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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튀르키예 지진, 123년간 데이터로 살펴보니

튀르키예 지진 피해가 컸던 이유는?

마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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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구를 강타한 대지진의 인명 피해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14일 기준으로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튀르키예에서만 지진 사망자가 3만 5,418명이고, 부상자가 10만 명을 넘겼더라고요. 이 수치는 지난 1939년 에르진잔 대지진을 뛰어넘는 튀르키예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 피해라고 합니다. 내전으로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시리아의 상황까지 포함된다면 실제 인명 피해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오늘 마부뉴스에선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발생한 강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진 피해가 왜 이렇게 컸는지, 막을 수는 없었는지 관련 데이터를 모아서 정리해 봤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비교할 수 있도록 국내 자료도 준비했어요. 그러면 지금 바로 시작해 볼게요. 오늘 마부뉴스가 독자 여러분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튀르키예 지진 피해가 컸던 이유는?
 

얕은 곳에서 강진이 발생해 왔던 튀르키예

2008년 쓰촨성, 2010년 아이티, 2011년 일본. 세 지역은 모두 규모 7 이상의 강진이 닥쳤던 곳입니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의 공식 사망자수는 8만 7,227명이었고 2010년 아이티 대지진에서는 사상자 규모를 최대 31만 6,000명으로 추정할 정도였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는 1만 5,90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47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습니다.

튀르키예 지진에 앞서 과거의 대지진 이야기를 꺼낸 건 이렇게 많은 피해를 가져온 지진들의 공통점을 찾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건 바로 “진원이 얕다”라는 것이죠. 진원은 지진이 최초로 발생한 지점을 뜻합니다. 쓰촨성 대진은 진원이 19km였고, 아이티 대지진은 13km, 동일본 대지진은 29km였습니다. 이번 튀르키예 지진의 진원을 살펴보면 최초로 발생한 규모 7.8 지진의 진원은 17.9km였고 뒤이어 발생한 규모 7.5의 2차 지진은 10.0km로 매우 얕았어요. 지진의 위력도 셌지만 그 위치가 지표면에 가까웠던 탓에 피해 규모가 커진 거라고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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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많은 데이터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데이터를 통해 1900년부터 2023년 2월 14일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규모 7.0 이상의 강진의 진원을 분석해 봤습니다. 지진의 세기를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규모와 진도가 있는데, 규모는 지진의 절대적인 강도를 의미하고 진도는 측정위치에 따른 상대적 강도를 나타냅니다.

123년 간 전 세계에서 규모 7.0 이상의 지진은 모두 1,483건입니다. 이들의 평균 진원의 깊이는 73.8km죠. 이번엔 튀르키예의 강진만 살펴보겠습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건 튀르키예서 발생한 강진인데 다른 강진들보다 특히 지표면에 가깝게 위치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튀르키예 강진의 진원들의 평균 깊이를 계산하면 19.9km로 채 20km가 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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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치가 얼마나 낮은 건지 조금 더 분석해 봤습니다. USGS 데이터에서 지진 발생 지역에 국가명이 명시된 경우를 골라내서 20회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 국가만 추려서 비교해 봤습니다. 123년 간 20회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 국가는 모두 15개국인데, 국가 별로 진원의 평균 깊이와 강진 개수를 정리해 위의 그래프로 나타냈습니다. 점의 크기는 강진의 개수를 나타냅니다. 총 21건의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가 15개 국가 중 진원 깊이가 가장 낮았습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의 평균 진원 깊이가 76.5km이고 필리핀이 80.5km니 꽤 차이가 큰 거죠. 즉, 123년 간 튀르키예에서는 다른 어느 국가들보다 얕은 곳에서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내진설계 안된 불법건축물이라도 수수료만 내면 OK?

1939년 에르진잔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대지진 이후 튀르키예에선 내진 설계법을 마련했습니다. 60년 뒤에 일어난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규모 7.6) 이후에는 내진 설계가 의무화됐고 지진세가 도입되었죠. 그리고 24년 뒤 오늘날, 튀르키예의 지진 대비는 잘 이뤄진 걸까요? 지금까지의 대지진 피해 상황만 보면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데이터로 살펴보더라도 여느 다른 국가들보다도 튀르키예에선 강진이 지표면 부근에서 발생해 왔습니다. 1999년 이후 내진 설계도 의무화되었지만 왜 이렇게 피해가 큰 걸까요?

튀르키예에는 건축 사면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내진 설계 같이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안전 인증이 없는 건축물이라고 하더라도 정부가 돈을 받고 법적 책임을 면제해 주는 거죠. 이런 사면조치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건축 사면이 등장했던 배경엔 급격한 도시화가 있습니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렸고, 사회적 기반이 그 속도를 따라가질 못해 불법건축물들이 도시 곳곳에 생겨났거든요. 이 불법건축물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당시 튀르키예는 건축 사면이라는 제도를 사용한 거죠.

