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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알려드립니다 [북적북적]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알려드립니다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70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알려드립니다
"독서는 우선 비(非)독서라 할 수 있다. 삶을 온통 독서에 바치는 대단한 독서가라 할지라도, 어떤 책을 잡고 펼치는 그 몸짓은 언제나 그것과 동시에 행해지는, 그래서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그 역(逆)의 몸짓을 가린다. 즉, 그 책 외의 다른 모든 책들, 어떤 다른 세상이었다면, 선택된 그 행복한 책 대신 선택될 수도 있었을 다른 모든 책들을 잡지 않고 덮는 몸짓을 가리는 것이다."

골라듣는뉴스룸의 책 읽는 팟캐스트 <북적북적> 370회입니다. 건너뛰는 횟수가 최근 들어 좀 잦아졌지만 1년 52회를 다 채웠다고 봐도 7년이 넘었죠. 제가 처음 대타로 참여했던 때부터 치면 햇수로 9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요즘엔 세어보지 않았습니다만, 북적북적에서 제가 읽은 책만 해도 2백 권에 육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약간의 요령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도 책 선정부터 준비, 낭독에 이르기까지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출판사와 작가 따라서 낭독 허가를 받기 어려울 때도 많고 무엇보다 많고 많은 책 중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고르는 게 간단치 않습니다. 세상에 책이 저렇게 많다 해서 제가 다 읽을 수 없고 사람마다 취향이 제각각인데 그중 하나를 골라 뭔가 인사이트를 담는 듯이 읽어내는 게 때로는 막막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책을 읽으면 곧 잊어버리기 일쑤인데, 그렇게 읽었다는 느낌만 남은 책들을 과연 읽었다고 할 수 있나 스스로 의문을 갖기도 하고요. 아무 부담도, 거리낌도 없이 그저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잘 되지 않네요.

결국은 이 책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돌아왔습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프랑스의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피에르 바야르가 썼습니다.
"나는 내가 평문을 써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책 맨 앞머리에 있는 이 말은 오스카 와일드가 출처라고 합니다. 이 책과 퍽 어울리는 인용인데 이런 게 가능할까요? 가령 "나는 내가 북적북적에서 소개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라면 어떠실까요?

계속 읽어나가도록 하는 '후킹'이었다면 성공적인데, 그럴 리만은 없습니다.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 성찰하고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고 하는 말들에 대해 성찰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책을 읽지 않았다는 이 '비독서'라는 개념이 불분명하고, 그래서 어떤 이가 어떤 책을 읽었다고 주장할 때 그것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파악이 쉽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텍스트를 만나는 다양한 형태들은 대부분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책을 읽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책의 내용을 100% 기억하는 게 그런 걸까요, 혹은 책의 주제나 취지 정도만 이해하고 기억하면 책을 읽은 걸까요, 또는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더라도 책을 주욱 다 넘겨봤다면 읽은 걸까요. 세 번째라면 그것과 책을 읽지 않은 것과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이 책에는 여러 책을 인용하고 있는데 별도의 약어를 만들어놨습니다. UB는 Unknown Book- 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 SB는 Skimmed Book- 대충 뒤적거려 본 책, HB는 Heard Book-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책, 마지막으로 FB는 Forgotten Book- 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 각각은 어떤 함의를 지닐까요.
"책을 읽지 않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방식은 어떤 책도 전혀 펼쳐보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완전히 외면할 수 있는가 하겠지만 사실 이는 우리가 책과 맺는 주된 관계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자주 접하는 독자에게도 출판물 대부분은 거의 완전히 외면을 당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독자라 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극히 일부를 읽을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양인들은 교양이란 무엇보다 우선 '오리엔테이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내부는 외부보다 덜 중요하다."
"많은 비독서자들이 교양인이라면, 그것은 곧 비독서가 독서의 부재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책들 속에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그 책들과 체계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하나의 진정한 활동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옹호받아야 할 뿐 아니라, 나아가 교육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떠신가요? 처음엔 이 저자가 장난하나 혹은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는데... 꽤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교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하는 책", "강요가 아닌 자유로운 읽기를 통해 책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책", "불완전한 독서와 비독서를 포함한 온갖 읽기 방식의 창조적 국면에 주목하는 책"... 이 책은 출간 당시 이렇게 다양한 찬사가 쏟아진 바 있습니다. 2008년 처음 한국에 번역 출간됐고 김영하의 북클럽에 소개된 덕분인지 작년에 9쇄를 찍어서 저도 알게 됐고 이렇게 소개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 및 청취자 여러분은, 나의 독서는 과연 어디에 해당할지 생각하며 읽어보셔도 좋고 그냥 북적북적 들으시고 읽은 척하셔도 될 듯합니다.(그러면 이 책은 UB는 아니고 HB 정도 되겠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통찰력 있게 말할 줄 안다는 건 그저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으니까요.
"사실 우리가 언급하게 되는 많은 책들은 한 번도 우리의 수중에 들어온 적이 없는 책들이다. 어떤 텍스트를 통해서나 아니면 대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 책에 대해 해주는 얘기나 아니면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그 방식에 의거하여 우리는 그 책의 내용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고, 심지어는 그 책들에 대한 조리 있는 판단을 표명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기억 공백의 경험이 많은 몽테뉴는 우리가 만나본 어떤 저자보다도 독서와 비독서의 경계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읽은 모든 책이 곧바로 의식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여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면 독서라는 개념 자체가 모든 타당성을 상실하게 되며, 펼쳐본 책이건 그렇지 않은 책이건 모든 책은 결국 다른 어떤 책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책이란 읽을 때마다 다시 꾸며지는 것이란 점을 그들에게 알려주는 일은 곧 별 피해 없이, 심지어는 이득을 얻기까지 하며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을 그들에게 제공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통찰력 있게 말할 줄 안다는 것은 책들의 세계를 훨씬 웃도는 가치가 있다."

*출판사 여름언덕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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