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친절한 경제] 주 69시간 유연하게 근로, 정작 다른 게 유연해지면 어쩌나

<앵커>

친절한 경제 시간입니다. 오늘(7일)도 권애리 기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 정말 이 이야기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제 정부가 노동시간 개편안을 확정해서 발표를 했는데, 그러니까 주당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것을 좀 늘리겠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인 것 같아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근로시간의 총량을 늘리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유연화입니다.

일할 때 몰아서 일하고 쉴 때 몰아서 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간략하게만 정리해보면, 지금은 한 주에 최장 12시간까지만 연장 근로를 할 수 있죠.

업종에 따라 예외가 있지만, 전체적인 원칙은 그렇습니다.

개편안은 연장 근로시간을 이렇게 저렇게 배분할 수 있는 단위를 한 달, 석 달, 반년, 1년까지 늘리겠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긴 시간 단위를 선택할수록 연장 근로시간의 총량이 조금씩 줄어들게 설계했습니다.

이를테면 1년 단위를 선택하는 사업장이다, 지금은 매주 12시간씩 1년 동안 625시간까지 연장 근무할 수 있는데요.

개편안은 이 연장 근로를 특정 기간에 몰아서 많이 할 수 있는 대신 625시간의 70%인 연간 440시간까지만 연장 근로가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몰아서 일하기가 장시간 과로하기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입니다.

그렇다고 한 주에 100시간씩 몰아서 일하고 이렇게까지는 안 되고요.

퇴근에서 그다음 출근까지 11시간의 간격이 보장된다면 주에 최대 69시간 이것을 보장하지 않으면 64시간까지입니다.

그러니까 밤새 일하고 아침에 퇴근해서 2시간만 눈 붙이고 다시 나오기 이런 것도 주 64시간만 지키면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 주에 하루이틀은 나오지 않아야 64시간을 겨우 맞출 수 있겠죠.

그러니까 주에 4일만 일하고 하루 쉬기, 또는 휴가를 몰아서 한 달도 쭉 쉬기 이런 것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방안입니다.

<앵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

네, 그렇습니다. 일단 기대는 한마디로 몰아서 쉬기에 대한 기대이겠죠.

2030 직장인들 702명 중에 82%가 근로시간 유연화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한 설문조사도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면 몰아서 일하는 대신에 한 주에 사흘만 일하기 이런 것이 된다면 유연화된 근로시간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려가 나오는 것은 먼저 이것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입니다.

내가 이번 달에 매주 64시간씩 일한다고 다음 달에 한 달 내내 자리를 비울 수 있을까, 만약 한 달 새 내 업무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은 누가 처리하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어제 나온 정부 발표안에는 없습니다.

대국민 캠페인 정도의 독려 계획만 나와있을 뿐입니다.

사실 어제 정부 발표에도 있었는데요.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휴일과 휴가 일수가 82일에서 92일 정도입니다.

국제적으로도 그 자체로는 적은 편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 연차의 80%도 채 다 쓰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나마 대체인력이 좀 있는 대기업은 어떻게 시스템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 그래도 인력이 빠듯한 중소기업이라면 어제 발표 이후로 유독 온라인에서 중소기업에서 이것이 되겠냐 반신반의하는 직장인들의 글이 많이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정작 유연 근로가 좀 더 적합할 직종보다 충분한 휴식을 언제든 보장해야 할 직종에서 악용될 가능성도 걱정해야 합니다.

잠깐의 피곤함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육체노동, 운전이나 공사 현장처럼 잠을 푹 자고 나오는 좋은 컨디션이 안전과 직결되는 업무들, 아무래도 중소기업에 더 몰려있는 이런 업무들에서 한꺼번에 긴 근로시간을 다시 당연시하게 될 때의 부작용도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우리에게 절박한 과제 중 하나인 저출산 문제에 있어서도 과연 이것이 보탬이 되는 방향인가, 갸우뚱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민/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 : 이미 출산율이 굉장히 낮아진 상태인데, 여기서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언제든 자기 시간을 회사에 투여할 수 있을 그런 '대기 상태'가 되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그러면서 동시에 출산과 육아를 같이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앵커>

생각할 부분들이 적잖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장 핵심적으로 좀 걱정되는 것은 기업들이 일을 계속 더 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거 아닙니까? 그것을 막으려면 유연 연장 근로에 대한 보상 체계가 어떤지가 영향을 줄 것 같은데, 이 대책은 좀 이따 나온다면서요?

<기자>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사실 이번 개편안의 현실성을 이야기하려면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할 부분이 사실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포괄임금제에 대한 것입니다.

정부가 어제 현행 포괄임금제는 오히려 공짜 야근을 부추기는 식으로 남용되는 점이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대안은 이달 안에 다시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공짜 야근이 없게 하겠다, 만약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나온다면 사업장들도 무조건 장시간 근로를 시키는 것이 결코 유리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려한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유연화에 그야말로 초점이 맞춰질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적절한 보상 체계 대안이 미흡하다면 어제 나온 발표까지 포함해서 더 큰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