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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베트남 개발자는 국내 개발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

"전 직장 연봉의 30%, 많게는 두 배 넘게 부르니까 뽑기가 어렵더라고요."

메타버스 신사업을 준비하는 중소업체 파울러스는 지난해 개발자 채용에 애를 먹었습니다. 올해 3월을 서비스 런칭을 목표로 필요한 개발자는 10년차 이상 팀장 급 한 명과 4~5년 차 개발자 3명. 하지만 치솟은 개발자 몸값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개발자 사이에서 유명한 중소업체가 아닌 탓에 지원자도 많지 않았지만 대기업 출신 중고급 개발자들은 중소업체의 미래와 함께해야 하는 리스크를 감안해 전 직장 연봉의 30%, 최대 두 배 넘는 금액을 불렀습니다. 무작정 개발자 눈높이를 낮추기는 어렵고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느껴지면서 개발자 자리는 5개월간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해외 개발자 중개서비스를 통해 11년차 베트남 개발자를 만났습니다. 중개업체의 까다로운 검증을 통과한 이 개발자는 인터뷰를 거친 뒤 흔쾌히 프로젝트 참여 의사를 밝혔고 최고 기술 책임자(CTO)급 지위를 부여 받았습니다. 직접 고용이 아닌 서비스를 제공받는 용역 계약에 베트남 현지에서 원격으로 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후 이 CTO는 직접 개발자 중개업체가 가진 인재 풀 안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며 팀원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베트남 국적 3명, 인도 5명, 튀르키예 1명, 파키스탄 1명 등 총 10명의 외국인 개발자가 이 중소업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이 업체 개발자의 전부입니다. 10명 중 7명이 5년차 이상 경력의 중고급 개발자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정준호 취파_베트남 개발자_사진1

"업무 만족도 높아"

우려와 달리 파울러스 측은 현재 개발자들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정경일 파울러스 CDO는 "조금 빡빡해 보이는 일정을 제시해도 제 시간에 제출하고 있고 결과도 만족스럽다"라며 "특히 CTO 역할의 베트남 개발자가 업무 조율과 타 개발자 관리에 능숙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프로젝트의 성과가 재계약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개발자들도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통은 영어로 합니다. 영어에 능통한 직원들이 개발자들과 수시로 화상회의를 진행합니다. 다른 직원들은 채팅, 이메일로 개발자들과 직접 피드백을 주고받습니다. 어려운 표현은 실시간으로 통번역해주는 도구를 적극 활용해 전달합니다. 메일을 남겨도 수 분 내 피드백이 오고 있어 운영한 지 5개월이 넘었지만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업체의 설명입니다. 프로젝트 막바지인 요즘 이 회사는 서비스 유지 보수를 위해 현재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재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CTO를 중심으로 필요한 인원을 조율할 계획입니다. 국내 중고급 개발자의 인건비를 맞추기 어려워 전전긍긍했던 이 업체는 현재 외국인 개발자 활용으로 예상 비용의 최대 절반 가량을 절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정준호 취파_베트남 개발자_사진2

어떻게 가능했나

언뜻 작동할까 싶은 해외 원격 근무를 가능케 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일반화한 재택 근무 문화 덕입니다. 장소가 어디든 업무 성과가 중시되는 문화가 번졌고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해외에서의 원격 근무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면서 다시 사무실 출근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집에서 최적화된 작업환경을 만든 개발자들은 지금도 재택 유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말과 글이 영어로 실시간으로 바꿔주는 도구들이 발달하면서 언어의 장벽도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국내 못지 않은 개발자들의 실력과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입니다. 개발자들의 코딩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해커랭커(HackeRank)에 따르면 국가별 코딩 챌린지에서 국내 개발자의 순위가 22위(81.7점)인데 베트남은 바로 뒤인 23위(81.1점)입니다. 튀르키예(30위, 77.5점)와 인도(31위, 76점) 역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이 1위(100점), 러시아가 2위(99.9점)입니다. 오픈 서베이와 베트남 IT마켓 리포트(TOPDev)에 따르면 3년 미만 경력의 한국인 개발자의 연봉이 4,300만 원인 반면 2~4년차 베트남 개발자의 임금(810만~1,800만 원)은 절반 수준입니다. 해외 개발자 중개업체 슈퍼코더 최재웅 대표는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아지면서 글로벌 개발자들의 실력이 점점 상향 평준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인도와 베트남 개발자들의 수요가 커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이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속도는 다른 국가보다 더 가파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준호 취파_베트남 개발자_사진3

