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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준비해야 할 일들

By 다니엘라 라마스 (뉴욕타임스 칼럼)

NYT
*다니엘라 라마스(Daniela J. Lamas) 박사는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폐 질환 전문의다.

당신이 어려서 30살을 넘기기 어려운 병에 걸렸다고 진단받는 상상을 해보라. 아마 당신은 고등학교까지는 다니겠지만, 대학교 진학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을 거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내키지 않을 것이다. 영영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해 당신은 얼마나, 어디까지 투자할 수 있을까?

몰리 팸(Molly Pam) 씨는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 환자다. 1988년생인 몰리는 저 잔혹한 질문을 상상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해야 했다. 낭포성 섬유증은 유전성 내분비 질환으로, 젊은 나이에 폐가 기능을 멈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병이다. 그렇지만 몰리는 현재 34살이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낭포성 섬유증을 치료하는 혁명적인 신약과 치료법이 개발된 덕분이다. 몰리는 아마도 40번째, 어쩌면 50번째 생일을 맞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30살 넘어서까지 살기 어려울 거란 진단을 받았지만, 사는 동안 기대수명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정말 놀랍고,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유전자 치료와 암 표적 치료가 꾸준히 개선되면서 예전에는 꼼짝없이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던 많은 병이 점점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의 만성질환이 되고 있다. 예정보다 오래 살게 된 환자의 예후를 기록한 데이터는 곧 새로운 연구의 밑거름이 된다.

몰리 팸 씨는 10번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낭포성 섬유증 진단을 받았다. 중학생 몰리는 이 병의 모든 것을 철저히 공부했다. 같은 병을 앓고 25살 넘어까지 생존한 환자의 회고록을 읽고 또 읽었다. '나도 결국에는 이 환자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이 질문은 몰리가 가족의 전통을 따라 스탠포드대학교에 진학하고, 졸업 후 맨해튼으로 이사하는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몰리의 폐는 예정된 운명처럼 이따금 고장을 일으켰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몰리는 자신이 남들과 같은 전일제 근무를 하면 몸이 버텨내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몰리는 주어진 한도 내에서 자신의 삶을 차근차근 설계했다. 요리 학교를 나와 프리랜서 요리사로 경력을 쌓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했다.

30살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예정대로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약도 잘 듣지 않는 세균 감염 때문에 폐 기능은 급격히 떨어졌고, 끝내 폐가 붕괴했다. 몰리는 일을 그만두고, 언니와 조카를 비롯해 가족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처음부터 아이는 낳지 않기로 남편과 의견을 같이했다. 병에 걸린 환자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폐 기능이 떨어졌으므로, 폐를 이식받기 위해 필요한 검사를 받기로 했다.

폐 이식 가능성을 타진하는 동시에 몰리 팸 씨는 새로운 약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낭포성 섬유증의 기저 원인을 골라 치료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몰리는 지난 몇 년 사이 가장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폐 기능은 두 배 좋아졌고, 기대수명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몰리가 받는 치료에 쓰는 약은 2019년에 승인된 트리카프타(Trikafta)라는 약이다. 이 약은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의 운명을 획기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낭포성 섬유증은 우리 몸의 세포,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에 문제가 생겨 일어나는 병이다. 폐를 비롯한 신체 기관에 세포가 정상적으로 만들어지는 대신 끈적끈적한 점액이 들러붙어 염분과 수분의 조절을 방해한다. 트리카프타는 세 가지 약을 합성해 만들었는데, 망가진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하도록 돕는다. 환자들은 폐와 신체 기관에 쌓인 점액 때문에 세균에 감염되거나 더 쉽게 상처를 입는데, 트리카프타는 단백질을 자극해 점액 생성을 막기 때문에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이 자주 겪는 호흡 기능 저하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트리카프타는 낭포성 섬유증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돌연변이를 표적 치료하는데, 또 다른 유전적 돌연변이 때문에 트리카프타가 듣지 않는 환자들도 있다. 그래도 낭포성 섬유증 환자 대부분은 오늘날 60대까지 살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기대수명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시한부로 살아야 했던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은 이제 신경 써서 관리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으로 살게 됐다. 이는 분명 반갑고 획기적인 변화지만, 몰리 팸 씨처럼, 혹은 그보다 윗세대 환자들에게 실존적인 고민을 안겨주기도 했다.

