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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안 돼" 건보 자격 첫 인정…'가족의 확장' 되나 (풀영상)

<앵커>

우리 사회가 한번 생각해볼 만한 의미 있는 법원 판결부터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결혼식을 올린 동성 커플 가운데 1명이 상대방을 자신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소송을 냈었습니다. 그 소송에서 1심에서는 졌는데, 오늘(21일) 2심은 이겼습니다. 사회의 소수자라는 이유로 건강보험에서 차별 대우를 하는 건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는 거라고 재판부는 설명했습니다.

첫 소식, 하정연 기자입니다.

<하정연 기자>

지난 2019년 결혼식을 올린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

이듬해 소 씨는 동성 배우자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지 건보공단에 문의했습니다.

공단은 가능하다는 답변과 함께 소 씨를 김 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해줬습니다.

그런데 그해 10월 이들의 사연이 언론에 알려지자 공단은 갑자기 "착오 처리"였다며 소 씨를 지역가입자로 바꾸고 보험료를 부과했습니다.

소 씨는 실질적인 혼인관계인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부인했다며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혼인의 본질은 남녀 간 결합인데, 이를 동성 간 결합으로까지 확장해 해석할 만한 근거가 없다"며 소 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그런데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우선 1심과 같이 동성 간의 사실혼 관계 자체는 인정할 수 없다며 '동성 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동성 결합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건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대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들은 동성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남녀 간 사실혼과 같은 생활공동체 관계이기에, 피부양자 자격 부인은 평등의 원칙 위반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용민/소성욱 씨 배우자 : 동성 커플들은 이제는 동성 부부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그리고 잃어버렸던 언어와 권리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단체 등은 동성 커플이 합법 영역에서 보호받을 길을 연 전향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영상취재 : 김승태, 영상편집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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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이번 판결이 동성 커플을 부부로 보거나, 법적인 지위를 인정한 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사회 복지 체계 가운데 하나인 건강보험에서 동성 커플의 권리를 인정했다는 겁니다.

그럼 앞으로도, 다른 분야로도 더 넓혀질 수 있을지 이 부분은 강민우 기자가 따져봤습니다.

<강민우 기자>

이번 판결은 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요건에 '사실혼 배우자'가 명시되지 않은 데서 출발합니다.

피부양자 범위를 법률상 가족보다 넓게 해석하며 성적 지향으로 차별 대우해선 안 된다고 본 건데, 건강보험과 달리 국민연금과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다른 4대 보험은 수급자 요건에 '사실혼 배우자'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동성 커플이 최소한 사실혼 관계는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다른 권리 획득도 가능해진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동성 커플에 대해 법적인 혼인 관계는 물론 사실혼 관계조차 인정된 사례는 없습니다.

지난 2016년 법원은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가 혼인신고를 받아주지 않은 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고, 헌법재판소도 '혼인은 애정과 신뢰를 기초로 남녀가 결합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생활공동체 측면에서 '남녀 사실혼 집단'과 '동성 결합 집단'이 동일하다고 본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차선자/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성 간의 사실혼 관계에서 이뤄지는 기능을 다 수행하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기능에 준해서 사회보장을 혜택을 주는 게 맞고, 안 주면 차별로 볼 수 있다는 (논지입니다)]

복지나 재산 관련 권리 분쟁 시 아직은 일일이 소송을 통해야 하지만 대응 논거가 마련됐다는 겁니다.

입법의 열쇠를 쥔 국회에서도 정의당을 중심으로 성별에 상관없이 동거 가구가 기존 가족과 같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생활동반자법' 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승태, 영상편집 : 윤태호, CG : 류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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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1일) 법원에서 이 내용 취재한 하정연 기자와 이야기 더 나눠보겠습니다.

Q. "차별 폐지될 것"…판결문에 적시?

[하정연 기자 : 재판부는 현행법상의 동성 간의 혼인 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판결문 말미에 소회를 적어놨습니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고, 이 남아 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라면서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고, 또 소수자에 속한다는 건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틀리거나 잘못된 건 아닐 수 있다" 이렇게 판단을 한 건데요. 또 소수자 권리를 보호하는 게 인권 최후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Q. 해외 동성 혼인 인정 사례는?

[하정연 기자 : 먼저 대표적으로 미국의 예를 살펴보면요,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2015년에 "동성 결혼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미 50개 주 전체에서 동성 결혼은 법적인 지위를 갖게 됩니다. 이 두 달 전에는 동성 간 결혼할 권리를 명시할 법률이 미 상하원에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유럽연합의 경우는 27개 회원국 중에 절반가량이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있고 이 나머지 나라들도 동성 커플을 위한 동반자 제도가 마련돼 있어 이성 배우자와 유사한 법적 대우를 받습니다. 그리고 2021년 기준으로 UN 회원국 중에 동성 혼인을 인정하는 나라는 29개 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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