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곽상도 뇌물은 왜 무죄가 됐나

1심 재판부가 밝힌 '50억 성과급 뇌물' 곽상도의 무죄 이유

[취재파일] 곽상도 뇌물은 왜 무죄가 됐나
1심 재판부가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아들이 받은 50억 성과급(세후 25억 원)이 곽 전 의원 것이 맞는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성과급의 실체가 세상에 처음 드러났을 때만큼이나 비판이 거셉니다. 법감정과 괴리된 재판부의 소극적 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검찰의 부실 수사를 탓하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재판의 본질은 증거 다툼입니다. 형사 재판의 경우 입증의 문턱이 더 높습니다. 혐의에 대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되지 않는 이상, 판사는 피고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성과급이 이례적으로 과다하다", "뇌물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말한 이번 재판부도 결국 이런 대원칙을 거스를 순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판결에 대한 평가는 이미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여러 기사에서 소개됐지만 분량 제한이 없는 <취재파일>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곽상도 뇌물 사건'에 무죄 판단이 내려진 이유를 좀 더 자세하게 전해드립니다.
 

"성과급 50억 원, 이것저것 따져봐도 과하다"

1심 재판부는 성과급 규모의 적정성부터 따졌습니다. 아무리 봐도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 씨가 화천대유에서 퇴사하며 받은 50억 원은 너무 과하다고 봤습니다.

병채 씨는 아버지와 알고 지내던 김만배 씨의 제안으로 2015년 6월 화천대유 1호 사원으로 입사합니다. 이후 5개월 만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 아버지를 돕겠다며 회사를 나갔습니다. 이듬해 5월 아버지 당선 이후 재입사한 병채 씨는 보상 업무 등을 하다 2020년 6월, 추후 퇴직할 경우 5억 원에서 퇴직금을 차감한 나머지를 성과급으로 받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병채 씨는 2021년 2월 중순경 건강 상태를 이유로 사직 의사만 표시한 뒤 더는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퇴사 처리는 3월 마지막 날에 이뤄졌는데, 그 무렵 외부인이 된 병채 씨의 성과급 계약이 변경됩니다. 지급 액수가 50억 원으로 확 뛴 겁니다. 성과급 입금은 한 달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김 씨는 병채 씨가 그만한 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회사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서로를 삼촌 조카로 부를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는데, 일을 하다 건강이 심하게 상해 위로금을 줘야 했다는 논리도 폈습니다. 약 580억 원에 이르는 향후 추정 공사비를 파악해 재무 담당자에게 보고하는 등 업무 성과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병채 씨의 나이와 종전 경력, 직급과 담당한 업무 성격 등을 비춰보면 성과급 규모가 사회 통념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병채 씨가 얻게 된 질병이 정확히 뭔지, 객관적인 건강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점도 석연치 않다고 했습니다. 업무 성과 역시 독자적인 실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컨소시엄 와해 위기 있었는지조차 의문…'영향력 행사' 입증 안 돼"

검찰이 아들 성과급과 관련해 곽 전 의원에게 적용한 죄목은 '(특경법상) 알선수재'와 '(특가법상) 뇌물' 두 개입니다. 2021년 4월 병채 씨가 성과급으로 받은 50억 원이 결국 곽 전 의원의 몫이었다는 걸 전제로, 큰 틀에서 두 가지의 범죄 사실을 구성한 겁니다.

특경법상 알선수재가 유죄로 인정되려면 금융회사 등 임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알선 대가로 돈을 받았거나 요구했거나 약속한 사실이 입증돼야 합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제3자에게 돈을 주게 했거나 그렇게 하도록 요구, 약속한 점이 인정되면 유죄입니다. 재판부는 검사가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2015년 2~3월경 대장동 일당의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외부 요인으로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고 봤습니다. 함께 컨소시엄을 꾸리기로 한 하나은행이, 다른 컨소시엄을 주도하던 호반건설로부터 합류 제안을 받고 이탈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겁니다.

곽 전 의원의 알선수재 혐의는 이런 '컨소시엄의 와해 위기'가 있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전직 민정수석이었던 곽 전 의원(당시 국회의원 신분은 아니었습니다)이 김 씨의 부탁을 받은 뒤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하나은행의 이탈을 막아줬고, 그 대가로 아들 성과급 명목의 금품을 받았다는 게 그간 검찰이 편 논리였습니다.

