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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푸틴 "에델바이스는 히틀러의 흔적", 팩트체크 해보니…

[사실은] 푸틴 "에델바이스는 히틀러의 흔적", 팩트체크 해보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이 됐습니다. 명분 없는 전쟁에 민간인 사망자는 유엔 통계 기준 최소 8천6백 명이 넘었습니다. 출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과 유럽, 러시아와 중국의 신 냉전 구도도 격화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최근 국정 연설에서 미국과의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참여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연설에서 푸틴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 가운데 하나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권이 '나치즘의 계승자'인데, 미국과 유럽을 위시한 서구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우크라이나의 '에델바이스' 부대를 언급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최근 우크라이나군 중 한 여단의 이름이 '에델바이스'였다. 이는 유대인 추방, 전쟁 포로 처형,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체코슬라비아, 그리스 유격대에 대한 징벌 작전에 참여했던 히틀러 정권 당시 부대 이름과 똑같다. 신나치주의자들은 자신이 누구를 계승했다고 생각하는지 숨기지 않는다. 서구에서 아무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 러시아 푸틴 대통령, 지난 21일 국정연설

즉, 우크라이나 에델바이스 부대의 이름이 히틀러 정권 당시 악명을 떨친 부대인 에델바이스와 같은 이름이라는 겁니다. 앞서 러시아 외교부 공식 트위터는 독일 에델바이스 부대와 우크라이나 에델바이스 부대 사진을 나란히 게시하며 홍보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 푸틴 에델바이스 사실은 이경원

외신들도 우크라이나 에델바이스 부대에 대한 팩트체크를 이어가고 있는데, 저희도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봤습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이 검증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 푸틴 에델바이스 사실은 이경원

먼저, 우크라이나 정부가 '에델바이스'라는 명칭을 부여한 부대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4일 , 육군 제10산악돌격여단을 '에델바이스'로 명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령 제80/2023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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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치 독일에 에델바이스 부대가 있었을까요. 사실입니다. 험난한 지형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산악 부대(Gebirgstruppe)가 에델바이스라는 명칭과 함께 악명을 떨쳤습니다. 부대 휘장도 에델바이스 표식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탈리아와 알바니아, 그리스 등에서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전쟁 이후, 부대 책임자였던 루드비히 퀴블러는 전쟁 범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습니다. 특히, 제1산악사단의 만행을 기록한 헤르만 마이어의 저서 <피로 물든 에델바이스>는 나치 에델바이스 부대의 만행을 뒷받침하는 자료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 푸틴 에델바이스 사실은 이경원
나치 독일의 에델바이스 부대 사진. 독일연방기록보관소 소장.

결국, 쟁점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붙인 '에델바이스'라는 명칭과 나치의 '에델바이스'와의 연관성입니다. 에델바이스라는 명칭이, 정말 나치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외신들은 에델바이스라는 명칭이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BBC는 "알파인 지역에서 자라는 에델바이스 꽃은 크로아티아 산악 구조대, 스위스와 폴란드를 비롯한 다른 유럽 산악 부대의 상징으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고 썼습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에델바이스 특수부대가 있었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러시아 대통령 직속 근위대(Росгвардия) 가운데 제17부대는 2016년까지 '에델바이스'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던 러시아 근위대 홈페이지는 현재 비공개 상태로 전환됐습니다.

SBS 사실은팀은 유럽에서 에델바이스가 오히려 반(反) 나치의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조직이 에델바이스 해적단(Edelweißpiraten)입니다. 에델바이스 해적단은 에델바이스 마크를 달고 나치에 맞섰던 반체제 청년 조직으로, 나치에 대항해 반정부 활동을 펼쳤습니다. 히틀러 유겐트처럼 우리 나이로 중고등학교 아이들이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징집을 거부하고 나치에 저항하다가 처형됐습니다. 독일 퀼른에서는 에델바이스 해적단을 기리는 축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 푸틴 에델바이스 사실은 이경원
반나치 활동을 펼쳤던 에델바이스 해적단의 아이들. 퀼른시 소장.