즉 이들은 어려서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은 뒤로 삶의 시간표를 거기에 맞춰 세워두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직업을 고르고 경력을 쌓는 것도, 가족계획도 그랬다. 과학적 연구 덕분에 예정에 없던 삶이 주어진 건 분명 쾌거라 할 수 있지만, 그 시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야 할지는 누구도 말해준 적 없고, 환자들 스스로도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한 40대 낭포성 섬유증 환자는 자신의 퇴직금을 일찌감치 당겨 받아 다 썼다. 자신은 보통 사람들이 은퇴하는 나이까지 살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사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살아있고, 예정에 없던 시간이 주어지자 매우 방황하고 있다. 낭포성 섬유증 환자 중에는 굳이 대학 교육을 받지 않거나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경력을 쌓을지 아예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다. 환자 본인도, 부모도 미래를 위해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할 거라고 진단받은 환자가 어른이 되면 어떻게 살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어엿한 어른이 돼 건강하게 살고 있다. 잘하면 노인이 될 때까지 살 수도 있다. 트리카프타가 개발되기 전에 낭포성 섬유증을 앓아 폐 이식을 기다리던 환자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가 갑자기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무얼 해야 하나? 그나저나 이 새로운 치료법은 약효가 얼마나 가는 걸까?

"많은 환자들이 삶에 불어닥친 변화에 적응하려고 계속해서 애쓰고 있어요."

보스턴 어린이 병원과 브리검 여성병원에서 낭포성 섬유증을 집중적으로 보는 폐 질환 전문의이자 내 동료이기도 한 마누엘라 세나다스 박사의 말이다. 세나다스 박사의 환자 중에도 트리카프타를 이용한 치료 덕분에 폐 기능이 개선된 환자들이 많다. 차도가 나아진 환자들을 볼 때마다 기쁘지만, 동시에 트리카프타가 승인되기 전에 사망한 환자들이나 폐를 이식받고도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숨진 이들이 떠올라 착잡하다고 세나다스 박사는 말한다. 조금만 더 버텼다면 살 수도 있던 환자들이었다. 그러나 세나다스 박사는 환자의 목숨이 얼마나 많은 우연과 운에 좌우되는지 잘 알고 있다.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은 모두 내일을 향한 희망보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트리카프타는) 환자들에게 더없는 축복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생각지 못한 걱정거리를 안겨주기도 하죠. 환자들은 대개 자기 삶이 일찌감치 마감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담담히 준비해 왔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게 된 거죠. 삶이라는 게 그냥 숨만 쉰다고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들이 갑자기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새로 주어진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평생 대비한 적 없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계획을 새로 짜는 거다. 트리카프타 덕분에 신체 기능이 좋아지면, 임신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가족계획을 세워본 적도 없던 여성들이 자연히 임신하고, 아이를 안전하게 낳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평생 써볼 생각도 안 해서 방치했던 신체 기능이 멀쩡히 작동하는 건 어떻게 보면 신기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아이를 갖는 부부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으니 아이가 생겨도 큰일이라고 여기던 이들이 남은 시간이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으려 하고 있다.

작지만 가슴 찡한 희망의 사연도 있다. 낭포성 섬유증 전문의에게 들은 이야긴데, 40대가 되어서도 건강을 유지한 환자가 치아 교정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미뤄 온, 어쩌면 지레 포기하고 있었을 눈 성형수술을 받기로 한 환자도 있다. 그 얘기를 듣다 보니, 몇 년 전에 만났던 젊은 여성 환자도 생각이 났다. 그는 자기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자외선 차단제를 열심히 바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래 살게 되면 자외선을 많이 쪼이다 피부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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