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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순신 검증은 법무부가, 사과는 경찰이?

언론 보도까지 나왔는데…정순신 '부실 검증' 논란

[취재파일] 정순신 검증은 법무부가, 사과는 경찰이?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는 가히 '인사 참사'라 할 만하다. 임명 하루 만에, 그것도 아들의 학교폭력 가해 논란이라는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나게 됐으니 말이다. 그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빨리 물러났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당사자인 경찰도 해명을 했지만 변명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본인 일이 아니고, 자녀와 관련된 사생활이어서, 검증 과정에서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충분히 알아보지 못하고 추천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내용인데, 자녀 관련 사생활로 물러난 공직자가 한둘이던가. 굳이 사례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자녀 관련 사생활'은 최근 공직자 검증의 가장 중요한 항목 가운데 하나가 된 지 오래다.
 

"드릴 말씀 없다"던 경찰…약 1시간 후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경찰이 처음부터 "안타깝다"고 사과했던 건 아니다. 정순신 변호사가 사의 표명을 한 게 어제(25일) 오후 3시쯤. 경찰은 약 40여 분이 지난 뒤 인사 검증에 대한 기자 질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그런데 약 1시간 10분 정도 후 다시 장문의 입장문을 내고 "검증에 한계가 있었다"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오전만 해도 경찰 내부 분위기는 달랐다. 본인들은 심사위원회를 열어 후보를 압축, 추천만 했을 뿐 검증은 다른 데서 했다는 설명이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자, 특히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 검증은 통상적으로 법무부 인사검증단에서 수행한다. 그러나 경찰은 법무부가 검증했다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저녁쯤 다시 이뤄진 기자단 질의응답에서도 경찰은 "인사 검증의 절차, 범위, 과정 등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해 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법무부 "검증 여부조차 확인해 줄 수 없다"…경찰이 대신 사과?

법무부 이명박, 김경수 연말특사 심사

정작 법무부는 검증 여부와 책임을 묻는 질문에 "검증이 있었는지 자체를 확인해 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국가수사본부장 후보가 인사 검증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조차 일체 확인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무부 인사검증단 구조가 일정 직급 이상이면 무조건 검증한다, 이렇게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개별 건마다 대통령실의 의뢰가 있으면 1차적인, 형식적, 기계적 검증을 진행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개별 사안에 대한 검증 여부를 확인해 드리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설치 당시 법무부가 설명한 내용과 상당 부분 배치된다. 지난해 5월, 인사정보관리단 설치를 놓고 야권을 중심으로 법무부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법무부는 A4용지 3쪽 분량의 설명자료를 내고 설치 취지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면서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담당하던 인사 검증 기능을 다수 기관에 분산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특히 '음지'에 있던 인사검증 업무를 '양지'로 끌어낸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대로 옮겨본다.
 
○ '음지'에 있던 인사검증 업무를 '양지'로 끌어내 투명성을 높이고, 감시가 가능한 통상의 시스템 하에 두는 것임. 그동안 '질문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던 인사검증 업무를, '질문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재배치하는 조치임
- (2022.5.25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설치 관련 설명자료' 1쪽)


"그동안 '질문할 수 없었던 영역'이던 인사검증 업무를 '질문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재배치"한다는 설명은 이번 경우에는 왜 적용할 수 없는 것일까? 혹시 검증 부실에 대한 비판이 예상되자 "검증 여부조차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질문 자체를 차단하고 인사 검증 업무를 여전히 '밀실의 영역'에 남겨둔 것은 아닌가. 야권과 경찰 내부 일각에서는 경찰이 대통령실과 법무부 눈치에 밀려 억지 사과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질문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재배치한다더니…

인사정보관리단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 검증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1차적으로 수행한다는 통상적인 사실은 같은 설명 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자료 2쪽, '□ 법무부가 인사검증을 '전담'하는 것인지' 부분에 따르면 '법무부는 '1차' 인사검증 실무를 담당하는 것에 불과하며 법무부가 인사검증을 전담하는 것이 아님', '※ '법무부의 1차 인사검증'과 이후 '대통령실의 최종적인 인사검증'을 통해 인사검증이 진행됨.'이라고 기재했다. 또 지난해 6월 시행된 대통령령 '공직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 10조 2항(권한의 위탁) 부분에서는 법무부가 인사혁신처장으로부터 대통령이 임명, 위촉하는 직위 등 (공직후보자)의 정보의 수집, 관리 권한을 위탁받는다고 나와 있다. 정리하면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1차 인사 검증을 맡고 대통령실이 최종적인 인사 검증을 진행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검증 여부 자체가 확인이 어렵다는 법무부 답변은 자가당착에 가깝다. 만약 법무부가 실제 인사검증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10만 경찰의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대한 기본적인 검증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참혹한 부실 검증…"양지로 나와야"

정 변호사에 대한 이번 인사 검증은 참혹한 수준이다. 이미 5년 전 언론 보도까지 나왔던 일이다, 당시 실명은 거론되지 않았지만 법조계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고 한다. 이듬해에는 대법원 판결로 법정 다툼까지 모두 마무리됐다. 임명 다음 날도 아닌 당일 저녁, 보도가 나왔고 이윽고 국회를 통해 판결문까지 모두 공개됐다. 임명 하루 만에 전 국민이 알게 된 셈이다. 이 정도면 실력이 부족하거나 인식의 오류가 있거나 둘 중 하나다.

현 정권, 특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왕장관', '소통령'이란 비판까지 들어가며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한 건 과거 밀실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직자 인사 검증 관행을 끊어내겠단 취지였다. 실제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보안, 기밀, 대통령의 인사권이라는 등의 이유로 인사 검증 관련 내용을 언론에 잘 확인해주지 않았다. 지금 법무부가 했듯이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일견 이해는 간다. 과거 민정수석실이 하던 일을 이어서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음지'에 있던 인사 검증 업무를 '양지'로 끌어내 투명성을 높인다"는 건 지금 법무부 스스로 밝힌 말이었다. 인사 검증을 "감시 가능한 통상의 시스템 하"에 두고 "인사검증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겠다는 목적과 함께였다. 그렇다면 욕먹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번 인선은 자녀 학폭 논란 전부터도 여러 뒷말을 낳았다. 법무부 말마따나 양지로 끌어내고 투명성을 강화해야 발전과 개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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