지난 2017년에는 오스트리아 극우 정당인 자유당 의원들이 국회 개원 첫날 '에델바이스'를 가슴 옷깃에 꽂고 등원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에델바이스 표식을 한 이유는 나치즘과 거리를 두기 위한 취지였다고 합니다. 당시 AFP는 "1950년대 나치 부역자들이 세운 자유당은 그동안 당을 상징하는 꽃으로 푸른 수레국화를 썼는데, 이 꽃은 나치를 상징하는 꽃으로도 인식돼 오스트리아에서는 줄곧 논란이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입니다. 즉, 히틀러가 태어난 오스트리아에서도 에델바이스는 오히려 나치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표식으로 활용됐던 겁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키이우 대대적 공습
러시아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마을

오히려 국제적으로 '네오 나치'로 의심받는 러시아 조직이 있습니다. 요즘 뉴스에서 많이 오르내리는 '와그너 그룹'입니다.

'푸틴의 사병'으로 알려진 와그너 그룹은 러시아의 민간 군사 기업으로 러시아 기업가인 예프게니 프리고진이 설립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도 아프리카와 시리아 해외 파병에서 잔인한 학살로 악명 높았습니다.

특히, 외신들은 '와그너'라는 이름이 나치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와그너는 히틀러가 찬양했던 독일의 유명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겁니다.
바그너라는 이름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초기 지휘관 중 한 명이었던 드미트리 우트킨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트킨은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Wagner)를 비롯해 나치 독일에 심취했다고 한다.
- 포린폴리시, <와그너 그룹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2021년 7월 6일 자.

작곡가 와그너는 독일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반유대계 예술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세기 위대한 작곡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바그너가 독일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에 심취한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음악계에서 여전히 논란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히틀러에게 바그너 찬양은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부각하기에 좋은 소재였다는 겁니다.

와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교도소를 돌며 용병을 모았습니다. 와그너 그룹 병력의 80%가량을 차지하는 이들 수감자는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에 집중 투입됐고, 이 가운데 절반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최근에는 와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이 "러시아 국방부가 반역을 저질러 병력 손실을 봤다"며 정부와 날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민병대인 '아조프 연대'와 나치즘과의 상관성을 부각하기도 합니다. 아조프 연대는 2014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 당시 결성돼 친러 세력에 맞서 의병 활동을 했는데, 백인 우월주의와 반 유대계 성향이 강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아조프 연대의 부대 마크도 나치의 하겐크로이츠와 비슷합니다. 친러계 주민을 학살했다는 의혹이 일자, 2015년 미국 의회는 아조프 연대에 대한 지원을 끊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사실은팀은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홀로코스트의 기억 때문에 나치즘을 가장 배척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언론의 태도를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지난해 3월 보도에서 "아조프 연대가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입된 이후 극우 성향이 희석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국가 가운데 상대적으로 극우 정당의 위세가 약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총 의석수 450석 가운데, 극우정당 스보보다(Svoboda)의 의석수는 단 한 석입니다.

러시아 와그너 용병 (사진=AP, 연합뉴스)
러시아 와그너 그룹의 용병들
SBS 사실은팀은 "우크라이나 에델바이스 부대의 명칭은 히틀러의 흔적"이라는 푸틴의 국정연설 발언을 팩트체크 했습니다. 외신에서도 관련 발언을 검증하고 있는데, 사실은팀이 직접 관련 자료를 찾아본 결과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에델바이스라는 이름의 나치 부대가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유럽에서는 반나치의 상징으로도 두루 쓰인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푸틴의 발언은 사실로 볼 수 없었습니다. 푸틴의 발언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한민국의 SBS 사실은팀이 온라인 자료 몇 개 뒤져봐도 어느 정도 검증할 수 있는 주장이었습니다.

사실은팀이 한국 사회와 동떨어져 보이는 '에델바이스 논란'을 팩트체크 한 이유는, 허위 정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 때문입니다. 허위 정보는 격렬한 갈등 속에서 잉태되고, 태어나며, 그렇게 피를 먹고 자라납니다. 홀로코스트도 킬링필드도 그랬습니다. 극렬한 갈등 공간의 허위 정보는 타자의 사악성을 강조해 '없애도 되는 존재'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거울상이기 때문입니다.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입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뉴스쉽] 마리우폴 산부인과 폭격, 만삭 임산부 대피 모습 AP
지난해 3월, 러시아의 마우리폴 산부인과 폭격으로 실려가는 여성

(인턴 : 정수아, 강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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