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노동권 보장" vs "불법 파업 조장"…노란봉투법을 생각하며

대한민국 헌법에는 노동3권이 규정돼 있다. 일을 하며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근로조건을 좋게 하려고 함께하고(단결권), 같이 교섭하고(단체교섭권), 같이 행동하는(단체 행동권) 3가지 권리다. 그리고 이런 권한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게 노동조합법이다. 최근 국회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법안이 이 노조법 2조와 3조다. 이른바 '노란봉투법 개정안'이라 불린다.

범야권 '노란봉투법' 발의

'노란봉투'라는 말은 2014년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법원이 회사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하자, 시작된 시민들의 모금운동에서 시작됐다. 한 시민이 시민들이 힘을 합쳐 손해배상금을 해결하자는 편지를 언론사에 보냈는데, 당시 노란봉투에 47억 원의 10만 분의 1인 4만 7천 원을 담아 전달했다. 이런 의미를 담아 노란봉투법이 만들어졌지만, 그 의미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률일까,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법률일까.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자


노조법 개정안에서는 사용자 개념을 확대했다. 기존에는 사용자를 근로계약 주체가 되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를 사용자로 봤는데, 여기에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추가했다. 원청의 결정에 따라 노동조건이 바뀌지만, 원청과 단체교섭을 할 수 없는 하청·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는 지난 2010년 대법원 판결(2007두 8881)에 '현대중공업이 하청 노동자의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나온 내용이다. 대법원은 당시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 이외에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 역시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하여,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이후 관련 판례가 늘어온 만큼 사용자 개념을 넓히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보고 법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다만,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한다는 표현이 모호하다는 비판은 있다. 법은 최소한의 규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후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 사업주에게 노조법상 사용자로 모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면서 법적 안정성이 저해된다고 우려했다. 원청-하청 노조 간의 단체협약을 맺으면, 하청 노사 간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이 형해화 한다는 부분도 문제로 제기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근로조건의 결정 vs 근로조건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쟁의의 범위도 키운다. 분쟁의 대상에 '근로조건의 결정'에서 '근로조건'으로 바꾸는 건데, 단어 하나 바뀌지만 차이는 크다. 지금까지는 임금 협상이나 해고, 복지 문제 등 이익분쟁에 대해서만 파업이 가능했다. 앞으론 단체협약을 이행이나 정리해고 반대까지 노동쟁의 개념에 포함해 파업이 가능하게 한다. 이익분쟁뿐 아니라 권리분쟁(사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까지 노동쟁의 개념에 포함해 파업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익분쟁 – 노조와 사업주가 구체적인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을 어떤 내용으로 확정할 것인지를 두고 발생하는 분쟁
 ex) 인금인상 결정
권리분쟁 – 이미 체결된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의 내용에 대해 해석하거나 적용할 때 발생하는 분쟁
 ex)단체협약 이행

현행법에는 임금 인상과 같은 아주 좁은 의미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이익분쟁만 노동쟁의로 인정한다. 권리분쟁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을 받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만큼, 노사 간 불안정한 상태가 장기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건 긍정적이다. 다만, 사용자 고유의 경영권 사항에 대한 내용까지도 쟁의의 대상이 될 수 있어 노동분쟁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부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임금체불, 해고자 복직 등 권리분쟁을 노조가 파업 등, 힘으로 해결할 수 있게 돼 노사갈등 비용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권 보장인가, 불법 파업 조장인가

노란봉투법 시위

노동계에서는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이라며 환영한다. 한국노총은 성명서를 통해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위한 노조법 전면 개정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노조법 개정안 2조에 신설된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측의 보복성 손배가압류 폭탄으로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고통이 있었다"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말한다.

정부와 경영계에서는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헌법과 민법 원칙에 위배되고 노사갈등을 확산시킬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에 근본적인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한 것에 대해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분쟁대상조차도 노동쟁의 대상으로 무리하게 포함시켜 노사갈등이 더욱 빈번해질 우려가 있다"며 "범위를 모호하게 확대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등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은 전 정부 때도 국정과제로 다뤘지만, 다른 법률과의 충돌 문제로 법 개정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 직원에게 470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불거졌고, 이후 빠르게 법 개정이 진행됐다. 3차례의 법안 심사와 민주당이 주체한 토론회가 있었지만, 이번에 나온 개정안은 지난 15일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다. 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인지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것인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논쟁이 되는 법안을 더 오래, 더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 아닌가. 한쪽에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다른 쪽에선 절대 반대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언급하는 상황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정쟁의 도구가 아닌, 노동자를 위한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