소통과 융화는 장벽

물론 모든 업체들이 당장 외국인 개발자와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파울러스 외에도 해외 개발자 10명과 원격으로 일하고 있는 A 업체와 최근 파키스탄 개발자를 고용한 초기 스타트업 B 업체 등은 모두 업체 대표가 영어에 능통하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통번역 도구가 발달했다고 해도 원활한 소통을 위해선 최소 한 명 이상 영어에 능통한 직원은 필요한 셈입니다. 파울러스와 달리 A, B업체의 최고 기술 책임자(CTO)는 한국인입니다. 개발의 큰 설계와 기획, 검수는 한국에서 하고 해외 개발자들은 실무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 현재로선 보편적입니다.

기존 팀원들과의 융화도 고려해야 합니다. 외국인 개발자 채용에 나섰다가 결국 선택하지 않은 업체들 상당수는 한국인 팀장 급 개발자가 반대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영어 소통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같은 팀 한국인 개발자와의 협업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판단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드문 일이지만 무슬림 개발자의 경우 특정 시간에 기도하는 시간을 배려해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내 개발자와 일할 때 생각하지도 않았을 크고 작은 이슈들이 있는 데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훨씬 커지기 때문에 선택에 신중해 지는 것입니다.
 

기업은 언제나 최대 효율을 원한다

리포트가 나간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개발자조차도 관리가 어려운데 문화적 차이, 업무에 대한 태도, 유지 보수,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 등 걱정할 부분이 많다는 의견입니다. 소통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시간 등을 감안하면 아무리 외국인 개발자들에 드는 비용이 적더라도 국내 개발자를 택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미 과거에 도입됐지만 실패한 모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반면, 실제 같이 일해보니 성과가 괜찮았고 그동안 국내 개발자의 인건비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의견도 적지 않았습니다.

논쟁의 저변에는 국내 개발자의 임금과 일자리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저임금의 동남아 개발자의 효용이 확인되고 국내 IT산업에 점점 스며들게 되면 숙련도가 낮은 개발자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도 수요가 크지 않은 1년 미만의 코딩 교육을 받은 비전공자들이 외국인 개발자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국내 중고급 개발자의 임금 상승 속도도 둔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임금 등의 이유로 국내 인력을 쓸 수 없게 된 제조업과 농업 현장에서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는 지금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고학력 노동자란 차이가 있지만 IT 업계에서도 수요와 공급의 경제 논리는 유효합니다. 정보 기술의 발달도 점점 해외 원격 노동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중소업체뿐 아니라 삼성 SDS, LG CNS 등 대기업들이 베트남, 인도 등에 해외 개발자 센터를 만들고 현지 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기업은 언제나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원합니다. 투자 업계 찬바람이 불면서 다소 완화되고 있지만 최근 수년간 소위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쏠림 현상으로 개발자들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채용난에 시달리는 중소업체들의 근심이 깊었습니다. 개발자 채용에 애를 먹는 시간만큼 소모될 비용과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감수하면서 저임금 외국인 개발자를 활용해서 얻을 이익. 저울질과 실행은 기업들의 몫입니다. 고금리 시대 비용을 절감해야 할 이유가 커진 요즘, 기업들 사이에서 동남아 개발자가 IT 인력 시장에서 어떤 변수가 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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