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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경제] '부의 사다리' 어떻게 잇나…"상대적 박탈감이 차이 만들어"

<앵커>

친절한 경제 시간입니다. 오늘(17일)도 권애리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요즘 들어서, 요즘이 아니죠. 꽤 몇 년 사이에 월급으로 집 하나 사려면 정말 꿈같은 이야기가 되고, 그렇다고 가처분소득이 느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자꾸 내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앞으로 내가 더 잘 살 수 있다. 이런 희망이 좀 사라지고 있잖아요. 부의 사다리가 없다. 이런 절망감까지 나오고 있는 분위기 같은데 이런 절망감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겠죠?

<기자>

반대로 그런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을 조사 결과가 하나 나와서 오늘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정말 부의 사다리가 끊겼는지 이걸 진짜 제대로 보려면 많은 가족들을 최소한 수십 년 동안 지켜봐야 하죠.

서구에는 50년 넘게 한 가족을 지켜보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장기간의 데이터 자체가 아직 없습니다.

가장 오래된 믿을 만한 조사는 25년 전에 시작됐거든요.

1998년에 도시에 사는 5천 가구를 추적하기 시작해서 그 집의 아이들이 커서 분가하고 자녀를 낳으면 그 사람들한테 또 가서 물어보고 새로운 가족들도 추가하고, 그렇게 해서 모두 1만 2천 가구의 상황을 이젠 매년 살피고 있는데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부의 대물림 정말로 어떤 수준인가 파악해 본 연구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나왔습니다.

<앵커>

재미있겠네요. 정말 시간이 갈수록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상황입니까? 어떻습니까?

<기자>

네. 그렇기는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지난 25년간을 추적해 보니 그 반대로 눈에 띄는 부분도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의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그러니까 80년생 이후는 25년 전에 시작된 조사에서 이게 가능합니다.

내가 14살 때 우리 집 형편이 어땠다, 주관적으로 기억하는 수준과 실제 당시 그 집의 형편이 객관적으로 어땠는지 이걸 나란히 놓고 볼 수가 있잖아요. 그렇게 봤습니다.

그랬더니 실제로 가장 가난했던 하위 20% 집의 아이들보다 상위 40%까지의 아이들이 자라서 첫 번째 일자리 이후의 3년간 확실히 좀 더 고소득인 추세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아래로부터 60%,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딱 중간 정도 소득의 가정까지는 부모의 과거 실제 소득 차이가 자녀의 소득 차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부모의 소득 차가 성인이 된 자녀의 삶에서 크게 의미가 없었다는 겁니다. 95년생 MZ세대까지도요.

그런데 어디서 차이가 크게 났느냐, '우리 집이 평균보다 훨씬 가난했다'고 주관적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이 아주 힘들었다고 느끼는 경우에는요.

'우리 집은 그냥 보통이었다' 혹은 '우리 집이 좀 빠듯한 편이었지' 이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확실히 임금이 낮은 추세가 보였습니다.

한 마디로 지금의 2030들 실제로는 많이 가난했더라도 '괜찮았어' 또는 '우리 집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어' 이렇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덜 느끼며 자란 경우에는요.

실제 나중의 임금 수준, 노동시장에서 그 사람의 성과도 더 괜찮을 수 있었다는 해석이 조심스럽게 가능한 결과입니다.

이번 연구진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회와 정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한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지은/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 : 청소년기에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았더라도,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일반적인 권리, 이런 기회가 부여됐다면, 자신의 욕구가 '우리 집이 못산다'는 이유만으로 충족되지 못했다는 인식이 없다면, 이 사람들은 좀 더 커서 좋은 노동시장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앵커>

그러네요. 그러니까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꼈으면 미래 상황이 조금 더 나았다. 그럴 여지가 있다는 건 좀 의미심장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솔직히 부의 대물림이라는 걸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이게 어차피 굳어진다 하더라도 아까 우리 얘기했던 이런 거 보면 좀 생각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지는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자>

좀 흔들어볼 수 있는 변화의 여지를 우리가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죠.

사실 부의 대물림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보면 지금 2030이 14살이었을 때 아버지의 소득을 10개 구간으로 좀 더 잘게 쪼개보면 상위 10% 가정에서 자란 사람의 초기 임금은 하위 10%를 대체로 33%나 웃돌았습니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일단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와 나머지 일자리의 임금 양극화가 뚜렷해졌는데요.

그럼 그 소수의 일자리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 일단 거의 대부분의 청소년이 대학을 가는 나라에서 학력 차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부모의 소득 차에 따른 좀 더 미세한 차이들, 이를테면 해외연수라든가, 인턴십 기회처럼 부모의 재력뿐만 아니라 부모의 관심이나 정보 같은 것들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서 차이가 나면서 아무래도 고소득자의 아이들이 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더 높아져 왔다는 게 이번 연구의 분석입니다.

이런 차이를 아주 없앨 수야 없겠지만 다양한 아이들에게 경험의 기회를 좀 더 제공해 주는 공교육이나 정책이 변화를 좀 더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볼 수가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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