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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구 살 일 없어도 '가구 담합 수사' 중요한 이유

검찰 '가구 담합' 수사에 공정위 촉각…이유는?

친형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습니다. 이른바 '로또 청약'은 아니더라도 생애 첫 내 집을 갖게 됐으니 온 가족이 축하할 일입니다. 모델하우스에 다녀온 형은 "집이 너무 좋다"며 기뻐합니다. 어린 조카를 비롯해 형의 가족이 새 집에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형의 표정이 밝지 만은 않습니다. 청약이 당첨됐지만 당장 집값을 치르려면 그야말로 '영끌' 하다시피 돈을 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시장은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데 새 집 분양가는 아직 너무 비쌉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는 둔촌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 포레온)의 전용 면적 59㎡ 분양가는 10억, 84㎡는 12억 원 대입니다. 역시 최근 분양을 마감한 '마포더클래시'는 84㎡가 14억 원이 넘습니다. 서울 대단지 새 아파트라고 해도 너무 올랐습니다.

새 아파트값이 비싼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큰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국제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이 새 아파트값에도 영향을 미쳤단 겁니다. 실제 건설 분야 물가지수인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12월 121.80에서 2022년 12월 148.60로 최근 2년 동안 22% 올랐습니다. 재료값이 올라가니 완성품의 가격도 올라갈 수밖에요.

시멘트, 철근 같은 원자재는 아니지만 아파트에 들어가는 '빌트인 가구'도 아파트 만드는 재료에 포함됩니다. 흔히 말하는 '붙박이장' 같은 가구죠.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즘 건설사들은 새 집에 빌트인 가구를 많이 집어넣는 추셉니다. 시장에선 아파트에 대규모로 공급하는 빌트인 가구를 '특판 가구'라고 부릅니다. 시장 규모도 꽤 큽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가구업계 1위 한샘의 지난해 매출은 2조가 넘고 2위 현대리바트는 1조 5천억 원에 조금 못 미쳤습니다.
 

검찰, '빌트인' 가구 담합 수사…"고분양가 원인"


검찰

가구 이야기를 꺼낸 건 검찰이 새해 벽두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가구 담합 사건' 수사 때문입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이정섭 부장검사)는 지난달 가구 업계 1, 2위 한샘과 현대리바트 등 유명 가구업체 등을 대상으로 강제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가구업체 관계자들을 줄줄이 부른 데 이어 2월 첫날에는 한샘과 현대리바트, 에넥스, 넥시스 등 가구업체 10여 곳을 대거 압수수색했습니다. 규모도 상당하고 속도도 빠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검찰은 가구 담합 사건이 단순히 가구업체끼리 짬짜미 차원을 넘어 국민의 주거비용에 부담을 끼친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담합으로 가구 가격이 올라가면 건설사 이익이 줄어드니까, 건설사는 분양가를 올리고 최종적으로는 집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거죠. 가뜩이나 비싼 집값에 국민들만 피해를 보게 되는 겁니다. 담합 의혹을 받는 가구 회사와 관계자들이 처벌을 받는다고 해서 당장 집값이 내려가진 않겠지만, 사회적으로 반드시 없어져야 할 관행인 건 맞습니다. 일반 국민들에게도 이 사건 수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수사 결과에 공정위 촉각…"담합 사건 주도권 달려"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가구 담합 사건 수사가 중요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이번 수사에 '담합 사건'에 대한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사이 주도권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은 사실상 검찰이 이른바 자진신고 담합 사건에 대해 공정위 고발 없이 먼저 수사하는 첫 사건입니다. 보통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선 '전속고발제'에 따라 공정위 고발이 있고 나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왔습니다. 이번 사건에선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검찰이 선제적으로 수사에 착수했고, 공정위 고발 요청을 앞두고 있습니다.

검찰은 먼저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가구 회사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거나 공정한 가격 결정을 방해할 목적으로 입찰자가 서로 공모하여 미리 조작한 가격으로 입찰한 자'를 처벌할 수 있게 한 건설산업기본법 95조입니다. 그렇게 수사를 하다 보니 공정거래법 위반으로도 처벌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단 겁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도 적용할 방침입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5월, 공정위와 검찰 양쪽으로 자진신고가 들어온 사안입니다. 공정위는 지난 1997년 리니언시, 즉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에 따라 담합을 자진신고한 경우 처벌 수위를 일정 수준 감면해주고 있습니다. 예전까진 공정위만 이 제도를 운용했기에 자연히 담합 사건 자진신고는 공정위로만 몰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2020년 1월부터 검찰도 형사 리니언시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검 예규 '카르텔 사건 형벌감면 및 수사절차에 관한 지침'을 통해서입니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하고 수사에 협조한 한 기업이 검찰에서 처음으로 기소 면제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요즘 담합 자진신고는 공정위와 검찰 양쪽으로 들어가는 추세입니다. 이번 사건도 그런 경우입니다.

