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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번아웃과 게으름의 차이를 아시나요?

<번아웃의 모든 것>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힐링 휴식 (사진=픽사베이)
새해가 벌써 두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연초에 세워둔 목표가 있으셨나요? 아직은 꾸준히 지켜가고 계신가요? 연초에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작심삼일이에요. 전 너무 게을러서요."
"번아웃이 왔는지, 잘 지켜지지를 않네요."
"운동 꼭 해야지 했는데, 저녁만 되면 무기력해져서…"

어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이유로 번아웃과 무기력, 게으름을 꼽는 분들이 많은데요. 막상 "그 세 가지의 차이가 뭐예요?"라고 질문하면 확실하게 답변할 수 있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얼추 비슷비슷, 그게 그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분명히 구분될 필요가 있습니다.

간혹 상담을 할 때 '번아웃 증후군'으로 보이는 분이 "전 왜 이렇게 게으르지요?"라면서 자기를 학대하고 닦달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게으름을 타파하기 위해 억지로 뭘 더 하게 되고, 자연히 정신건강은 더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고요. 이런 상황에서 세 가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 잔여량의 유무'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세 사람이 침대에 드러누워 있습니다. 셋 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서 혼잣말만 중얼거립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각자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철수 : "해야 할 일이고 나발이고...몰라..."
영희 : "아...지금 해야 하는데...지금쯤은 시작해야 되는데..."
민서 : "딱 이것까지만 보자...딱 이것까지만..."

이 세 사람의 차이는 뭘까요?

번아웃의 동의어는 소진입니다. 소진이란 에너지가 '0'이라는 겁니다. 철수는 해야할 일이 있든 말든, 정말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이 소진되어 있기 때문에, 누워있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들어서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본다? 지금 그마저도 할 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희는 다릅니다. 에너지가 조금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에 쓰는 대신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에너지를 딴 짓에 쓰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보고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데, 이게 컨트롤이 안 됩니다. 즉, 에너지는 남아있지만 그 에너지를 내가 어디에 쓸지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태가 무기력입니다.

민서 역시 영희처럼 에너지가 남아있고 유튜브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서는 유튜브 보기를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이것만 보고 있다가 하자'라는 회피적인 의사결정을 '직접'한 것이지요. 에너지를 딴 짓하는 데에 써야겠다고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우리는 게으름이라고 부릅니다.

즉, 번아웃은 가용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 무기력은 잔여 에너지가 있지만 사용 방향 컨트롤이 안 되는 상태, 게으름은 에너지가 있고 스스로 딴 짓에 쓰기로 결정한 상태를 말합니다.

무기력은 극복하는 것이고 게으름은 타파하는 것이지만 번아웃은 회복이 필요한 것이죠.

힐링 휴식 (사진=픽사베이)

요즘 SNS나 유튜브 등에 번아웃을 검색해보면 '번아웃 극복'이라는 제목으로 많은 콘텐츠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막상 정신의학전문의, 심리학자 등의 전문가는 번아웃 극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에너지 결핍은 회복해서 채워야할 상태이지, 의지로 뛰어넘거나 극복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요즘 타인이 만든 컨텐츠를 퍼와서 재가공하는 사람들, 자칭 컨텐츠 큐레이터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자체로 저작권 위반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제목이나 썸네일을 지을 때 사람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정보를 넣는 것이 아니라, 조회수와 클릭수가 최대한 잘 나오도록 재가공합니다. 그래서 '이것만 지키면 번아웃 극복! 꿀팁 5가지' 이런 자극적인, 전문가들이라면 지양할 만한 제목도 스스럼 없이 짓습니다.

2020년대에 들어서 힐링 열풍 대신 '갓생' '닥치고 해' 등 뭐든 다 강하게 극복해야 한다고 몰아세우는 식의 동기부여 컨텐츠가 유행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10여년 전, 힐링 열풍 때는 뭐든지 다 괜찮다고 해서 문제였습니다. 게으름까지도 합리화시키면서 사람들에게 심리적 마취제만을 놓고 유명세를 취하는 자칭 힐링 멘토가 너무 많았지요.

그때건, 지금이건 결국 문제의 본질은 똑같습니다.

정확하게 자기 상태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면, 힐링 콘텐츠와 자기계발 콘텐츠에 휩쓸려서 자신의 정신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요. 마치 몸이 아픈데, 아랫배가 아픈지 명치가 아픈지 구분하지 못한 채로 아무 약이나 먹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그러니 지금 늘어져 있는 분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분들도 무작정 자기 자신을 게으름뱅이로 규정하고 '극복 방법'을 검색해 보기 전에 잠시 멈춰서 구분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합니다.

지금의 내 상태가 게으름인지, 무기력인지, 번아웃인지.

자신의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눈이 길러질수록, 나에게 맞는 처방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이 나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니까요.

인잇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청년 3만 명을 상담하며 세상을 비춰 보는 마음건강 활동가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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