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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것도 결국 평균이어라…'평균의 마음' [북적북적]

비범한 것도 결국 평균이어라…'평균의 마음'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72 : 비범한 것도 결국 평균이어라... '평균의 마음'
 
"아주 멀리서 오랫동안 인간을 관찰해 온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시니컬하게, 인간은 다 그래,라고 혼자 되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단지 인간적인 것들의 평균값이다. 비록 나의 삶이 허다한 아무나의 삶만큼이나 뻔하디 뻔하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은 이런 것이다. 광활한 시간의 평면 속에서 각각의 점들은 고윳값을 가지고 단 한 번만 어떤 위치에 나타나 찰나를 맴돌다 사라진다는 것. 우리 각자는 저마다의 원인과 목적을 가지고 저마다의 극단을 산다는 것. 그래서 다른 누구의 극단도 완전히 알지 못하고 저지할 수도 없다는 것. 나는 이것이 사랑스럽다."  

얼마 전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책 정리를 반강제적으로 하게 됐는데 들춰본 지가 이십 년은 넘은 듯한 책들까지 쏟아져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십 년이 지나더라도 보지 않겠다 싶은 책들을 정리했는데 정리하려다 만 책 중에는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부터 소련의 붕괴까지를 20세기로 규정하고 파국과 번영이 공존했던 이 시기를 '극단의 시대'로 명명했던 그 책을 읽던 게 20세기말인데 어느새 21세기도 20년 넘게 지났네요. 후세 사가들은 지금 이 시기는 뭐라고 부를지, 초극단의 시대나 극단의 시대 시즌2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챗GPT에게라도 물어봐야 할까요. 
 
극단보다는 평균이 마음이 놓이고 왠지 나와 가까운 것 같죠. 최신 트렌드나 신간보다는 고전에 더 끌리는 것과 비슷한 마음 같습니다. 예전에 읽었으나 가물가물한 좋은 책들을 쌓아놓고 하나씩 다시 펼쳐보고 싶다는 마음이 부쩍 드는 요즘, 그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고전 독서 에세이를 가져왔습니다. 이수은 작가의 <평균의 마음>입니다. 
 
"동시대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개성적 개인인 나를 확인하는 경험이고, 고전을 읽는 것은 보편성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적으로 공감하기도 나의 현실에 곧바로 적용하기도 어려운 내용들 속에서 인간의 항상성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고전이 주는 크나큰 위로고 기쁨이라고." 

멀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플라톤의 향연, 국가부터 종의 기원, 물리와 철학 등 70여 종의 고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각 책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식은 아니고 인용도 많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다루고 있냐. 
 
"평범성은 몰개성이 아니고 다수에 속하는 것이 늘 가장 평범한 것도 아니다. 바다는 수없이 많은 평범한 물결로 이루어지지만 모든 물결이 다 배를 밀어내는 파도가 되진 않는다. 때로는 어떤 작은 기이함, 못 보던 판자 하나가 완전히 새로운 해안으로 우리 모두를 이끌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보편적이라거나 극히 예외적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보편적이지도 예외적이지도 않을 수 있다. 아마도 이런 물음에 답하고 싶어서 나는 여태 고전을 붙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의 의미를 설명하고 살아가는 노고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해서, 인간인 내가 한사코 인간성을 긍정하려고,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에 기쁘게 의지하는 것이다." 

보편적이되 평범하고 평균적이지만은 않은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 고전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숱한 인류의 보물에 대한 감상과 촌평을 따라가다 보면 절로 원전을 읽고픈 마음이 샘솟습니다. 어려서 좀 많이 읽을 걸 하는 아쉬움도 더해지고요. 
 
"안토니오와 샤일록은 둘 다 부자다. 그런데 안토니오가 타인에 대한 자애로움의 발로로 돈을 빌려준다면, 샤일록에게 대부업은 경제적 풍요를 얻기 위한 이기적 수단이다. 당연히 안토니오의 관대함은 존경을 얻는 반면, 샤일록의 가혹한 이윤 추구는 원성을 산다... 안토니오가 베니스 상인으로 성공한 비결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꾸준히 안토니오에게 보여주는 친절과 선의와 지지는 그가 베푼 호의의 결실이다. 이에 맞서 샤일록에게는 수모를 견디며 이룬 부를 뻐기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선택지가 있었을까." 

예전에 읽을 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건의 발단이 된 안토니오의 친구 바사니오의 허세와 뻔뻔함을 알게 된 건 덤이고요, 대비되는 두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현재도 유효한 부의 딜레마를 근대적 관점으로 분석해 보는 해설이 퍽 재미납니다. 
 
"모든 현대인은 자기 삶에 대해서 얼마간은 돈키호테적이다. 한 치 앞을 모르면서 계획을 세우고, 이뤄지지 않을 무수한 헛꿈을 꾼다. 가끔 뭔가에 도전해 보지만, 조금 안 됐다고 금세 포기하거나, 이상한 데 꽂혀서 망할 때까지 버틴다. 돈키호테를 부정하는 것은 헛발질하는 자기 삶을 비판하는 것이고, 이것이 최악의 실패다. 어리석은 우리들과 달리, 돈키호테와 산초는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돌본다. 실성한 돈키호테보다는 맨 정신인 산초 입장이 더 자주 고달프긴 하지만, 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제목은 '평균의 마음'입니다. 고전을 읽는 게 보편성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라면, 평균이 의미하는 게 꼭 획일성과 균질함, 몰개성은 아니라는 것, 다수라고 해서 항상 가장 평범하고 평균인 것도 아닙니다. 극단값이 두드러져 평균이 오히려 극단을 감출 수 있는 걸 보면 현대인은 오히려 개별적으로 각각 극단적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종종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보면 그런 특이점 또한 평균을 이루는 것이겠죠.   
 
"나에게 <레미제라블>의 잊을 수 없는 한 문장은 늘 이것이다. "부분에 대한 전체의 전쟁은 반란이요, 전체에 대한 부분의 전쟁은 폭동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개인의 이익과 목적을 뛰어넘어 자신이 속한 종 전체에 가장 이로운 선택을 할 때, 이 위대한 힘이야말로 '평균의 특이점'이다. 눈에 띄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입자에 불과한 개인들이 순수한 의지로 중심을 향해 응집할 때, 그 에너지를 막을 권력은 세상에 없다." 

*출판사 메멘토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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