문제는 이 제도가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하다는 겁니다. 선거 시점에 맞춰 대규모 사면이 이뤄져 왔어요. 현재 튀르키예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라는 분인데, 2003년 총리에 취임한 이후 20년째 장기 집권 중입니다. 총리, 대통령이 함께 보여서 헷갈릴 수 있는데, 원래 튀르키예가 의원내각제였다가 2017년에 개헌으로 대통령중심제로 바뀐 거거든요. 권력을 이어오는 수단 중 하나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때마다 건축 사면을 꺼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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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카흐라만마라쉬 지역에서 시민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건축 사면으로 14만 4,556명의 시민들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라고 말이죠. 하타이 지역에서는 20만 5,000명의 시민들을 불법건축물로 해방시켰다고 홍보했습니다. 총선 전 튀르키예 전역에 건축 사면으로 발급된 증명서는 모두 315만 2,094건입니다. 지진 피해를 많이 입은 주요 10개 주만 따로 보면 여기에서만 총 29만 4,165건의 증명서가 발급됐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증명서가 발급된 곳은 5만 6,464건이 발급된 하타이 주였고요.

그리곤 강진이 닥쳤습니다. 내진 설계, 화재 대비와 같은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건물들이 버티기엔 너무나도 센 대지진이었죠. 에르도안 대통령이 본인의 치적을 자랑했던 카흐라만마라쉬 지역과 하타이 주는 이번 대지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들입니다. 현재까지 집계된 데이터로 봤을 때 하타이 주에선 10개 주 중 가장 많은 7,060명이 지진 피해로 사망했습니다. 카흐라만마라쉬 지역은 5,232명으로 하타이 주 다음으로 지진 피해 사망자가 많죠. 전체 사망자의 3분의 1 이상이 두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하타이 주에서도 모든 곳이 피해가 심각한 건 아닙니다. 하타이 주의 에르진 시는 피해가 단 1도 없었거든요. 하타이 주에서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 도시는 에르진 시가 유일합니다. 에르진 시가 다른 지역과 달랐던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건 바로 건축 사면 대신 내진 설계법으로 건축물을 엄격하게 규제했다는 거였죠.
 

우리나라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할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걸까요? 먼저 데이터로 우리나라에 발생한 지진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1978년부터 2022년까지 우리나라에 발생한 지진을 나타낸 겁니다.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보면 완만하지만 조금씩 우상향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참고로 1978년부터 1998년까지는 아날로그로 지진을 관측했고, 1999년 이후에는 디지털 장비로 관측을 하고 있는데, 디지털 관측 이전에 연평균 지진은 19.1회 정도 발생했습니다. 1999년 이후엔 그 수치가 70.6회로 늘어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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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후 확 올라가는 부분 보이죠?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기억날 겁니다. 2016년에 발생한 경주 지진은 1978년 우리나라가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그 세기가 강했던 지진입니다. 규모 5.8로 한반도 전역에서 흔들림을 느꼈을 정도였죠. 이듬해 포항 지진은 경주 지진 때보다 세기는 덜했지만 진원지가 더 얕아서 피해 규모가 더 컸습니다. 수능을 연기시키기도 했고요.

이 두 지진의 영향으로 2016년과 2017년의 지진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큰 지진 이후에 세기는 약하지만 여진이 지속되었거든요. 하지만 두 지진의 여진이 잦아들면서 지진 발생 횟수는 감소했어요. 최근엔 또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2년에 우리나라에 발생한 지진은 모두 77회입니다. 2021년 70회와 비교해 보면 약간 증가했죠. 다만 사람이 직접 체감할 정도의 지진은 13회로 2021년 15회보다 약간 줄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규모 7.0이 넘는 강진이 일어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라고 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과거에 비해 지진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의 내진 설계 상황은

그렇다면 우리나라 건축물은 내진 설계가 잘 되어있을까요? 예전 <독자 여러분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 편에서 우리나라 건축물의 용적률과 건물 높이를 분석했었는데, 그때 사용했던 전국 건축물대장 데이터를 다시 가져왔습니다. 이 데이터에는 내진 설계 적용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걸로 한 번 전국 건축물의 내진 설계 여부를 분석해 봤습니다.

2022년 11월 기준으로 전국 건축물 중 내진 설계가 적용되어 있는 건축물은 모두 78만 6,179개였습니다. 전체 건축물 중 9.9%에 불과하죠. 지역별로 살펴보면 전국에서 내진 설계 건축물 비율이 가장 낮은 시군구는 전남 고흥군이었습니다. 전남 고흥군에 있는 4만 606개의 건축물 중에 내진 설계가 된 건축물은 465개뿐이었죠. 비율로 보면 1.1%에 불과합니다. 전남 고흥군을 포함해서 내진 설계 건축물의 비율이 1%인 곳은 전국에 9곳이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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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내진 설계가 가장 잘된 곳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였습니다. 전체 건축물의 31.8%가 내진 설계가 되어 있더라고요. 30% 이상을 기록하는 지역은 전국의 5곳뿐이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31.1%), 대전광역시 유성구(31.0%), 인천광역시 서구(30.8%), 서울특별시 강남구(30.4%)등 수도권과 광역시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데이터가 빈틈이 많다는 겁니다. 전국 건축물대장 데이터를 살펴보면 내진설계가 적용 되어있다(1), 되어있지 않다(0)와 함께 NA value가 들어가 있거든요. 전체 건축물 중에 NA value가 무려 278만 6,788개로 30%가 넘습니다. 이런 건물들은 내진 설계가 되어 있는지, 안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법적 기준에 따라 내진 설계 적용 대상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있겠지만 실제 건축물대장 데이터에는 그게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만든 내진설계 간편 조회 서비스에서도 내진 설계 여부를 명확히 알려주는 게 아니라 “내진설계 의무 대상”이 맞는지 아닌지만 확인해주고 있죠. 참고로 우리 집이 내진설계 의무 대상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면 이 링크를 클릭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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