' 위기 발생→청탁→영향력 행사에 따른 컨소시엄 유지→민간 사업자 선정→병채 씨의 화천대유 입사→회사 내 특혜→아들을 통한 대가(성과급) 지급'으로 이어지는, 수년에 걸친 이 모든 과정이 제대로 입증만 됐다면 곽 전 의원에게 유죄가 선고됐을 겁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하나은행이 호반건설로부터 다른 컨소시엄에 와달라는 제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와해되는 위기 상황이 존재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봤습니다. 공모 신청 기간 중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금융기관 사이 논의는 자연스러운 데다, 하나은행은 호반건설의 제안이 있던 시기에도 성남의뜰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는 겁니다. 김 씨가 애초 곽 전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만한 상황 자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건데, 혐의 구성의 전제부터 흔들린 셈입니다.

곽 전 의원이 2015년 2월부터 대장동 사업에 관여했다거나 하나은행 임직원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부분은, 진술이 엇갈리거나 직접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곽 전 의원을 찾아가 대장동 사업과 관련한 보고를 했다고 진술한 정영학 회계사조차 김 씨로부터 "하나은행이 컨소시엄에 잔류하는 데 곽 전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취지의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2018년 11월 한 식당에서 곽 전 의원이 김 씨에게 "돈도 많이 벌었으면 나눠줘야지"라고 말한 것도 알선의 대가를 요구한 정황으로 봤습니다. 당시 함께 있던 남욱 변호사와 정 회계사 등의 진술에 따르면 김 씨는 "회사 돈을 어떻게 주느냐"며 화를 낸 것으로 전해집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돈 관련 문제로 다툼을 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의 발언이 '약속된 대가'를 요구한 것으로 확신하긴 어렵다고 봤습니다. 화를 내는 김 씨의 태도 역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자연스럽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도 이후 김 씨가 '하나은행이 컨소시엄에 잔류하게 된 것'을 이유로 곽 전 의원에게 5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대장동 의혹 녹취

곽 전 의원 등에게 50억 원을 줘야 한다는 김 씨 발언이 녹취록에 남아있긴 합니다. 문제는 그 돈이 무엇에 대한 대가인지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컨소시엄 유지'와 50억 원을 줘야 한다는 발언이 연결되지 않은 만큼, 이 사건에서는 유의미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이밖에 김 씨가 남 변호사, 정 회계사와 공통비 분담 문제로 다툼이 있던 뒤로 곽 전 의원을 포함한 '50억 클럽' 이야기를 구체화하기 시작한 점 등을 근거로, 재판부는 김 씨가 자기 돈을 아끼기 위해 '허언'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컨소시엄을 유지하게 해준 대가로 곽 전 의원이 돈을 받았다는 혐의에 관해서는 검찰 기소 전부터 부실 수사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된 곽 전 의원의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한 차례 기각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판사는 기각 사유 중 하나로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수사를 이렇게 해놓고 사람을 잡아 넣으려 했느냐'는 겁니다.

보강 수사를 거친 검찰이 이후 뇌물죄도 추가해 영장을 청구하면서 결국 곽 전 의원은 구속됐지만, 재판 과정에서 알선수재 혐의 입증에 관한 눈에 띄는 진전은 없었습니다. 특히 곽 전 의원이 하나은행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에 관한 명확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직무 관련성은 인정…곽상도가 직접 받은 돈인지 입증 안 돼"

알선수재는 앞서 설명드린 대로 결국 무죄가 됐습니다. 남은 건 뇌물죄 하나인데, 재판부는 이마저도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컨소시엄 유지와 관련한 대가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곽 전 의원이 실형 선고를 면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알선수재가 무죄인 이유일지언정 또 다른 혐의인 뇌물죄 적용까지 무산시킨 원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뇌물죄의 경우 특별히 청탁의 유무를 고려할 필요 없이 공무원의 직무와 금품 수수 사이에 전체적인 대가 관계만 입증되면 됩니다. 재판부는 국민의힘 부동산 투기 특별조사위원으로서 곽 전 의원이 했던 활동이 대장동 사업과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김 씨가 곽 전 의원 아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며 내심 바라는 게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습니다. 병채 씨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직하려던 때는 마침 김 씨가 대장동 개발 사업 의혹이 본격 제기될 것을 우려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김 씨가 공통비 분담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던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에게, 50억 원과 관련한 언급이 모두 허언은 아님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졌을 가능성도 염두에 뒀습니다.

