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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커플 건강보험 피부양자? "된다"→"안 된다"→"된다"

동성 커플 건강보험 피부양자? "된다"→"안 된다"→"된다"
부부 중 한 명이 배우자에게 생계를 의존하면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죠. 사실혼도 마찬가지고요. 다른 사정이 다 같고 남녀가 아닌 동성, 즉 남성과 남성이나 여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면 어떨까요? 부부(사실혼 포함)처럼 어느 한 명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될까요? 2심 선고가 나왔는데요, 1심이 뒤집혔네요.
 

동성 커플인데요, 건강보험 피부양자 되나요?

김용민 씨와 소성욱 씨. 모두 남성인데요, 30대의 사회 활동가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2019년 양가 가족과 친지에게 자신들의 결혼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브닝브리핑건강보험은 김 씨가 직장 가입자였고, 소 씨가 지역 가입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듬해 2월 김 씨가 소 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하려고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 알아봤다고 합니다. 동성이고 사실혼 관계에 있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때 건보공단 직원은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건보공단은 사실혼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 가입자이고, 다른 한 사람이 상대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경우 피부양자 자격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편인데요, 남성끼리도 가능하다고 본 거죠.

근데, 그해 10월 두 사람의 관계에서 건강보험 부양-피부양 관계가 성립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계기가 된 건 두 사람의 언론 인터뷰였습니다.

언론 보도 이후 건보공단은 "업무 처리에 착오가 있었다"고 김 씨에게 통보하고, 소 씨를 다시 지역 가입자로 전환해 보험료를 부과했습니다.

불과 8개월 만에 건보공단의 입장이 180도 바뀐 겁니다. 건보공단은 "담당자가 업무 처리를 잘못했다"는 입장을 줄곧 유지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된다"에서 "안 된다", 1심 법원은?

두 사람은 건보공단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전을 벌였습니다. 2021년 2월 소 씨는 "지역 가입자 보험료를 부과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건보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브닝브리핑하지만 1심에서는 소 씨가 졌습니다. 1심 재판부는 "민법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을 모두 모아보더라도 혼인은 여전히 남녀의 결합을 근본 요소로 한다고 판단된다"며 동성 부부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니까 '현행법 체계상 동성인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소 씨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도 없다'는 취지로 판결한 겁니다. '사실혼 관계냐 아니냐'를 중요한 기준으로 본 거죠.

하지만 논란은 계속됐고 지난해 국감장에서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됐습니다. 두 사람은 국감장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건보공단의 오락가락한 결정을 비판했습니다.

김용민 씨는 "국가 기관으로부터 인정받았던 자격과 권리를 한순간에 전화 한 통만으로 다시 박탈당했다. 이는 명백한 차별이며, 사회 보장을 증진한다는 건보공단의 미션과 어긋난다"고 주장했죠. 소 씨도 "성소수자들은 평생에 걸쳐 심각한 사회적 차별과 인권 침해를 경험한다. 한국 사회의 오래된 제도와 시스템은 다양한 가족 관계를 포함하지 못하고 있어 사회를 함께 구성하는 많은 이들이 배제·차별당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판결 뒤집은 '평등의 원칙'

오늘(21일) 2심 선고에서는 소 씨가 이겼는데요, 결론이 뒤집힌 거죠. 그러면 동성 커플의 사실혼 지위를 인정한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2심 재판부는 "현행법령의 해석론적으로 원고(소씨)와 김씨 사이에 사실혼 관계가 인정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사실혼 지위'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혼인(사실혼 포함)에 대해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면서 이성간의 결합이라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니까 김용민-소성욱 씨를 법적으로 '동성 부부'나 '동성 사실혼' 등으로 부를 수 없다는 건데요, 재판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동성 결합'으로, 배우자 대신 '동성 결합 상대방'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1심 재판부와 같은 입장인데요, 2심 판결이 달라진 건 '평등의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2심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이성 관계인 사실혼 배우자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동성 관계인 동성 결합 상대방(동성 사실혼 배우자)은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같은 집단을 차별대우해 평등의 원칙을 위배했다"며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특히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은 성적 지향에 따라 선택한 생활공동체 상대방이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고 했는데요, 동성 결합이 본질적으로 사실혼과 동일한 생활공동체라는 거죠. 그래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법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 거죠.

재판부는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의 존재 이유, 제도가 사회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직장 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시대 상황 변화에 따라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호 대상이 돼야 할 생활공동체 개념이 기존의 가족 개념과 달라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한 거죠.
이브닝브리핑 

"누구나 어떤 면에선 소수자... 소수자가 틀린 것 아냐"

2심 선고 후 김용민-소성욱씨는 기쁨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김 씨는 "결국 우린 사법체계 안에서 우리의 지위를 인정 받게 됐다. 참 오래 걸렸다. 참고 견뎠던 시간과 마음이 오늘의 결과로 녹은 듯하다. 행복만 만끽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성욱 씨도 "앞으로 우린 계속 나아갈 거고, 성소수자와 인간으로서 평등과 사랑 말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건보공단은 "일단 대법원까지 지켜보려고 한다"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대법원의 판단까지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2심 판결문 가운데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려 합니다. 판결문 말미에는 사건의 사실관계나 법리를 떠나 '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재판부 견해가 들어 있습니다. 우선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해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성격·감정·능력·행위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의 평가에 있어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차별이 폐지돼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수자와 소수자의 공존, 법원의 책무 등을 언급했는데요,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세상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세상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다.
서울고법 행정1-3부 판결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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