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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하며 출산할 수 없다" 전쟁보다 참혹한 출산율

답을 직시할 용기가 있느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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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이 됐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아기의 수가 이제 0.78명이라는 이야기다.

불과 2017년만 해도 합계출산율이 1명은 넘었다. 그때 이미 전문가들은 무시무시한 미래가 오고 있다는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세계역사 속에서 전쟁이나 대기근 상황에서도 별로 본 적이 없는 수준인 0.78명이라는 숫자로 내려오는데 딱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왜 중요한데?

출산율이 줄어드는 변화가 이 정도의 속도라는 것은 5G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이다. 남의 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면 아포칼립스 재난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관전할 법한 일이다.

이제 한국인은 인구 1천 명당 4.9명 밖에 태어나지 않는다. 지금 눈을 들어서 동네 아파트 단지를 한 번 둘러보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동 뿐만 아니라 앞 동, 뒷 동, 옆 동을 다 합쳐도 1년간 이 안에서 태어나는 아기가 5명도 채 안 된다는 이야기다. 2022년에는 인구 1천 명당 2.4명이 사라졌다.(12만 4천 명) 충북 제천시 한 개가 통째로 사라졌다.(제천시 인구는 13만 1천 명.) 올해는 더욱 빠를 것이다.

한국인은 소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빠른 속도로 소멸하고 있다는 얘기다.

좀 더 설명하면 - '280조 원'과 '0.78명'

저출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280조 원'을 먼저 이야기한다. 지난 16년 간의 저출산 대책 예산을 다 합치면 280조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고도 되지 않았으니, 이제 '유입 이민'만이 답이라고도 이야기한다.

현실적으로 일리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지금의 50대들이 태어나던 시절과 비교했을 때, 25% 밖에 사람이 태어나지 않고 있는 이 가파르게 깎아지른 인구절벽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는 없으니까. 그런데 정말, 그 280조 원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지금 을씨년스러운 빈 집들로 즐비하게 남아있는 저 청년/신혼 임대주택들에 들인 돈의 책임을 '0.78명'에게 묻는 건 나라와 사회의 비양심이다.

소상공인 지원대책과 스포츠단체 지원 예산 같은 것까지 스리슬쩍 '저출산'에 묶어놓고서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젊은이들을 다그치면 '0.78'은 더욱 빠르게 '0.6' '0.5'가 될 것이다.

좋다. 백 번 양보해서 그 280조 원이 모조리 저출산 예산이었다고 치자. 최선을 다해 계획해 썼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해보지 않은 노력이 없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정말로 말할 수 있나. 그렇게 해보지 않은 노력이 없는 나라인데, 정작 연간 고작 25만 명 태어나는 아이들의 부모는 출생신고와 함께 어린이집부터 예약하기 위해 서둘러야 하나.
 

한 걸음 더 - 나의 생존과 출산육아, 병행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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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첫째 아이의 출생은 2021년에 비해 8천 명 '반짝' 늘었다. 하지만 둘째가 1만 5천 명, 셋째가 4천 명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갓난아기가 또, 줄어들었다. 아기를 낳는 엄마의 평균 연령은 이제 33.5세다. 2021년보다 0.2세가 늘었다. 둘째, 셋째가 줄어드는 것과 엄마의 출산연령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 같이 가는 현상이다.

결혼하지 않는다. 결혼하더라도 늦게 한다. 늦게 결혼하고도 결혼 이후 5년이 지났을 때, 5쌍 중 1쌍은 아이가 없다. 아이를 계속 미루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여성 1명이 아이를 낳아도 평생 1명뿐이거나, 아예 낳지 않게 된다.

개인적으로야 만 가지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결국 한 가지 이유로 모인다. 나도 살아남으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울 수는 없다고 느낀다. 아이를 낳고 내 삶의 질도 최소한 유지하면서 아이에게 더 좋은 미래를 약속해 줄 수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사치다.
 

어떻게 해야 할까 1 -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그 답을 솔직히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2022년 통계에서 전국 16개 특별광역시도 중 합계출산율이 유일하게 1명을 넘는 곳이 딱 1곳 있다. 세종시다. 세종시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1.12명을 기록했다. (2021년의 1.28명보다 여기도 줄긴 했다.) 군 단위이긴 하지만, 합계출산율이 꿈의 '2명'에 가까운 지역도 하나 있긴 하다. 전남 영광군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81명이었다.

세종시.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모두 짐작할 수 있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 어린이집을 비롯한 보육시설 인프라가 비교적 잘 돼 있을 뿐만 아니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기간 합쳐 1~2년을 아이에게 전념하고 난 뒤에도 '잘리지 않고' 전과 비슷한 조건으로 일에 복귀할 수 있는 여성들이 많은 지역이다. 여성경력단절의 공포, 아내가 전업주부가 되면 나 혼자 홑벌이를 해야 한다는 남편의 공포가 상대적으로 덜한 도시다.

전남 영광군은 청년을 신규 채용하는 기업과 청년에게 1인당 2160만 원을 3년간 지원한다. 결혼만 하면 500만 원, 첫째만 낳아도 500만 원을 준다. 그야말로 군의 모든 돈을 쏟아부어 아이를 낳으라고 권장한다.