직무 관련성까지 인정된 상황에서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기 전 조건을 달았습니다. 병채 씨가 받은 성과급을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돈이 아버지를 위해 사용된 정황이 없다면, 결혼해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해 온 병채 씨 것이지 곽 전 의원의 뇌물은 아니라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이번 판결을 두고 가장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검찰의 증거는 결국 재판부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검찰, 곽상도 아들 퇴직금 추징 보전

아버지와 함께 살던 병채 씨는 평소 부친과 친분이 있는 김 씨의 제안으로 특별한 전문성을 갖추지 않고도 화천대유에 입사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시점에는 회사로부터 사택 전세 보증금을 제공받았고 이후 5억 원도 추가로 빌렸습니다. 아버지가 가능하게 한 독립 생계란 것이 뇌물죄 적용에선 오히려 두 사람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근거가 된 셈입니다.

재판부는 설령 부모가 병채 씨에게 일부 생활비를 지원해왔다고 하더라도 뇌물죄를 적용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독립 생계를 유지하는 병채 씨에 대해 곽 전 의원의 법률상 부양 의무가 없으니, 아들에게 지출했어야 할 생활비 등을 화천대유가 대신 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성과급이 병채 씨 계좌에 입금된 직후인 2021년 5월, 곽 전 의원 부자 사이의 통화량이 갑자기 늘어난 것(4월 26건 → 5월 133건)도 성과급 사용에 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 정황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그해 5월은 투병 중이던 병채 씨 어머니가 사망한 달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건강 상태를 자주 확인해야 했던 사정이 고려돼야 한다는 겁니다.

또 인감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 발급 내역, 보험설계사와의 통화 내역 등을 보면 상속 문제나 보험 처리 등에 관해 부자 간에 일시적으로 논의할 게 많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이후 6월 통화량(65건)은 5월의 절반 수준으로, 7월(34건)과 8월(26건) 통화량은 1일 1회 수준으로 떨어진 점도 고려했습니다. 급여 수령 계좌에 입금된 성과급 일부라도 곽 전 의원에게 지급된 사정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핵심은 독립 생계가 아닌 돈의 성격에 대한 인식"이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곽 전 의원을 위한 돈이다', '아들은 대리인이다'이라는 인식이 성과급 지급 당시 3자 간에 공유됐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냄새가 나는 구석이 있긴 했습니다. 녹취록에 담긴 아래 내용은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2020. 4. 4. 정영학 녹취록 중 김만배 발언
"병채 아버지(곽상도)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천만 원."
"그래서 '뭘? 아버지가 뭐 달라냐?'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 그래서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양 전무보다 많으니까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 그렇게 주면 되냐'"
 
재판부는 이 발언만 가지고 '김 씨가 병채 씨를 통해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순 없다고 봤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전해들은 내용은, 그 말을 전해준 사람이 사망, 질병, 해외 거주 등 이유로 진술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증거 능력이 없다는 법리를 인용했습니다.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 부분은 김 씨가 병채 씨에게 들었다는 내용입니다. "병채 아버지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전해 들은 말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말을 전해준 사람'인 병채 씨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김 씨와 저런 대화를 나눈 사실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도 정 회계사와 녹취록에 나온 대로 대화를 나눈 적은 있지만, 곽 전 의원 부자와 관련된 부분은 허언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곽 전 의원은 아들이 성과급을 받은 사실을 곧장 알리지 않아 50억 원을 받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일부 정황이 담긴 녹취록 말고는, 세 사람이 돈의 성격에 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50억 원에 대한 분노'를 등에 업고 정작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검찰이 예비적 공소사실로 제3자 뇌물죄라도 넣어야 했다, 명시적 청탁 없이 보험성으로 준 거면 처벌할 도리가 없지 않느냐, 재판부가 이상했다, 법조계 안에서도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선고는 어디까지나 1심의 판단입니다. 검찰이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검사와 곽 전 의원 측은 2심에서 다시 한 번 공방을 벌일 예정입니다.

판결 확정 전에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곽상도 아니면 그 돈을 왜 줬겠느냐" "직접 받지 않고 돈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당연히 그쪽을 택하지 않겠느냐"는 말은 여전히 법정 밖에서 가장 강력합니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에 대해선 화를 내고 욕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재판은 판사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다소 의문스러운 피고인 쪽에서 검찰이 제시한 논리를 흔들더라도, 그게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해 범죄 혐의를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해내는 건 검사의 몫입니다. 우리는 그러라고 검찰에 강제수사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검찰이 어떤 준비를 더 해서 올지, 곧 열리게 될 2심 재판도 지켜보겠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