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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보험사에서 흘러나간 내 개인정보

보험왕 탈세에 동원된 내 개인정보…관리 '허술'

[취재파일] 보험사에서 흘러나간 내 개인정보

"나도 모르는 사이 2천만 원 소득 신고가?"


지난해 5월 20대 여성 A 씨는 세무서로부터 우편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연말정산 환급금이 발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소득 신고 내역을 본 A 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2,390만 원이라는 알지 못하는 소득이 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아르바이트를 간간히 하긴 했지만 이 정도 수입은 아니었고, 소득 신고자도 전혀 모르는 B 씨로 돼있었습니다. 살펴보니 아예 일을 한 적이 없던 2020년에도 2,380만 원이라는 소득이 똑같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A 씨는 곧장 세무서에 전화해 어떤 소득인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보험업 일을 한 게 아니냐, 업종이 보험으로 돼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공교롭게 A 씨의 어머니가 보험 설계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과 관련된 일인가 싶어 회사에 문의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B 씨는 같은 보험사 소속 설계사였습니다. 하지만 A 씨의 어머니는 다른 지역, 다른 지점 소속으로 일면식도 없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김보미 취파_보험 개인정보 유출

[8뉴스] 본 적 없는 '소득 2천만 원'…탈세 도용 수사

보험 가입 정보 빼돌려 직원으로 허위 등록


결론부터 말하자면, A 씨는 개인정보를 도용 당했습니다. 도용 당한 정보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2020년도부터 2년 간 설계사 B씨의 개인 직원으로 등록돼 있었던 겁니다. B 씨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련된 일을 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어떻게 개인정보가 유출됐을까요? 바로 보험 가입 정보를 통해서였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A 씨의 어머니도 같은 보험사 설계사입니다. 통상적으로 설계사들은 실적을 위해 가족들을 본인의 보험 상품에 가입시키곤 하죠. 따라서 A 씨도 보험사의 고객이었던 겁니다. 그러니 A 씨의 보험 가입 정보, 즉 개인정보가 전산에 다 올라가 있었던 것이죠.

그럼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직원으로 등록했던 것일까요? B 씨는 실적이 좋아 높은 소득을 올리는 이른바 '보험왕'에 속합니다. 알 사람들은 다 안다지만, 고액연봉 설계사들은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쓰기도 합니다. B 씨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세무 자료를 떼어보니, B 씨 아래 A 씨 말고도 다른 20대 청년 등 5명이 더 등록돼 있었습니다. 똑같이 연간 2,300만 원씩 받은 것으로 처리돼 있었죠. 이른바 '세금 알바'인 겁니다. 서류상 직원으로 등록 시켜놓고 월급을 준 것처럼 꾸며 비용처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나머지 청년들도 A 씨처럼 동의 없이 등록됐는지 여부는 조사가 이뤄져야 할 부분입니다.

A 씨 측은 A 씨 어머니 소속 지점의 전산 담당 직원이 A 씨의 정보를 B 씨에게 넘겼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소득 신고가 시작됐던 2020년에 전산 담당 직원이 A 씨 측에게 국가에서 지원금을 준다며 국세청에서 세무 대리 수임 동의를 요청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전산 직원은 설계사들과 달리 해당 지점의 모든 고객 정보를 들여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산 직원은 A 씨 측에게 '세금 알바'라고 소개한 후 동의를 구했고 개인정보를 빼돌린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울남대문경찰서는 이번 달 초 B 씨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송치, 전산 직원은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전산 직원이 정말 개인정보를 빼돌린 정황이 없는지 재수사 지시를 하며 경찰은 다시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수사 상황을 지켜봐야겠습니다.
김보미 취파_보험 개인정보 유출 2

허술한 고객 정보 관리…"일률적인 가이드라인 필요"


보험 가입 정보는 상당한 민감한 개인 정보에 해당합니다. 인적 사항과 계좌번호 등 금융 정보는 물론 어떤 병을 앓았는 지까지 다 들어갑니다. 심지어 콜센터 상담 내용도 기록됩니다. 그러니 보안이 중요한 건 두 말하면 입 아프죠.

당연히 보험사도 개인정보 보호 필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가 된 해당 보험사는 "개인 간의 문제로 보험사의 시스템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일부 맞는 말입니다. 과거엔 보험 설계사들도 전산을 통해 고객 정보를 전부 볼 수 있었지만, 일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들이 발생하자 이제는 본인 고객에 한해서만 제한적인 정보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구멍은 있습니다. 한 현직 설계사는 "여전히 개인정보 관리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보통 총무가 사용하는 대표 전산에는 모든 고객정보가 고스란히 나와있는데, 친한 설계사가 물어보면 알려주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DB 판매', 즉 보험 고객 정보를 동의 없이 불법 판매하는 행위도 지금까지 이뤄지고 있다"며 "사실은 대리점끼리는 다 DB 싸움이기 때문에 고객 정보를 뿌리고 사고파는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지 쉽게 고객의 동의 없이 정보가 오고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금융감독원이나 개인정보위원회 등에선 문제가 생겼을 시에 신용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과태료 처분 등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뭐 할까요. 보험사나 보험판매 대리점에서 고객 개인정보를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일률적인 가이드라인이 먼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알 사람은 다 아는 잘못된 관행들

보험대리점

사실 보험 설계사들의 세금 탈루 행위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도 결국 세금을 줄이려다가 개인정보유출 범죄로 이어진 것이죠. 한 현직 설계사는 "리쿠르팅을 통해 고소득자의 계약을 쪼개는 방식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현재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에서도 꽤 규모가 있는 법인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를 같은 내용으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대리점 대표가 직원의 가족에게 설계사 자격증을 따도록 부탁한 뒤에 그 가족의 이름으로 계약해 본인이 수수료를 챙겼다는 혐의를 받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면 보험사들은 '개인의 일탈'이라며 선을 긋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우리 지점뿐만 아니라 다른 지점에서도 일어나는 일", "고소득자의 세금 탈루를 위해서 세무사까지 동원해 회사 차원에서 봐주기도 한다" 등 조직의 암묵적인 협조가 있다고들 말합니다. 이렇듯 차명 설계사, 경유 계약 문제, 세금 탈루 행위 등 보험업계에서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행위들은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치기 마련입니다.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자세, 더 탈 나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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