출산과 육아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들의 근본에는 결국 2가지가 있다. 세종시에서 보듯이 일과 가정을 진짜로 양립할 수 있게 해 주거나, 그도 안 되면 현실적으로 그에 갈음할 수 있을 만큼 돈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방법, 돈을 파격적으로 많이 주는 방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보다 태어나는 아기가 조금만 더 늘어도 나라 전체적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이다. 이미 전남 영광군 같은 대책에 대해서는 지자체끼리 치킨 게임을 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결국, 청년 일자리와 지속 가능한 맞벌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2 - 청년 일자리와 지속 가능한 맞벌이

'지속 가능한 맞벌이'다. 이것은 문화와 환경이 모두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나라가 정말 위기감을 갖고 제도를 바꾸면, 결국 문화와 환경은 따라온다.

어린이집 대기가 당연하고, 낮 12시에 초등학생들이 하교하면 각자 알아서 집에서 사교육으로 챙겨야 하며, 현실에서는 사실 저출생 걱정보다 '맘충' 성토 토크가 훨씬 활발한 나라에 진짜 위기감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지속 가능한 맞벌이'란, 애가 생기면 여자 혼자 경력단절돼 알아서 키우다가 3년쯤 지나면 최저임금 받고 파트타임 캐셔로 노동현장에 복귀해야 '집에서 놀지 않고 살림에 보탠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맞벌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종시의 맞벌이가 정부부처와 공공기관과 대기업들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면, 다른 일터에 대해서는 나라가 파격적인 제도 개혁과 지원으로 도와줘야 한다. 그런 데 돈을 쓰고 280조 원이나 썼다고 공치사를 해야 한다. '세종시의 맞벌이'를 도모하는 쪽이 전남 영광군을 전국적으로 도모하는 것보다 현실적이지 않나. 대한민국이 소멸하고 있으며, 이대로는 그저 내리막길이 남아있을 뿐이라고 정말로 생각한다면 진짜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없는 걸까.
 

또 다른 분석 - 집값 폭등도 원인 중 하나

집값을 성토하기도 한다. 일리가 있다. 사실 2012년만 해도 48만 명이 태어났다. 10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2배가 태어났다는 거다. 2005년부터 2007년,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태어나는 아기의 수가 조금씩이나마 다시 늘기도 해서, 저출생이 '불가항력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줬다.

2017년까지만 해도 합계출산율이 1명은 넘었으니까, 집값이 급등한 지난 5년간 출산율이 극적으로 빠르게 낮아져 왔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특히 지난 몇 년간의 부동산 급등은 많은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바꿨다. 그중에 만혼의 촉진과 혐오의 정서, 젠더 갈등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저출생에 기여하고 있다.

다만,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이는 선진국 대도시의 집값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비싸다. 부모가 쌓아놓은 자산 없이 시작하는 젊은이가 도심 금싸라기땅의 널찍한 아파트를 누릴 수 있는 대도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선진국일수록 저성장이 정착되기 때문에, 무자산으로 시작하는 젊은이는 기존 자산에 소득으로 접근하기 더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이야기는 다시 '지속 가능한 맞벌이'로 돌아간다. 부부가 계속 같이 일을 해서 (무자산으로 시작했더라도)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고 자신의 삶도 어느 정도는 챙길 수 있어야, 경력단절의 공포가 너무 과도하지 않으며 육아가 '여성의 고립된 일'이 아니어야 비로소 아이를 낳을까 말까 그 스타트선에라도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 출산율 반등국들의 유일한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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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30년간 집값이 오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처럼 아이를 별로 낳지 않는다.(물론 한국보다는 훨씬 많이 낳는다.) 일본과 한국의 공통점은 낮은 여성고용률이다.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아이도 더 많이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현실은 정반대다. 유럽에서도 이제 전통적으로는 가톨릭 다산국가들이었으며, 여성고용률과 여성의 지위가 함께 낮은 남서유럽 나라들이 더욱 저출생으로 고민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저출생의 늪에 빠졌다가 사실상 온전히 회복한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의 공통점은 높은 여성고용률이다. 여성고용률과 합계출산율은 위 그래픽에서 보듯 현대사회에서 거의 언제나 함께 간다. 여성고용이 당연하게, 큰 무리 없이 굴러갈 수 있는 환경이 돼야 아이도 낳는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2천 년대 이후 남성 의무 육아휴직 제도(남성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남성도 3달간 의무적으로 육아휴직해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라떼파파'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남성들이 유달리 부성이 강해서 나온 용어가 아닌 것이다.

지난 2010년 노르웨이가 자체 분석한 결과, 그 모든 저출생 정책 중에서 자신들이 가장 효과를 본 것은 바로 이 남성 육아휴직이었다는 결론을 냈다. 정확히는, 둘째까지는 남성 육아휴직이었고, 셋째부터가 보조금이었다. 우리나라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처음엔 보조금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펼쳤던 프랑스도 그래서 결국 저출생 대책의 틀을 '일 가정 양립'에 맞추는 쪽으로 전환해 왔다. (그들의 '보조금'은 우리처럼 달에 수십만 원 밖에 안 주는 수준이 아닌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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