가구 담합 사건의 경우 검찰이 약 8달 동안 공정위 조사를 기다리다가, 먼저 치고 들어간 모양새입니다. 기관의 성격과 규모에 따른 차이를 감안해야겠지만, 검찰 수사에 비하면 공정위 조사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립니다. 담합 사건은 아니지만, 한 유명 위스키 업체의 불법 리베이트 사건을 공정위가 5년 가까이 처분하지 않은 사실이 SBS 보도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 [단독] 위스키 회사 '불법 리베이트' 5년 뭉갠 공정위 

반면 이번 사건에서 검찰 수사 속도는 굉장히 빠릅니다. 앞서 말한 대로 1월에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 검찰은 조만간 결론을 내고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할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강제 수사에 착수한 지 약 2달 만입니다. 공정위가 8달 동안 잡고 있던 사건이란 걸 감안하면 '비교 불가'에 가까운 속도입니다.
 

예민한 공정위…"기업 사건은 전문성 중요"


공정위

이렇다 보니 공정위는 사건의 향배에 노심초사하는 분위깁니다. 가뜩이나 형사 리니언시 도입으로 전속고발권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나오는 판국에 검찰이 신속하게,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 담합 사건에 대한 주도권을 확 잃어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공정위는 최근 이번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검찰에 협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엇을 협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만큼 이번 사건에 관심이 많다는 방증입니다.

그동안 공정위는 담합 사건에 대해 독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속고발권과 리니언시 등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사건을 붙잡아 둘 수 있었고 처분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죠. 부차적인 이야기지만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법률시장에선 공정위 출신 전관의 몸값도 점점 높아진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지난해 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김앤장 경제부처 관료 이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에서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이직한 14명의 평균 연봉은 5천472만 원에서 3억3천456만 원으로 6.1배 뛰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 등을 계기로 담합 사건 자진신고가 공정위가 아닌 검찰로 쏠린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주도권을 잃어버릴뿐더러 검찰과 경쟁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1997년 리니언시 도입 이후 26년간 쌓아온 노하우와 시스템이 어그러질 수 있다고 공정위 관계자들은 우려합니다. 한 공정위 직원은 "기업 사건은 단순히 형사적 관점으로 접근해선 안 되고 경제적 효과 등을 감안해 세밀하게 처리해야 한다. 공정위가 수십 년간 쌓아온 역량과 노하우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공정위 간부는 지난해 세계적인 경쟁법 전문저널인 '글로벌 컴피티션 리뷰(GCR)'에서 우리 공정위가 '매우 우수(Very good)' 등급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검찰은 자신만만한 분위기입니다. 그동안 기업 수사로 쌓아온 역량과 전문성은 공정위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게 검찰의 이야깁니다. 더군다나 이번 가구 담합 사건 같은 '경성 담합(hard-core cartel)'은 공정위 말처럼 경제적 효과 등을 세밀하게 따질 분야가 아니라는 말도 합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가구 담합 사건의 경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크고 경쟁 제한적 효과도 뚜렷하기 때문에 세세한 경제적 효과 분석 필요 없이 무조건 처벌이 가능한 범죄"라고 말했습니다.
 

전속고발권 무력화 우려도…결국 중요한 건


한편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때 내세운 '전속고발권 유지' 공약이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한때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했던 윤 대통령은 재계 반발 등을 이유로 최종 대선 공약에는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되 보완하자는 쪽으로 반영했습니다. 최근의 흐름은 그 '보완'이 이뤄지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가뜩이나 검찰권이 강화되는 듯한 흐름에 기름을 쏟아붓는 격이라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다만 이번 사건이 공정위의 '주도권'을 좌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공정위의 '업보'도 있습니다. 그동안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등 독점적 권한을 지니고도 유독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는 솜방망이를 휘두른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기업의 불법행위를 적발하더라도 사주나 임원 등 개인에 대해선 고발하지 않아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불법 리베이트 같은 불공정행위를 신고받고도 5년 동안 처분하지 않는 등 사건을 질질 끄는 사례도 오래전부터 비판받아온 관행입니다. 그 사이 공정위 출신 전관의 몸값은 나날이 높아졌습니다.

이런저런 우려가 있습니다만 결국 일반 국민 입장에서 중요한 건 '검찰이냐 공정위냐'가 아니라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일 겁니다. 국가 기관이 담합 같은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처벌하는 건 결국 국민의 삶에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공정위든 검찰이든, 담합이나 불법 리베이트 매섭게 때려잡아 집값 싸지고 물건값 덜 오르면 일반 국민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국가 권력이 이들 기관에 막대한 권한을 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붙박이장이나 연상되던 가구 담합 사건 수사 결과가 중요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가구 회사 처벌한다고 해서 당장 집값이 내려가진 않겠지만, 굳어 있던 관행이 깨지는 건 사회 전체적으로나 국민 생활에 있어서나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관행이 깨지면 변화로 이어질 것이고 그 변화는 내 삶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장기적으로는 집값 싸지고 물건값도 덜 오르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을 수 있겠죠. 중요한 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경쟁하고 감시하는 겁니다. 가구 살 일 당장 없더라도, 이번 가구 담합 수사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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