에서 연설하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a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작년 10월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정책을 발표하면서 중국은 최대 경쟁자(top competitor), 러시아는 위험(danger), 인플레이션은 위협(threat)으로 규정했다. 설리번 보과관은 또 "중국은 정치, 경제, 안보, 기술 분야에서 비민주적인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중국과 경쟁에서 새로운 조건을 설정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타이완의 통일과 관련 현상 변경은 안 된다면서 독립국으로서 타이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 이어 유력 정치인들이 잇따라 타이완을 방문하고, 타이완에 대한 무기 판매도 늘리고 있다. 미군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무인도를 요새화하고 있는 남중국해 일원에서 자유항행 원칙을 주장하며 함정과 항공기들을 운항하고, 중국군은 이에 맞서 미군에 대응하면서 위험스러운 상황이 늘상 연출되고 있다.
1979년 미국과 중국은 옛 소련에 대한 견제라는 공동 목표에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미국은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며,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외교기관도 타이페이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덩샤오핑 주석의 시대와 함께 공존 번영의 파트너였던 미국과 중국이 이제 서로 딛고 넘어서야 할 최대의 경쟁자로 변모한 것이다.

네덜란드→영국→미국으로 변한 세계 패권

반복되는 제국의 흥망성쇠…미국은 최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릿지 워터'를 만든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2021년 출간한 책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대처하는 원칙: 국가는 왜 흥하고 망하는가'에서 중국은 뜨는 제국(rising empire), 미국은 쇠퇴하는 제국(declining empire)으로 규정했다. 미국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세계 최강의 위치가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달리오는 서기 1,500년 이후 500년 동안에 세계최강의 제국이 네덜란드 -> 영국 -> 미국으로 변했다면서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이 미국의 위치를 대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양의 산업혁명과 무역선이 출범하기 전인 서기 1,400년대까지 세계 최강의 위치는 항상 중국이었다면서 이제 중국이 서양에 잃어버린 제국의 지위를 회복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레이 달리오는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대처하는 원칙'에서 제국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과 척도 18가지를 제시하고, 평균 250년의 간격을 두고 제국의 지위는 항상 변해왔다고 분석했다. 제국의 힘(power)은 부(wealth)로 한 국가의 부를 결정하는 생산성(productivity)의 변천에 따라 제국의 흥망성쇠가 결정돼 왔다는 것이다.
제국의 현재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세 가지 변동 주기(cycle), 1) 화폐와 부채, 자본시장, 경제 사이클, 2) 국가 내부의 질서, 3) 국제적인 질서이다. 국가에도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성장과 번영기를 거쳐 최고의 정점을 지나 쇠퇴하는 생로병사의 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이런 주기가 절정기를 넘어 쇠퇴기의 70-80% 수준에 가 있다고 진단했다.
레이 달리오는 국가의 생로병사를 좌우하는 요인으로서 1) 교육 2) 혁신과 기술 3) 비용 경쟁력 4) 경제적 산출 규모 5) 무역 규모 6) 군사력 7) 자본시장 규모 8)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꼽았다. 또 부가적인 결정요인으로 1) 자원 2) 자원 배분의 효율 3) 자연재해 4) 국가기간망과 투자 5) 국민성 6) 거버넌스 7) 부와 가치관, 권력의 격차를 꼽았다.
달리오는 15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한 제국의 상대적 경쟁력은 미국이 0.87, 중국이 0.75로 아직 미국이 앞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중국의 구매력(PPP) 기준 경제 규모는 지난 2014년 이미 미국을 추월한 상황, 군사력과 자본시장, 기축통화 측면을 제외하고 많은 부분에서 중국의 핵심 경쟁력은 미국을 앞선 것으로 진단했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 중국의 상대적 경쟁력 변화 추이

레이 달리오는 통화 남발과 비생산적 부분으로의 자원 집중, 빈부 격차의 확대와 사회적 갈등이 미국의 국내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대국의 쇠퇴는 부와 특권의 집중,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으로 심화하는데, 이 틈을 비집고 새로운 강대국이 패권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제국의 흥망성쇠는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패턴으로 어느 제국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 쇠락 시기를 좌우하는 것은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핵심 결정 요인들을 개선할 수 있는지에 좌우된다.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외교, 기술, 금융 분야의 전쟁 상황이 진검승부로 과거 냉전 시대 소련의 붕괴처럼 어느 한쪽이 굴복할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쌍방의 엄청난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중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선언한 타이완의 독립 문제 같은 핵심 이익을 둘러싸고 무력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간의 갈등,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등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은 경제적인 붐과 버블붕괴, 사회적 갈등 격화에 이어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 발생한 1900년대 초와 유사하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만이 핵폭탄을 가지고 있었던 2차 대전 당시와 달리 여러 나라가 핵을 보유한 지금이 훨씬 위험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20세기 들어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중단하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역사는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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