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생소한 이런 지역들에 대해 생각할 땐 어김없이 지하철 노선도 이미지를 연상하게 됩니다. 정확하지 않더라도 얼추 4호선과 6호선 노선도를 떠올려 보고, 해당 노선을 따라 지도 동북쪽 한 귀퉁이에 위치한 공간 정도로 인식하는 거죠. 저처럼 이렇게 지하철 노선도를 떠올리셨을 분들 계시죠? 잘 경험하지 않거나 아예 가보지 않은 지역에 대한 공간 감각은 이렇게 '지도'의 형태로 우리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반면 공간에 대한 인식에는 굉장히 주관적 경험도 작용합니다. 최근 트위터에 인천에 대한 재미있는 농담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인천은 강남이든, 수원이든, 부산이든, 제주도이든 심지어 인천에서 인천으로 이동하더라도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 내용인데요.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다른 사용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많은 다른 웹 커뮤니티로 퍼 날라졌습니다. 공간에 대한 기억은 이렇듯 동서남북 사방 어디에 붙어있냐가 아니라 어디서 얼마나 걸리는 곳인지, 직접 겪은 경험으로 구성되기도 합니다.
신인류의 공간 감각? 거리뷰로 장소 맞히는 게임 '지오게서'
최대한 정확하게 그리고 빠르게 위치를 맞추는 플레이어가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한된 횟수만큼은 무료로 게임을 할 수 있고, 더 하고 싶을 땐 구독료를 내면 됩니다. 게임 회사는 구글에 지도 서비스 사용료를 냅니다.
국내에서도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그렇게 대중화된 게임은 아닙니다. 사진을 보고 위치를 맞추는 게임이다 보니 사실 학습 게임 성격이 강하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범생들이나 하는 게임이라는 인상이 박혀있었는데, 이 게임에 특별한 재능을 보유한 한 능력자가 나타나 순식간에 전 세계적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올해로 24살 미국 국적의 트레버 레인볼트는 LA에서 스냅챗에 온라인 스포츠 콘텐츠를 잘라서 공급하던 디지털 PD였습니다. 보통 주중에 근무 후 5시간, 주말엔 하루 8~10시간씩 고강도 훈련(?)을 통해 불과 1-2초 만에 거리뷰만 봐도 어딘지 알아맞히는 최강자가 됐습니다. 직업적 재능을 살려 자신의 플레이를 틱톡, 인스타 쇼츠로 편집해 올렸고, 그 결과 대중들의 관심을 얻으면서 이젠 백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전업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성공한 덕후입니다. 게임 덕후요.
여행 한 번 안 해 본 디지털콘텐츠 PD가 어쩌다
78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 계정엔 106개 국가의 각종 거리 사진을 보면서 스스로 습득한 지역의 특징들이 스토리로 정리돼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만 유일하게 미국에서 전봇대에 노란 색깔 세 줄을 그어놓는다거나,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수전은 크로아티아에서만 발견된다는 점, 핑크색 택시는 멕시코시티에만 있다는 점, 노란색 가드레일은 일본 야마구치현에만 있다는 등의 생생한 체험 정보들을 '꿀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지리 수업 시간에는 늘 맨 뒷자리에서 '지오게서' 게임만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세계 각지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직관적 이해력을 갖추게 됐습니다. "게임을 많이 하다 보면 두뇌가 정보를 습득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리고 파악하는 속도도 빨라지고요. 어떻게 이걸 보고 나이지리아인 걸 맞출 수가 있어?라고 물어보는데 저는 그때마다 그냥 나이지리아처럼 생겨서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어요."
'신종 지리 천재'가 한국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물어봤습니다.(저도 K기자니까요) 게임의 범위에 포함된 국가들은 구글 로드뷰가 생산되는 나라인데, 점수를 매기는 방식의 특성상 땅 덩어리가 큰 나라일수록 더 자세히 지역별로 들여다볼 유인이 커진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내부를 속속들이 지역별로 다 파악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얘기였는데요. 그럼에도 '한국임'을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은 뚜렷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어, 녹색 거리 표지판, 그리고 노란색과 검색 줄이 그어진 전봇대가 특징적이라고 하네요. 국내 지형 중엔 현무암 그리고 현무암으로 지은 돌담이 인상적인 제주도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트레버 레인볼트 역시 '종이지도'보다 구글 맵이 훨씬 더 익숙한 Z세대기도 합니다. "언론이나 책에 기록된 각국에 대한 설명보다 직접 그곳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도구들이 세계를 제 방식대로 소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사진들을 보며 감명을 받을 때가 많은데, 가령 라오스라는 나라에 그렇게 아름다운 언덕들이 많을 줄은 몰랐어요. 제 콘텐츠를 보면서도 감명을 받는 분들이 있으면 좋겠네요."
'구글 맵'으로만 보던 세계를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해외 여러 나라에서 1달 살기를 시작한 트레버는 뜻하지 않게 각종 사회 공헌(?) 활동까지 하고 있는데요. 해외 입양 아동이 과거 원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의 장소를 물어보거나, 몇십 년 같이 산 부부가 오래전 즉석으로 프러포즈를 한 장소를 물어보는 빗발치는 요청에, 사진이나 영상 속 위치를 단번에 파악해 내는 자질을 발휘하며 훌륭하게 해결하고 있습니다.
종이지도에서 모바일 지도 그리고 3D지도로
20년이 다 되어 가는 연구입니다. 영국 런던의 택시기사들은 8천 시간의 절대 연습 시간과 함께 혹독한 테스트를 거쳐 면허를 획득하게 되어 있는데요. 약 2만 5천 개의 거리와 2만 개 의 건물 위치를 모두 외워야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06년 런던대학교 연구진들이 이 택시기사들과, 정해진 노선만 다니면 되는 버스기사들의 두뇌를 MRI 영상을 찍어 확인해 보니, 인간의 두뇌에서 공간기억을 담당하는 '후위해마'가 버스기사들에 비해 택시기사들이 훨씬 더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해, 내비게이션이나 GPS에 의존하는 운전자의 해마 크기는 스스로 위치를 생각해 내는 운전자와 비교해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쓰는 모바일 맵은 네이버 또는 카카오, SKT가 제공하는 맵 서비스일 겁니다. 모두 국토지리정보원이 만드는 '국가기본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정부는 매해 꽤 큰 예산을 편성해 이 국가기본도를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데 쓰고 있는데요. 2021년엔 우리나라 최초로 국토 촬영을 주 기능으로 하는 국토위성 1호를 발사하기도 했습니다. (일반 국민들도 위성사진으로 북한까지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자율주행차나 스마트 시티 같이 '공간의 디지털화'가 필요한 분야에서 이 정보에 대한 권한은 모두 국가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마치 영토에 대한 주권이 국가에 있듯 말이죠. 항공 및 위성사진은 물론이고 현재는 공간의 3D적 정보, 가령 국토 지형지물의 높이까지 계측한 정보 수집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 데이터들을 구글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2016년 국토 정보의 해외 기업 반출을 둘러싸고 고심 끝에 반출 금지 결정을 내린 건데요. 군사나 핵심 보안 정보를 가리라는 정부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독도 지명과 세금 관련 문제도 영향을 줬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구글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당신이 보는 지도가 당신의 세계라면
미디어 생태를 연구하는 인천대학교 이동후 교수는 '별점'이 기반이 되는 모바일 지도가 대중들의 '장소 인식'을 상당히 바꾸어놓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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